모든 투자자 올라탄 녹색투자는 거품일까

2021-05-26 12:34:14 게재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20년 전 기술기업처럼 거품신호와 함께 글로벌 경제에 지대한 영향력”


친환경 녹색자산의 가격이 고공행진하고 있다. 리튬, 코발트처럼 배터리에 쓰이는 금속의 가격은 올해 들어 각각 60%, 30% 이상 급등했다.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중요한 구리가격 역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럽에선 탄소배출 가격이 비싸지고 있다.

이같은 가격급등은 증시로 확대됐다. 2020년 1월 이후 세계 최대 해상풍력발전 기업인 덴마크 ‘외르스테드’의 주가는 60% 이상 올랐다. 미국 주택용 태양광업체 ‘썬런’의 주가는 3배 뛰었다. 전기차 제조사인 미국 ‘테슬라’와 중국 ‘니오’의 주가는 각각 6배, 9배 상승했다. 심지어 비슷한 이름의 기업이 혜택을 누리는 해프닝도 있었다. 영국 생명과학기업 ‘티지아나 라이프 사이언스’는 주식시세표 약칭이 ‘TLSA’인데, 지난해 투자자들이 테슬라의 ‘TSLA’와 헷갈리면서 주가가 뛰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는 최신호에서 녹색투자 러시를 분석하기 위해 에너지 전환으로 혜택을 볼 기업들을 한데 모아 분석했다. 105개 청정에너지 투자펀드가 보유중인 글로벌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반도체 제조사 등 에너지전환과 느슨하게 연관된 기업들을 제외하고, 약 180개 정도의 기업을 추릴 수 있었다고 밝혔다. 대개 신재생 발전기업과 전기차 제조사, 에너지효율 장비 제조사, 재활용 기업 등이다.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녹색투자 생태계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하면 3조7000억달러에 달한다. 2020년 1월 1일부터 이달 18일까지 이들 기업을 시가총액으로 가중평균한 결과 주가는 59% 상승했다. 미국의 주요 주가지수인 S&P500 기업 상승률의 2배였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미국 내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지난 몇달간 녹색기업들의 주가가 위축됐지만, 녹색투자 생태계는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제 녹색기업 주식은 틈새를 찾는 지속가능 펀드의 전유물이 아니다. 전통의 펀드들도 녹색기업으로 쇄도하고 있다. 주가 움직임만 보고 차익을 노리는 데이트레이더들의 온라인투자포럼 ‘월스트리트베츠’ 등에서도 인기가 높다. 많은 투자자들은 현재의 청정에너지를 새천년 전환기의 기술기업과 비교한다. 두가지 모두 거품의 신호를 냈다는 것, 그리고 글로벌 경제에 지대한 구조적 영향력을 가졌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녹색투자에 거품이 끼었는지를 재는 건 쉽지 않다. 이코노미스트지가 추린 녹색기업들의 주가는 2020년 1월 이후 현재까지 동등비중으로 평가했을 때 2배 넘게 올랐고, 시가총액으로 가중평균했을 때 50% 이상 올랐다. 이같은 차이의 이유는 녹색기업 상당수가 중소 규모이기 때문이다. 시가총액 중앙값은 약 60억달러다. 몸집이 작은 기업일수록 주가 상승폭이 컸다.

이코노미스트지가 규모가 적은 순으로 25%를 추린 기업들의 주가는 지난해 1월 이후 평균 152% 상승했다. 전기차 제조사나 연료전지 기업들처럼 매출 대부분을 녹색활동에서 얻는 기업들의 주가도 평균 이상 올랐다. 녹색사업 비중이 높은 25%의 기업의 경우 주가가 평균 110% 상승했다.

이같은 주가급등의 명확한 배경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초점을 맞춘 투자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리서치기업 ‘모닝스타’에 따르면 ESG펀드에 유입된 글로벌 자금은 올해 1분기 1780억달러로 최고치를 찍었다. 전년 동기엔 380억달러였다. 올해 초부터 현재까지 ESG펀드에 몰린 자금은 모든 펀드 유입 자금의 24%였다. 매일 평균 2개의 새로운 ESG펀드가 출시된다.

하지만 이런 투자자들 상당수는 사실 대세적 흐름에 편승하는 경우가 많다.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 스위스’가 지난해 100개의 ESG펀드의 보유주식을 살핀 결과 이들이 가장 많이 사들인 기업은 ‘외르스테드’와 풍력터빈 제조사인 ‘베스타스 윈드’였다. 하지만 이들 펀드가 순수 청정에너지 기업에 초점을 맞춘 비중은 1/10에 불과하다. 나머지 90% 투자처는 간접적으로 친환경과 연계된 기업들이었다.

전세계 20대 ESG펀드가 보유한 50대 기업주식엔 이코노미스트지가 추린 기업이 2곳에 불과했다. 이들이 보유한 10대 투자대상 기업엔 마이크로소프트 알리바바와 같은 기술기업이 포함돼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펀드매니저들이 ESG 투자처 순위를 매길 경우 기후변화에 능동적이거나 사회적으로 의식이 있는 기업을 높게 평가한다. 또 기업정보를 적극 공개하는 대기업들에 우호적”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전통의 펀드매니저들 역시 녹색흐름에 합류하고 있다. 모닝스타가 30대 청정에너지 기업에 대한 투자자를 살핀 결과, 2020년 말 기준 각 청정에너지 기업엔 평균 138개의 지속가능 펀드가 발을 담그고 있었다. 전년엔 81개였다. ESG를 표방하지 않은 보통의 펀드들은 2019년 390곳에서 2020년 624곳으로 급증했다. 모간스탠리의 제시카 앨스포드는 “청정에너지에 투자하는 건 더 이상 틈새전략으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과감한 탄소중립 목표로 환경도 변화

이코노미스트지는 녹색투자 열풍이 2가지 흐름을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우선 청정에너지 기업 상당수가 자력으로 생존가능해졌다. 일부 친환경 기술과 관련한 비용은 크게 낮아졌다. 화석연료 기업과 경쟁할 수 있게 됐다. 태양광발전 비용은 지난 10년 동안 약 80% 인하됐다. 전기차를 움직이는 리튬이온 배터리 가격은 한해 평균 20%씩 하락한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이 과감한 탄소중립 목표치를 설정하면서 투자자들은 이제 기후변화와 환경 관련 규제가 상수가 됐음을 감지하고 있다. 자산운용사 임팩스의 브루스 젠킨-존스는 “수많은 석유기업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주요 연기금들은 청정에너지 기업 주식을 사들이면서 관련 규제 리스크를 헤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녹색바람은 금융적 요소의 지원도 받고 있다. 개인투자자의 참여가 치솟았다. 전문가들 역시 새로운 청정에너지 기술에 기대감을 감추지 않는다. 데이트레이더를 위한 애플리케이션 ‘로빈후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기업은 ‘테슬라’와 수소연료전지 제조사 ‘플러그 파워’다. 투자리서치 전문가인 벤카테시 탈람은 “몇몇의 청정에너지 기업이 월스트리츠베츠에서 강력한 입소문을 타고 있다”고 말했다. 녹색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역시 크게 늘었다. 2019년 이후 상장된 800개 정도의 스팩기업 중 약 1/10이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온라인 상 입소문과 녹색스팩의 등장은 거품의 우려를 돋우기도 한다. 이코노미스트지가 추린 녹색기업 30%는 손실을 내고 있다. 거품의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이코노미스트지는 주가수익비율(PER)과 주가순자산비율(PBR) 두가지를 들여다봤다.

이에 따르면 정도 차이는 있지만 녹색기업 주식 전반에 거품이 다양하게 끼어있다. 신재생발전기업의 PER 중앙값은 S&P500 기업과 비슷하지만 전기차 제조사의 PER은 2배가 넘는다. 이코노미스트지가 추린 대개의 수소, 연료전지 기업들은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PER을 계산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의 PBR은 시장 평균보다 약 50%가 높다.

이코노미스트지는 “기업가치 평가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기술과 시장의 성숙도라는 변수로 설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풍력과 태양광기업은 2000년대 들어 급속 확산됐다. 각국 정부의 넉넉한 보조금에 크게 힘입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재생에너지 기술은 개선됐고 반대로 정부 보조금은 줄어들었다. 각종 인수합병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생존한 기업들은 현재 안정적인 매출을 기록중이다.

반면 거품이 많이 낀 주식들은 10년 전 풍력과 태양광이 서 있던, 비슷한 자리를 차지한다. 관련 기술의 구체적 증명이 안됐고, 생존하기 위해선 공공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서로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럼에도 이들 기업이 투자자에게 주는 매력은 그들 중 한 기업이 차세대 테슬라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인플레이션이라는 또 다른 변수

녹색투자 붐을 약화시킬 몇가지 지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인플레이션 우려다. 주요국 주가는 올해 하락세다. 미국발 인플레이션 걱정 때문이다. 녹색기업들이 제시하는 매력의 상당 부분은 먼 미래에 실현될 이익이다. 인플레이션이 높아진다면, 그같은 매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대처를 위해 기준금리를 올린다면, 신재생 발전기업들은 곤경에 빠질 수 있다. 이들은 대개의 자금조달을 부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보다 모험적인 기술이 입증에 실패한다면 투자자의 열정 역시 시들 수 있다. 녹색기업들의 거품에 공매도 투자자들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공매도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헤지펀드 '힌덴버그 리서치'의 네이선 앤더슨은 "돈이 녹색 기업들로 쇄도하면서 사기가 만연해졌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녹색기업 경영자들이 능력 이상의 것을 약속한다든지, 보유중인 기술의 위력을 터무니없이 과장한다는 것. 힌덴버그는 ESG 슈퍼스타 기업 여러곳이 투자자들을 오도했다고 주장한다. 거기엔 지열발전 기업인 '오맛', 전기차 제조사인 '니콜라' 등이 포함된다. 이에 대해 오맛은 "공매도 투자자들의 주장들은 부정확하다"고, 니콜라는 "거짓된 주장으로 명예훼손감"이라고 반박했다.

녹색기술이 성공한다 해서 두툼한 보상이 당연지사로 따르는 건 아닐 수 있다. 하락하는 생산비용이 수요의 성장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양광 호황 시기가 대표적이다. 자산운용사 '피델리티'의 벨리슬라바 디미트로바는 "지난 10년 동안 태양광 설치율은 670% 늘었다. 하지만 모듈 가격은 85% 하락했다. 그 결과 태양광업계 누적 매출 성장은 약 15%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많은 투자자들은 낙관적이다. 에너지 전환 흐름이 역주행할 것으로 보는 이는 거의 없다. 이들은 '일부 기업이 엉터리로 드러난다 해도 전체적인 업계 상황은 전도유망하다'고 주장한다. 새천년 전환 즈음 기술기업에 비교하는 경우도 많다. 인터넷과 마찬가지로 탈탄소화 흐름은 글로벌 경제의 구조를 크게 바꿀 것이다. 자본은 더 청정한 기술을 향해 유입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는 갈리게 된다.

자산운용사 '슈로더'의 마크 레이시는 2000년 이후 3년 동안 수많은 중소 규모 기술기업들이 망했다. 많은 녹색기업들도 그같은 운명을 맞을 수 있다"며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게 있다. 닷컴 버블붕괴 이후 20년 동안 기술기업은 S&P500 전체 기업의 시가총액 38%를 차지할 정도로 커졌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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