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드노믹스의 혁명은 성공할까

2021-06-11 12:24:38 게재

포린폴리시 “40년 지배한 낙수경제론 폐기하려 노력 ... 실현가능성은 ‘글쎄’”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 최신호는 “1년 전만 해도 조 바이든은 늙었지만 호감 가는 기득권 정치인에 불과했다”고 평했다. 미국 대선에서 그가 내세운 주요한 선거전략은 “난 도널드 트럼프가 아니다”였기 때문. 바이든은 스스로를 변화의 동력이라기보다 과도기의 대통령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나를 뽑아달라. 모두가 미워하는 트럼프를 밀어내겠다. 그러면 미국을 어떻게 고칠지 알게 될 것이다. 혹 내가 아니라면 후임 대통령이 그렇게 할 것이다.’

FP는 “그러나 취임 후 바이든은 대선과정의 그가 아니었다”고 전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각) 클리블랜드 소재 카이어호가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바이든은 6조달러 예산안을 소개하며 미국의 비틀거리는 하층계급을 다시 세우기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국이 고등교육과 건강보험, 세제개혁, 새로운 브랜드의 산업정책, 경제적 애국주의를 통해 중국 등 경쟁국들을 제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나하나 놓고 봐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FP는 “바이든이 이를 완수할 수 있다면 지난 40년 동안 미국을 지배한 독트린을 역사의 뒤안길로 던져버릴 수 있다”고 전했다. 바로 레이거노믹스 또는 낙수경제론(trickle-down economics)이다. 바이든은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자신의 정책에 붙인 이름에서 드러난다. ‘뉴 바긴’(New Bargain, 새로운 합의)으로,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을 연상시킨다.

바이든, 오래전부터 그랜드플랜

바이든 최측근 참모들에 따르면 그는 언제나 그랜드플랜(거대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8년은 부통령으로, 그 이전 30여년은 상원으로 일하던 그는 에너지를 억눌러야 했던 포퓰리스트였다. 그는 오랫동안 고통받는 노동계층을 돕기 위해 정부의 지출확대를 적극 요구했다.

바이든의 오래된 참모이자 경제학자인 저레드 번스타인은 78세 대통령의 과감한 정책은 오래 전부터 갖고 있던 생각을 꺼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번스타인에 따르면 바이든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전적으로 미국의 경제 리더십에 달렸다고 믿어왔다. 바이든은 수십년에 걸친 강박적인 적자 축소 때문에 미국이 경쟁력을 상실했다고 본다. 결국 공공투자는 급격히 축소됐고,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은 중산층이 불어났다. 이들에겐 주택을 살 여유가 없었고 양질의 대중교통과 육아·청소년 지원은 언감생심이었다.

현재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CEA)에 속한 번스타인은 “바이든은 그동안 맘에 품었던 핵심 원칙들을 정립하고 있다. 지금은 정확히 그같은 종류의 행동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그는 “바이든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필요한 투자를 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내총생산(GDP)과 증시를 부양하는 것을 넘어 최상위 1~2%의 부자와 최저소득 공동체 모두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번영을 이루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바이든의 경제정책, 즉 바이드노믹스의 의미는 로널드 레이건 시대부터 곪아온 불평등을 고치자는 것이다. 그리고 수십년래 처음으로 국가가 주도하는 산업정책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런 정책 입안에 직접 관여하고 있는 바이든행정부의 한 선임 관리는 “바이든은 지금과는 다른 사회계약을 만들자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분야는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과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극심한 불평등과 사회적 분열, 기후변화 위기, 노동력에서 도태되는 사람들,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는 미국의 기술 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주도의 ‘부의 분배’라는 생각은 바이든의 30여년 의회 경험에서 나왔다고 한다. 바이든 대통령 상원의원 시절부터 참모를 지낸 짐 그린은 “대통령의 생각은 1980년대 중국의 개방, 베를린장벽의 붕괴 등으로 거슬러오른다. 당시 새로운 저임금 노동자 수백만명이 글로벌시장에 쏟아졌다”며 “바이든은 미국 노동자들이 수세에 몰릴 것이라는 점을 그때 당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바이든은 상원의 보수적 동료 의원들이 미국 노동자들을 재교육하거나 그들의 기술수준을 높이는 데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을 지켜봤다. 결국 미국의 생산성과 GDP는 치솟았지만 중산층 임금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뿐만 아니라 레이건 시대 이후 중산층은 줄어드는데 세금은 더 많이 부담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미 정부 자료에 따르면 연이은 세법 개정으로 연방세수 중 노동자들이 부담하는 비중은 1950년대 50%에서 현재 80% 이상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기업이 내는 세금은 GDP의 30%에서 현재 10% 아래로 떨어졌다. 부자는 더 부유해졌고, 노동자는 더 가난해졌다. 동시에 정부는 늘 재원이 부족했다. 1960년대 공공 연구개발비는 GDP의 2%였지만 지금은 0.7%로 낮아졌다. 미국은 지난 4반세기 공공투자가 실질적으로 하락한 몇 안되는 선진국 중 하나다.

바이든정부는 연간 40만달러 이상 버는 사람에게 세금을 더 걷으려 한다. 그랜드플랜의 재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바이든 정책입안에 관여하고 있는 앞서의 관리는 “노동자와 기업의 세금 부담에 균형을 맞추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같은 차원에서 바이든행정부는 글로벌 법인세 최저한도를 제안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4월 28일 첫 의회연설에서 취임 100일 만에 세번째 2조달러 예산지출 계획을 꺼냈다. 바이든은 인프라 투자 계획이 2차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일자리 창출 정책이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 바이든행정부는 세차례에 걸쳐 약 7조5000억달러의 예산지출을 제안했다. 2차세계대전에 이기기 위해 미국이 지출한 돈의 약 두배에 해당한다. 바이든행정부의 예산지출 계획은 정부 주도 연구개발과 인프라 건설, 저소득층 지원 등에 집중돼 있다.

미국 경제를 억만장자 대신 중산층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바이든의 야심찬 계획은 글로벌 이념축의 전환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수십년 동안 전세계 국가들은 자유세계 리더국가인 미국으로부터 엄중한 질책을 들어야 했다. ‘시장에 자유를 허하라’ ‘정부는 시장에서 빠져라’ 등으로 민영화와 자유무역, 시장논리가 전세계를 번영으로 이끈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였다.

억만장자 대신 중산층 중심으로

상원의원과 부통령으로서 바이든 역시 대개의 워싱턴 컨센서스 주창자들을 따랐다. 중도파 민주당 의원들 상당수는 신 레이건주의자처럼 행동했다. 이들은 미국의 냉전 승리 이후 지나친 정부개입, 중앙화된 경제를 불신했다. 민주당 전임 대통령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역시 작은정부와 법인세 감소, 긴축예산에 대한 요구에 굴복했다. 오바마는 한때 “30년 동안의 내러티브를 바꾸기가 너무 힘들다”고 한탄했다.

그랬던 미국을, 이제 다른 나라들은 놀라면서 바라보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시의 블루칼라 출신이라 자칭하는 바이든 대통령이 새로운 종류의 보호주의에 찬성하는가 하면, 역대 최고 규모의 재정지출 계획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큰정부를 줄기차게 외쳐온 민주당 내 진보파들조차 침묵하게 만들 정도로 과감한 규모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경제적 애국주의를 꺼내들었다. 냉전 이후 접하기 어려웠던 개념이다. 이번엔 소련이 아니라 중국이다. 바이든은 의회 첫 연설에서 “코로나19 극복이든 기후변화 대처든, 미국은 중국과의 글로벌 경쟁에서 앞서 21세기를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지난달 예산안 연설에서 다시 한번 상세히 부연했다. 그는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은 전적으로 경제적 부흥에 달렸다. 각주를 잇는 고속도로에서 인터넷 연결망, 새로운 기후위기 대책, 일자리 창출 기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인프라에 정부가 집중투자하느냐에 성패가 달렸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1930년대 미국 전역의 가정에 전기를 끌어들인 일, 1950년대 각 주간 고속도로를 이었던 일을 상기시켰다. 바이든은 “전세계 미국의 위상을 결정하는 외교정책의 기본은 경제적 파워”라며 “21세기를 이끌려면 넘버원이 돼야 한다. 아주 단순한 문제”라고 말했다.

바이드노믹스 덕인지 미국 경제는 순풍을 타고 있다. 지난 1월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3.5%로 전망했던 세계은행은 이달 6.8%로 두배 가까이 올렸다. 현실이 된다면 1984년 이후 최고 성장률이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그랜드플랜은 일부 세계화주의자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특히 그가 국내적으로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면서다. 바이든은 4월 28일 “풍력발전 터빈의 날개를 베이징이 아닌, 피츠버그에 만들면 안된다는 법은 절대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그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정부 투자는 전적으로 한가지 원칙에 따라야 한다. 미국에서 만들라. 미국에서 만들라.”

가장 우려를 자아내는 대목은 미국이 글로벌화, 자유·공개시장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누가 과연 그 역할을 할 것인가다. 미국만큼 자유무역을 좋아했던 나라는 없었다. 유럽연합(EU)은 바이든의 ‘바이 아메리칸’(미국물자 우선구매정책) 계획을 ‘바이 유러피언’으로 응수할 태세다. EU 각국은 또 전임 트럼프행정부의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유지하겠다는 바이든의 입장에 격앙된 상태다.

"‘국가도 시장서 경쟁’ 바이든 개입 확대" 로 이어집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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