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도 시장서 경쟁’ 바이든 개입 확대
2021-06-14 12:32:18 게재
정부 주도 투자와 연구개발 중요성 강조 ... 반중국 레토릭에선 트럼프와 별차이 없어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에릭 브랫버그는 “유럽은 ‘전략적 자율성’에 더욱 전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략적 자율성은 중국과는 경제, 미국과는 정치·외교를 공조하겠다는 개념이다. 브랫버그는 “내게 가장 중요한 점은 동맹국들이 미국과 함께할 것이냐 여부”라고 말했다.
결국 바이드노믹스는 1930년 ‘스무트-홀레이 무역법’이 가져온 영향을 되풀이할 수 있다. 당시 미국이 2만품목 이상의 수입품에 평균 52.8%의 관세를 부과했다. 상대국들 역시 보복관세에 나서면서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이 큰 불황에 빠진 바 있다.
일각에선 바이든을 두고 ‘웃음을 띤 트럼프’ ‘트럼프 없는 트럼피즘’이라고 비판한다. 바이든의 경제적 애국주의를 트럼프의 반중국 레토릭과 비슷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버드대 교수로 국제경제학회(IEA) 회장 당선자이자 세계화 회의론자인 대니 로드릭은 “중국 경제성장이 미국에게 꼭 해로운 게 아닌 것처럼 미국 경제의 호황이 중국에 위협이 돼선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든의 대중국 프레이밍은 현재까지 해롭다. 중국을 겨냥해 미국의 활발한 경제를 공격적이며 제로섬인 외교정책 도구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중국이 바이든 플랜에 맞선 방어적 조치로 미국기업들을 제한한다면, 우리는 중국을 비난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바이든행정부 선임 관리는 이전 정부들과 비교해 무역에 대한 생각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보호주의자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이 관리는 중국과 같은 국가들의 불공정한 국가보조금을 시사하며 “현실적으로 모든 무역이 좋은 무역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좋은 무역환경을 만들고자 한다. 최고의 인재를 끌어들이고 최고의 아이디어를 개발해 상용화하려 한다. 궁극적으로 미국과 전세계의 이익을 위해 창조하고 혁신한다. 그건 보호주의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다른 경제학자들도 바이든이 트럼프식 보호주의는 아니라는 점에 동의한다. 미 의회예산국(CBO) 수석경제학자 출신 웬디 에델버그는 “바이든이 트럼프처럼 다른 나라들로부터 일반적인 상품을 수입해선 안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고 본다”며 “그는 미국에서 개발할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바이든은 그것을 보호주의라기보다 산업정책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MIT 무역경제학자인 데이비드 오터는 “트럼프행정부는 미국에 투자하면서가 아니라 중국에 관세를 매기면서 중국과 경쟁하길 원했다. 이는 잘못된 경제학”이라고 말했다.
반면 바이든은 새로운 관세보다는 정부의 투자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대표적으로 대륙횡단 철도와 각주간 고속도로, 1960년대 우주경쟁에서의 승리다. 바이든은 지난 4월 28일 첫 의회 연설에서 “미국 역사를 살펴보면 공공투자와 인프라가 미국을 변화시켰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미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인터넷과 GPS 등 많은 발명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며 정부 주도의 투자와 연구개발로 코로나19와 같은 질병을 퇴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호주의 아닌, 산업정책”
‘새롭고도 낡은 세계질서’, 이는 바이든 대통령의 의회연설에 숨은 진짜 의미였다. 바이든은 많은 경제학자들이 경제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미심쩍다고 보는 한 개념을 다시 꺼냈다. 기업이 시장에서 서로 경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시장에서 서로 경쟁하고 있다는 것. 국가 경쟁의 개념을 복원하면서 바이든은 정부의 필요성을 함께 복원하려고 한다.
바이든의 그랜드플랜이 새로운가 아닌가, 또는 경제적·지정학적으로 건전하냐 아니냐를 떠나 바이든의 계산법은 상당기간 숙성된 것이다. 바이든 참모들은 그가 미국경제를 바꾸기 위해 자신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트럼프 재임과 코로나19 팬데믹이 마침내 그 기회를 제공했다. 바이든 자신도 팬데믹과 그에 대한 트럼프행정부의 서투른 대응이 자신에게 정부의 역할을 바꿀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팬데믹은 미국의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 따라서 얼마나 절실히 투자해야 하는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오바마 시절 미국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지낸 오스탄 굴스비는 “바이든은 언제나 정부 개입에 대해 확고한 시각을 가졌다. 근육질의 정부를 원한다”며 “미국은 팬데믹과 경제적 붕괴를 겪었다. 미국 시스템의 모든 병리가 모든 이들의 눈앞에 펼쳐졌다. 언제나 거기에 있었던 문제지만 이제 더욱 확연해졌다”고 말했다.
우선 경제적 불평등이다. 부유하고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었지만 저소득계층은 일반적으로 그렇지 못했다. 보건의료시스템은 여전히 고용주에게 달린 문제다. 약 500만명의 사람들이 보험을 잃었다. 10여년 전엔 2008년 월가가 만든 금융위기로, 이번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제조업과 서비스업 일자리가 대폭 사라졌다. 굴스비는 “이 상황들은 정부의 역할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미국인의 생각을 바꿨다”고 말했다.
굴스비는 2008년 이후 경기침체가 미국 사회의 불평등을 낱낱히 폭로하면서 바이든의 정부개입 의지가 최고조에 올랐다고 말했다. 붕괴가 일어나기 전까지 중산층 임금의 제자리걸음 현실은 모호했다. 2000년대 중반 모기지 광풍의 헛된 기대 때문에 당시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이 부자라고 느꼈다. 하지만 사실 부채로 인해 부풀려진 것이었다.
바이든은 그 모든 것이 갑작스럽게 멈췄을 때를 지켜봤다. 중산층 이하 시민들은 모기지 부채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미국 경제가 이후 다시 반등을 시작했을 때에도 회복된 부의 대부분은 부자들에게 흘러들어갔다.
굴스비는 2009년 ‘스마트에너지그리드’와 같은 새로운 인프라 프로그램을 밀어붙인 것도,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크라이슬러 등 빅3 자동차제조사의 전면적인 구제금융을 적극 옹호한 것도 당시 부통령 바이든이었다고 말했다. 바이든은 노동자와 소기업들이 완전히 파산하게 될 주체가 될 것을 걱정했다. 굴스비는 “바이든은 또 주기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에게 거대 월가은행들을 규제하는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전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구제금융 적극 옹호
바이든 대통령은 해야 할 것이 많은 반면 시간 여유는 없다. 공화당 의원들은 그의 거대한 지출계획을 ‘사회주의’라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2022년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최소한 하원을 되찾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공화당의 많은 의원들은 바이든행정부가 레이건 이전 70년대로 시계바늘을 되돌리려 한다고 우려한다. 백악관이 제안한 1조8000억달러 규모 ‘미국가족계획’에 대해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은 ‘전면적인 사회주의 유산’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의 몽상이 현실화될 수 없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오바마행정부 부통령이었던 바이든 대통령은 야당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그리고 변화를 위해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잘 알고 있다. 만약 공화당이 2022년 중간선거에서 승리한다면 2010년과 비슷한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야심찬 개혁프로그램이 번번이 막히는 걸 속수무책 지켜봤다.
정치적으로 양분된 워싱턴에서 단 하나 예외가 있다면 반중국 컨센서스다. 공화 민주 양당의 거의 모든 이들이 중국을 미워한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 초기, 피터 나바로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같은 대중국 강경파들이 상황을 주도했다. 이들은 중국의 약탈적인 무역과 경제정책에 대응해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회귀)으로 상황을 반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바이든 대통령도 동일한 레토릭을 구사한다. 야당의 반발도 거의 없다. 이달 8일 미 상원은 ‘미국 혁신과 경쟁을 위한 법안’을 압도적으로 통과시켰다. 중국의 급부상에 대응해 2500억달러 가까운 예산을 할애, 인공지능과 컴퓨터칩, 스마트기기, 전기차에 쓰이는 리튬배터리 등 미래의 기술에 투자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민주당 전임 행정부와도 결이 다르다. 오바마 대통령은 반복적으로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2009년 상하이 타운홀 미팅에서 “국가적 경쟁이 제로섬게임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스스로를 글로벌 대통령이라고 내세운 빌 클린턴 대통령 역시 미국과 중국이라는 G2 관계는 상호 안정적인 혜택을 주고받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버드대 로드릭 교수는 “바이든 플랜은 잠재적으로 미국을 크게 변화시킬 것이고 다른 나라들이 따라야 할 모범을 설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같은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 냉전이라는 낡은 비유를 피해야 하고, 국가 대 시장이라는 오도된 이분법을 피해야 한다. 기후변화와 신기술에 의한 노동시장 파괴, 과도한 글로벌화 등 오늘날의 당면과제는 새로운 해법을 요한다”고 지적했다.
대부분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무역은 제로섬게임이 아니다', '모든 이들이 일반적으로 자유무역에서 혜택을 본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이러한 통념은 새롭게 불고 있는 경제적 애국주의 바람에 떠밀리고 있다. MIT의 오터 교수는 "중국을 위협적인 경쟁국으로 생각하는 것이 고졸 노동자들에게도 중산층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동일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린든 B. 존슨 대통령(재임 1963~1969년) 이후 그 어떤 대통령보다 직설적으로 빈부격차를 강조한다. 최상위 1% 부자들이 돈을 내 최하층 계급과 나눠야 한다는 것. 바이든은 미국인 일자리 플랜을 '미국을 건설하기 위한 블루칼라의 청사진'으로 부르고, 인프라 일자리의 90%가 대학졸업장이 필요하지 않다고 역설한다.
보육에 대한 바이든행정부의 과감한 보조금이 맞벌이부부보다 보모를 집에 들일 수 있는 넉넉한 가족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공화당의 우려가 있다. 하지만 자유주의 성향 싱크탱크인 '니스카넨센터'의 새뮤얼 해먼드는 "현금 기반 보육 혜택들은 가장 효과적인 빈곤대책 중 하나다. 사회적 혜택이 비용보다 몇배나 많다"고 말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 중산층 일자리가 중국 충격에 어떻게 사라졌는지에 대한 연구로 권위를 인정받는 오터 교수는 "바이드노믹스는 좋은 아이디어와 나쁜 아이디어를 급진적으로 섞었다"며 "풍력발전 터빈 날개를 국내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제한하는 것은 가격을 올리고 몇몇 입지가 좋은 기업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다. 또 미국인 일자리를 회복한다며 중국을 악마화하는 것은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다른 이를 막아서면서 우리가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버드대 로드릭 교수도 "과거 미국이 탄도미사일 경쟁, 우주전쟁에서 소련에 질 수 있다는 두려움은 국가적 기술 동원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오늘날 그같은 두려움을 일으키는 전략을 쓸 중대한 이유는 없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공화당의 지지를 많이 얻을 것 같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다른 한편으로 오터와 로드릭 등 경제학자들은 미국의 인적자원에 재투자하겠다는 바이든의 야심찬 계획은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저소득 육아를 보조하고 △취학 전부터 12학년까지 양질의 교육에 재정을 대고 △커뮤니티 칼라지를 통해 더 나은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미국 인프라를 현대화하고 △연구개발과 혁신 측면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되찾겠다는 것 등이다.
오터 교수는 "미국 경제정책과 기관을 현대화하기 위해 중국이라는 도전과제를 활용하는 여러 좋은 방법들이 있다"며 "올바른 방법은 공공투자를 크게 늘리고 사실상의 산업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경제에서 맡는 역할에 대해 낙관주의와 비관주의가 있다. 둘 간의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드릭 교수는 "시장과 정부 사이의 균형에서 추가 극단으로 이동하면 안된다"며 "한 방향으로 치우치면 향후 또 다른 극단의 반발을 부른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든이 이런 악순환을 깨는 유일한 방법은 시장과 정부가 대체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각각은 다른 쪽이 자기 임무를 다할 때 더 잘 작동된다"며 "정부는 시장, 기업과 함께 일해야 한다. 동시에 노조, 지역사회 단체 같은 이해관계자도 동참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법개정까지는 무리일 수도
바이든행정부는 주요 선진국들에게 법인세 글로벌 최저한도를 제안하면서 해외 조세회피처를 무력화할 계획이다. 바이든은 이를 통해 미국 법인세 인상을 꾀하고 있다.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CEA) 소속으로 바이든의 오래된 참모인 저레드 번스타인은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세법에 사실상 그림자 산업정책이 있었다고 인식하고 있다. 즉 노동자에 비해 부자들에게 매우 우호적인 세법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부자들은 거액으로 로비스트들을 고용해 세법의 내용을 좌우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바이든행정부가 거대 지출계획을 통과시킬 상하원 다수 입지를 갖고 있을지 모르지만 부유층과 기업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는 것은 무리수일 수 있다. 뉴욕대 경제학자인 마크 거틀러는 "바이든 대통령이 인프라 법안 통과에만 보다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바이드노믹스의 가장 큰 정치적 위험요소는 결국 정부부채와 인플레이션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2022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우파 야당을 자극하는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다. 1970년대 비슷한 상황이 벌어져 결국 레이거노믹스가 등장할 무대가 마련됐다.
바이든행정부 일부 참모도 세금 이슈가 바이드노믹스의 성공 여부를 재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들은 "21세기를 승리해야 한다는 구호는 중국과의 경쟁력 격차를 좁히자는 것이 아니라 미국 자체의 경제 시스템에서 불평등을 줄이자는 것"이라며 "바이드노믹스는 결국 미국의 억만장자들에게 '정당한 몫의 세금을 내라'는 이야기와 같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달 "나는 자본주의자"라며 "나는 누구를 벌주려는 게 아니다. 기업이 큰 이익을 얻어선 안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단지 지난 수십년 노동자들이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제 노동자들이 정당한 몫을 가져가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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