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붉은 깃발 조례'와 규제·혁신의 균형
정부와 여당의 플랫폼기업 규제에 제1야당까지 동참한 것을 보니 카카오 등 빅테크 기업 때리기가 이번 정기국회의 주요 이슈가 될 전망이다.
카카오 네이버 등 플랫폼기업들이 온갖 산업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면서 골목상권까지 잠식하는 등 자초한 측면도 있으나 내년 3월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득표계산이 깔리지는 않았는지 미심쩍기도 하다. 기존 재벌체제에 대한 개혁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그나마 혁신과 경쟁을 통해 성장하려는 신생기업의 싹마저 잘라내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낳는다.
특히 우리나라는 재벌체제와 더불어 금융을 비롯한 산업 전반에 관의 입김이 강하다. 라임펀드 등 파생결합펀드(DLF) 금융사고 당시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대해 재판부가 오죽하면 "금융기관 규제를 담당하는 고위 관료의 이른바 '규제포획'(regulatory capture) 문제가 퇴임 후 취업 문제와 연관되어 사회적 문제로 지적됐다"고 판결문에 적시하기까지 했을까.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독점력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는 디지털 대변혁 시대를 맞아 세계적 고민거리가 됐다.
이들의 독점 횡포는 막아야 한다. 그렇다고 혁신의 싹을 자른다면 마차를 보호한다고 자동차를 죽이는 영국의 '붉은 깃발' 조례와 같은 꼴이다. 영국은 현재 롤스로이스 재규어 랜드로버 밴틀리 등 쟁쟁하던 자동차 사업체 대부분이 중국 인도로 팔려나가 자국 소유회사는 애스턴마틴 하나 남았다.
플랫폼기업 폐해는 손보되 혁신까지 막아서는 안돼
재벌에 더해 자칫 신독점을 구축할 수도 있는 빅테크 산업에 대해서는 선거 등을 계산에 둔 이벤트성 때리기보다 사려 깊은 대응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반독점'(Antitrust)은 경제시스템에 깊숙이 자리잡은 규범이 됐다. 규범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이 행동하거나 판단할 때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할 가치판단의 기준"이다.
미국은 수정헌법 14조에 따라 법인인 기업도 자연인인 사람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 주체로 명시해 기업의 자유를 한껏 보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업이 따라야 할 경제 사회적 규범을 중시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윌리엄 포겔은 '네번째 각성'이라는 책에서 미국인이 독립전쟁을 통해서 나라를 세운 것이 첫번째 각성, 노예제도를 둘러싸고 갈등으로 나라가 분열하려 할 때 남북전쟁을 통해 하나를 이룬 것이 두번째 각성, 독점기업 해체로 평등주의를 기반으로 사회복지의 기틀을 다진 것이 세번째 각성이라고 했다. 대통령으로 따지면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해당된다. 이들은 기준에 따라 조금 차이는 있지만 미국의 가장 존경받는 3명의 대통령으로 꼽히기도 한다.
시어도어 루스벨트(1901~1909)가 존경받는 이유는 재벌과 독과점을 규제한 것으로 셔먼법을 통해 록펠러 카네기 JP모건 같은 쟁쟁한 재벌을 법정에 세우거나 소유기업을 해체해 미국의 건전한 시장경제를 강화시켜 오늘날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 되는 토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반독점'이 경제 시스템의 규범으로 자리잡아야
바이든행정부에서 반독점 개혁운동을 주도하는 인물들을 '신브랜다이스 학파'라 부른다. 루이스 브랜다이스 연방대법관은 대공황 이후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뉴딜(New Deal)정책에 대해 일부 합헌 판결을 내렸고 거대기업의 독점은 경쟁기업은 물론이고 소비자와 자기 회사 노동자들에게까지 피해를 끼친다고 주장하며 연방 법무부(DOJ)의 반독점법 집행에 대한 확고한 법률적 밑거름을 쌓았다.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수장으로 임명된 32세의 학자 리나 칸은 신브랜다이스 학파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20대 후반 예일대 로스쿨에 다니면서 '아마존을 해체해야 한다'는 논문을 썼던 칸은 그동안 소수의 플랫폼기업들이 미국경제 전반을 지배할 수 있도록 FTC와 법무부가 방치했다며 강력한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시가총액 세계 10대 기업 중 7곳이 플랫폼기업이다. 이제 플랫폼 독점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미국 EU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에 걸쳐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플랫폼기업도 재벌식 문어발 확장을 흉내내지 말고 소비자와 소상공인을 위한 상생방안을 내놔야 한다. 독점규제와 기술혁신 사이에 균형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