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말 '친재벌' 정책으로 기우나

2021-08-30 11:48:15 게재

문 대통령, '경영권 세습' 악용 우려에도 '복수의결권' 촉구

이재용 부회장 석방에 대기업 감세까지… '재벌 특혜' 비판

재벌개혁을 표방했던 문재인정부가 임기 말로 접어들면서 친재벌, 친대기업 정책으로 기울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수의결권 도입 추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가석방 등 최근 잇따라 친재벌 행보를 보이고 있는 까닭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K+벤처' 행사에 참석해 "경영권 부담 없이 대규모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겠다"며 "비상장 벤처기업의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 허용 법안이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에 협조를 구하겠다"고 밝혔다.

복수의결권 주식은 1주당 1의결권을 부여하는 보통주와 달리 주당 2의결권 이상을 부여하는 주식을 말한다. 적대적 M&A 등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지배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그동안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은 복수의결권 제도 도입을 요구해왔다. 실제 국회에는 1주당 10의결권을 가진 주식 발행을 허용하는 벤처기업법 개정안이 제출된 상태다.

하지만 복수의결권 제도는 주주 평등 원칙에 어긋나고 재벌대기업 편법 승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시단체 등의 반대에 부딪쳐 추진되지 못했다. 올 상반기에도 더불어민주당이 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특혜 논란으로 사실상 중단됐던 것을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재점화한 것이다.

벤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의도일 뿐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지만 재벌 특혜라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기존방법으로 재벌의 경영권 승계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복수의결권 주식이 도입되면 경영세습의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재벌의 가장 큰 숙원사업이 금산분리 규제완화와 경영권 세습인데 문재인정부에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으로 금산분리를 약화시키더니 복수의결권까지 도입해 경영권 세습을 용이하게 하려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이는 박근혜정부에서도 못했던 일'이라고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은 상징적이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사건으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이달 13일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문 대통령이 직접 사면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 대선에서 재벌 총수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해 투명하고 건전한 경영문화를 확립하겠다고 강조했던 것과는 배치되는 결정이었다. 집권 초기 재벌 총수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을 강조하다 경제상황 등을 들어 혜택을 베푸는 과거 정부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청와대는 이 부회장의 가석방은 법무부의 기준과 절차에 따른 것이라며 거리를 뒀지만 재벌에 특혜를 줬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참여연대는 "이 부회장 가석방은 재벌 총수에 대한 특혜 결정이며 사법정의에 대한 사망선고"라며 "후보 시절부터 재벌 총수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겠다던 문 대통령은 약속 뒤집기라는 비판 여론이 일어나자 '국민 공감대'를 운운하며 공을 법무부 장관에게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조세정책도 대기업 감세로 돌아섰다. 정부가 지난달말 확정한 2021년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5년간 발생하는 감세효과 1조5050억원 가운데 대기업에 돌아가는 혜택은 8669억원에 달한다. 반면 서민·중산층의 감세 효과는 3295억원, 중소기업은 3086억원에 그친다. 대기업 혜택이 서민·중산층과 중소기업의 몫을 합친 것보다도 2000억원 이상 많다.

국가전략기술 연구개발·시설투자 등에 대한 세제 지원을 종합하다보니 결과적으로 대기업 혜택이 증가하게 됐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대기업에 대한 세 부담을 늘려왔던 문재인정부의 그동안의 기조와는 달라진 방향이다.

박 교수는 "문재인정부가 임기 말로 갈수록 친재벌로 기울고 있다"며 "집권 초 재벌개혁에 대한 기대가 높았지만 오히려 재벌에 대한 특혜만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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