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일자리 건설산업
청년들 직업전망 갖도록 진입·숙련 여건 필요
껍데기 처방으론 치유 불가능 … 적정임금제 도입, 기능등급제 정착, 교육훈련체계 구축해야
우리나라 건설산업은 취업자 규모가 2020년 202만명으로 제조업(438만명) 다음으로 크고, 취업유발계수가 10.8명(2019년)으로 제조업(6.2명)보다 높은 대표적인 일자리 창출산업이다. 취업유발계수는 10억원의 재화를 만들 때 해당 상품을 포함한 모든 상품에서 직·간접적으로 유발되는 취업자수이다. 또한 높은 전·후방 생산유발로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기간산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불법 재하도급 등에 의한 공사비 하락과 다단계 도급구조로 인한 △낮은 임금 및 복지수준 △낮은 고용안정성 △높은 안전사고 위험 △외국인력의 내국인 일자리 잠식 등으로 청년층이 취업을 기피하면서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제4차 건설근로자 고용개선 기본계획'을 통해 △전자카드제 △건설 기능인등급제 △적정임금제 등을 도입키로 하는 등 일자리의 질 향상과 관련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으나 실효성을 갖추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 건설산업은 불법 재하도급 등에 의한 공사비 하락과 다단계 도급구조로 인한 뿌리깊은 병폐가 존재한다. △낮은 임금 및 복지수준 △낮은 고용안정성 △산재 사망사고 1위 △외국인력의 내국인 일자리 잠식 등이다.
청년층의 취업 기피로 이어지면서 고령화도 심화되고 있다. 청년들의 건설현장 기피는 '숙련기능 전수 단절'로 이어져 생산기반 붕괴를 우려할 정도다.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연구센터장은 "건설현장의 악순환 구조는 오랜시간 동안 다양한 요인들이 얽힌 상태로 굳어져 표피적 처방으론 치유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해법으로 "근본적인 체질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기능등급제 정착, 건설산업 차원의 교육훈련 체계 구축, 적정임금제 도입 등 3대 요소가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개선 가능성이 있다"고 제시했다.
◆청년의 건설현장 촉진 '직업전망' 있어야 = 건설업체들과 건설근로자들은 청년층의 진입을 촉진할 수 있는 요인으로 '직업전망 제시'를 공통적으로 꼽고 있다.
먼저 올해 5월 27일에 시행된 건설근로자 기능등급제가 정착된다면,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직업전망'을 제시함으로써 청년층의 진입과 숙련형성을 촉진할 수 있다.
이 제도는 기능인의 숙련 수준을 근로경력 자격증 교육·훈련 포상 등의 객관적인 데이터를 종합해 등급(초·중·고·특급)으로 인증하고, 그에 따른 활용·우대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능인의 시공경험과 숙련을 생산과정으로 되돌려 품질과 생산성 제고로 이어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미 성공을 거둔 독일 건설산업의 '마이스터'가 있고 우리나라에도 민간건설업체 '기능마스터', 공공기관 '건설품질명장' 등이 있다. 심 센터장은 "이들은 생산직 기능인력으로 시작해 다양한 경험을 거치면서 축적한 특유의 숙련을 활용해 현장소장 관리자 교육자 등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면서 "청년층에겐 이들이 살아있는 직업전망"이라고 말했다.
◆건설산업 교육훈련체계 구축 시급 = 건설공사의 특성상 기능인력 작업은 표준화하기 어렵고 기계화 및 자동화로 숙련인력을 대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러한 건설산업 특성에 맞는 교육훈련체계를 구축한다면 교육·훈련·자격에 건설현장의 특성과 새로운 기술을 반영해 '현장성'을 높임으로써 건설사업주의 관심과 참여를 촉진할 수 있다.
또한 기능등급제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 다양한 활용방안을 개발하도록 유도하고 이것이 다시 직업전망의 제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직종별 숙련 수준별( 기능등급별) 교육훈련 기본계획을 수립할 전문 연구인력과 상설 전담조직이 필수적이다.
기본계획에는 특성화고 건설 분야를 숙련인력 육성 인프라와 결합시키는 현장연계 프로그램도 포함돼야 한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3년간의 시간을 확보하고 있어 심도 있고 체계적인 교육훈련을 받을 수 있다. 독일의 마이스터 역시 직업학교에서 청년기를 보내면서 숙련의 기초를 닦는다.
하지만 교육부에 따르면 특성화고 건설 관련 3학년 학생의 정원은 1999년 1만5670명에서 2015년에는 3193명으로 줄었다. 2021년에는 2225명으로 더 줄었다.
심 센터장은 "특성화고 건설분야는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려운 청년층이 모여 있는 공식적인 진입구인데, 더 이상 축소되거나 닫히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8년 건설인적자원개발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교육훈련기관 담당자들은 교육훈련 기본계획의 수립이 기능인력에 대한 실제 교육훈련으로 실현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선결요인으로 '안정적 재원의 확보'를 꼽았다.
보고서는 건설업에서 납부한 고용보험의 능력개발보험료를 활용하고, 비정규직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훈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훈련수당을 지급하려면 '건설기능인력육성기금'(가칭) 조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적정임금제'가 불법 재하도급 막아 = 6월 9일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학동4구역 재개발 철거현장 붕괴사고는 전형적인 '불법 다단계 하도급'에 의한 참사였다.
당초 해체공사비는 3.3㎡ 당 28만원으로 책정됐지만 실제 시공업체에게는 84% 삭감된 4만원으로 불법 재하도급됐다. 도급단계를 거칠수록 공사비가 줄면서 인력도 줄고 위험은 늘어나 결국 참사를 가져온다.
국토교통부는 10일 발표한 '광주 건축물사고 후속대책'을 통해 불법하도급 공사로 사망사고를 낸 발주자 원·하도급사 하수급사 등 건설사에게 최고 무기징역까지 처하는 등 형사처벌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한 피해액 10배까지 배상하는 징벌적 배상제도도 도입한다.
우리나라 불법 재하도급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질적인 병폐다. 땜질식 처벌강화만으로 개선이 가능할까. 함께 고민해야 할 방안으로 '적정임금제'가 제시된다.
심 센터장은 "적정임금제는 건설현장의 정상화를 위한 '중대한 첫단추'일 뿐만 아니라 청년층 진입을 위한 (앞의) 두 가지 대책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업주 입장에서 현장성이 높은 숙련인력에게 높은 임금을 지불하려면 적정공사비의 확보가 전제조건이다. 근로자도 기능등급을 높여갈수록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면 직업전망이 불투명해지기 때문이다.
적정임금제는 건설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직종별 임금의 하한선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 제도는 발주자 원도급자 등 강자의 '단가 후려치기'를 막아 하도급자 근로자 등 약자가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게 된다. 이는 하도급을 주는 과정에서 단가를 깎아 이득을 챙기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적정임금제는 미국이 대공황 직후인 1931년 도입한 프리베일링웨이지(Prevailing Wage, PW)를 밴치마킹한 것이다.
90년 동안 미국은 PW를 통해 가격경쟁에서 가장 취약한 임금삭감을 막았다. 그러자 공공공사의 낙찰률은 90% 이상으로 올라갔고 원수급자는 적정공사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공표된 임금 이상의 숙련도를 지닌 내국인을 고용하게 됐고 근로자까지 임금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하수급자의 이윤도 함께 보장됐다.
이는 기술경쟁으로 이어져 우수업체가 내국인 숙련인력을 고용해 시공을 정상화했다. 안전 역시 정상화돼 일반재해는 50%, 사망재해는 15% 감소했다.
◆2023년 300억원 공공공사부터 시행 = 우리도 정부가 공표하는 적정임금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의무화하는 '적정임금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는 2017년 2월 착공한 '올림픽대로-여의도간 진입램프 설치공사'에 첫 적정임금제를 시범사업으로 실시했다. 건설업체가 적정공사비를 확보(낙찰률 87%)하면서 '같은 임금이면 내국인을 고용'하게 됐다.
임금삭감을 통한 저가입찰과 다단계 하도급이 사라졌다. 난생 처음 주휴수당까지 받은 근로자들은 높은 사기와 자부심으로 성심성의껏 일하며 제반 규정을 준수했다.
발주자인 서울시는 제값을 지불한 대신 시방서와 안전규정을 엄격히 적용했다. 이에 시공업체는 작업속도를 높이는 '물량단위 성과급 방식' 대신 숙련인력에 의한 직접시공을 통해 품질과 안전을 모두 확보할 수 있었다.
일자리위원회 내에 설치된 '건설산업TF'는 2017년 12월 각계 전문가의 논의를 거쳐 적정임금제 도입 방침을 밝혔다. 이후 연구용역과 국토부 산하 LH공사 등의 시범사업을 통해 서울시 사례의 효과를 다시 확인했다. 경기도도 2019년부터 도입했다.
지난 6월 18일 정부는 일자리위원회와 관계부처 합동으로 '건설공사 적정임금제 도입방안'을 발표했다. 2023년 1월부터 국가와 지자체가 발주한 300억원 이상 공사를 대상으로 우선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간공사의 경우 민간에 미치는 파급효과 등을 고려하면서 추후 검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