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관리, MBA 필수과목됐다

2021-09-07 11:49:37 게재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적시생산방식 한계 봉착"

휴지가 동난 상점, 수에즈운하에 좌초된 거대한 화물컨테이너선, 베트남 공장 셧다운, 중국 항구 폐쇄. 코로나19 팬데믹에 공급망 혼란이 벌어지지 않은 날을 찾기 힘든 요즘이다. 대규모 동시다발적인 수요공급 차질에 대응하기 어려운 '적시생산방식'(JIT) 재고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다.

기업들은 이런 상황에 적응하는 데 고전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이례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미국 월마트와 홈디포는 자체적으로 화물선을 전세내 상품을 운송하고 있다. 연말 축제시즌이 다가오면서 상품이 부족해지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물류 전문가들은 항구 병목현상이 당분간 해소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기업들은 공급망 전문가들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공급망 대혼란이 닥치기 전엔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이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BBW) 최신호는 "주요 대학 경영대학원들(MBA)이 공급망관리 커리큘럼을 속속 정비하고 있다. 차세대 물류 매니저들이 미래 공급망 위기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전통적으로 인기가 높은 '금융' 강좌 대신, 이젠 '공급망 관리'가 MBA의 필수과목이 됐다"고 전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학장인 스크리칸트 다타르는 "우리는 그동안 물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며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애리조나주립대 경영대학원 공급망관리 교수인 히텐드라 차투르베디는 "현실세계에서 벗어난 일부 관습처럼, 공급망 교육과 이론은 융통성이 없었다. 우리의 강의는 유연성이 부족해졌다"고 고백했다.

경영대학원들은 이제 공급망 리스크 완화나 데이터 분석, 제조업 리쇼어링 등을 강조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경영대학원은 내년 공급망 리스크관리 석사과정을 개설할 예정이다. 허쉬와 델테크놀로지 등 기업들이 코로나19 팬데믹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주요 사례연구로 삼을 계획이다. 또 이 과정은 현재 이 대학이 준비중인 공급망 관련 새로운 자격증 부여 프로그램과도 연계될 전망이다. 애리조나주립대 역시 공급망 회복탄력성과 관련한 자격증 프로그램을 준비중이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경영대학원 공급망·정보시스템학과 학과장인 케빈 린더맨은 "그동안 공급망 리스크를 다루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석사과정을 통해 더욱 깊이 있게 파고들 작정"이라고 말했다. 이 학과는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올해 3월 수에즈운하에 좌초된 에버기븐호 사건이 일등공신이었다. 좌초사건으로 글로벌 교역이 거의 일주일 동안 마비됐다. 올해 이 학교 학부생 2학년 400명 이상이 대학원에서 공급망 관리를 전공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270명에서 껑충 뛰었다.

럿거스대 경영대학원 교수 앨럭 바베자는 "금융이나 마케팅 과목에서 과락을 받은 경영대 학생들이 이젠 공급망관리 과목을 수강하겠다고 나선다"고 말했다. 인근에 위치한 거대제약사 존슨앤드존슨의 전직 최고경영자들이 이 대학 MBA 교수진에 포진해 있다.

공급망관리를 전공한 학생들에겐 졸업 이후 취업의 문이 크게 넓어질 전망이다. 이달 조지아주에서 열리는 공급망 전공 취업박람회엔 역대 가장 많은 50개 기업들이 참여한다. 예년에 비해 참가 기업 수가 약 2배 늘었다. 올해는 혼다와 하니웰, 프록터앤드갬블(P&G)이 새로 이름을 올렸다.

가을학기 공급망 석사 과정을 시작하는 학생들은 적시생산방식 재고시스템의 한계에 대해 공부할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린(LEAN) 제조방식의 표상이었던 도요타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인기를 얻은 개념으로, 작업 공정의 혁신을 통하여 비용은 줄이고 생산성은 높이는 방식이다.

린더맨 학장은 "일부 기업들은 마치 종교처럼 린 제조방식을 따랐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여유분의 재고를 구할 수 없게 되면서 실패의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미시간대 경영대학원 안현수 석좌교수는 "코로나19로 비용 절감을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는 전통적 재고시스템의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제 추는 반대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손익계산에 대한 월마트의 집착은 전설적이다. 그런 월마트의 미국 재고량이 지난 2분기 20% 늘었다. 크리스마스 시즌 재고 부족을 겪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문을 닫는 공장들, 항구의 정체 상황, 화물차 운전수의 부족 등은 이미 혹사되고 있는 공급망에 심각한 혼란을 더하고 있다.

아마존, 인텔 같은 기업들과 산학연계를 맺고 있는 MIT 운송·물류센터 수석연구과학자인 제러드 괸첼은 "물류가 단지 비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업 경영진들이 자각해야 한다. 잘 정비된 물류 시스템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애플의 팀 쿡이나 제너럴모터스(GM)의 메어리 바라 등은 CEO로 등극하기 전 복잡한 공급망 관리를 담당한 바 있다.

공급망 종사자들이 회계사처럼 자격증을 갖춰야 한다고 믿는 괸첼은 "자사의 공급망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는 기업 경영진들은 모두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며 "이제 공급망 전문직의 시대가 돼야 한다. 20세기가 금융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공급망의 시대"라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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