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엔 왜 인도출신 CEO가 많을까
MS 나델라, 구글 피차이, 트위터 아그라왈 등
포브스 "문화적 특성에 이민자의 겸손함 결합"
사티아 나델라는 2014년 2월 마이크로소프트(MS) CEO에 취임했다. 테크분야 공룡기업인 MS는 전통적으로 기업문화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창업주 빌 게이츠는 직원들을 가혹할 정도로 달달 볶는 것으로 유명했다. 게이츠의 뒤를 이은 스티브 발머는 협력기업들이 학을 뗄 정도로 냉혹한 사업전술을 구사했다. 그러는 사이 MS는 스마트폰 대전에서 입지를 잃었다. 또 MS의 각종 기술이 구현되는 데스크톱 플랫폼은 클라우드컴퓨팅에 서서히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나델라는 취임 첫 과제로 MS 문화를 바꾸는 일에 착수했다. 인도 태생 불교신자인 그는 '모든 것을 다 안다'(know-it-all)는 식의 오만한 MS 문화를 '모든 것을 배운다'(learn-it-all)는 겸손한 문화로 바꾸는 데 전력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공격적 행동은 더 이상 사내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경영진 회의에서 화를 내거나 고함치는 일이 용납되지 않았다. 나델라는 목소리를 높이지도, 직원이나 경영진에게 분노를 터뜨리지도 않았다. 질책하는 내용으로 가득찬 이메일을 보내지 않았다.
그는 편안한 기업문화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문화의 변화, 전략의 전환은 주효했다. MS의 시가총액은 나델라 취임 당시 3000억달러에서 현재 2조5000억달러로 상승했다. MS는 애플에 이은 전세계 2위 기업이다.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사내문화에 큰 문제가 있는 기업을 이어받았다. 구글은 성적으로 지나치게 자유분방했다. 최고경영진과 직원들 간 불륜이 잦아 사내 분위기가 엉망이었다. 피차이는 겸손하면서도 온화한 매너로 회사 내 잡음을 줄여나갔다.
어도비 CEO 샨타누 나라옌, 아리스타 네트웍스의 CEO 제이슈리 울랄 등 인도출신 기술기업 CEO들도 비슷했다. 기술부문뿐 아니다. 펩시코의 인드라 누이, 마스터카드의 아제이 방가 등 인도 출신 CEO들 역시 기업문화를 온화하게 이끄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실리콘밸리에 인도 출신 CEO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또 그들이 기라성 같은 거대 기술기업의 문화를 성공적으로 바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카네기멜론대 교수이자 하버드대 로스쿨 노동·직장생활 선임연구원인 비벡 와드와는 6일 '포브스' 기고에서 이에 대한 실마리를 좇았다. 1980년 인도에서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2곳의 기술기업을 창업했고, 그중 한 곳을 상장시킨 기업가이기도 하다.
UC버클리대 애너리 색서니언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999년 기준 실리콘밸리의 과학·공학 연구자 중 약 1/3이 이민자였다. 또 실리콘밸리 하이테크기업의 약 7%는 인도 출신 CEO들이 경영하고 있었다. 2006년 듀크대에 있던 와드와는 색서니언 교수와 공동으로 99년의 연구결과를 업데이트하기로 했다. 그 결과 2006년 기준 실리콘밸리 창업자 가운데 52.4%가 이민자였다. 전 직원 중 인도 출신 비율은 6%에 불과했지만 인도 출신 CEO는 15.5%에 달했다.
이민자 출신 CEO 중 약 96%가 학사학위, 74%가 석사 또는 박사학위 소지자였다. 이 범주 내에서 인도 CEO들의 출신대학은 다양했다. 인도 최고 명문대인 인도공과대 출신은 15%에 그쳤다. 와드와 교수는 "의심할 바 없이 인도 이민자들의 교육 수준이 높기 때문에 실리콘밸리에 어필할 수 있다. 하지만 그와 동등한 실력을 가진 미국인들이 많은데, MS와 구글 IBM 트위터 등의 기업들이 왜 인도 이민자들에게 기업운영권을 맡기는지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의 대답은 문화적 가치와 가정교육, 생존경쟁이다. 14억명 가까이 사는 인도에서, 사람들은 만연한 부패와 열악한 인프라, 제한적인 기회에 고통받는다. 진보는커녕 생존을 모색하는 데에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와드와 교수는 "인도인들은 그 과정에서 회복력을 배운다. 또 끝없이 등장하는 장애물들과 싸운다. 갖고 있는 대부분의 물건은 직접 만든 것"이라며 "인도 사람들은 국가와 사회가 부당하게 만들어낸 문제를 우회해서 일하는 법을 배운다. 장애물을 대처하려면 창의력과 자원, 그리고 기업가정신이 필요하다. 인도인에게 기업가정신은 삶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또 사회안전망이 부재하기에, 가족이라는 가치와 가족이 제공하는 응원과 지지가 매우 중요하다. 또 가족은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전세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인도인들 역시 윤리적, 인종적, 성적, 계급적 편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인도인들은 이런 편견들을 때론 못본 체 하거나 아예 적응하는 법을 배운다. 인도엔 6개의 주요 종교가 있다. 인도헌법이 인정하는 지역어만 22개에 달한다. 인도 곳곳엔 독특한 자체 관습과 특성이 있다. 와드와 교수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특히 사업적 맥락에선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여기에 이민자의 특성이 보태진다고 한다. 새로운 땅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이민자들의 공통된 이야기 주제는 고국에 놓고 온 사회적 지위, 그리고 제2의 조국이 된 미국에서 계층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밑바닥에서 고생한 일 등이다. 빈손으로 시작해 성공에 이르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교훈을 준다.
와드와 교수는 "이런 과정은 주요 기업 이사회들이 대부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가치들"이라며 "특히 당연하게 자신이 CEO를 맡아야 한다고 믿는 오만한 창업주의 가족이 경쟁상대라면, 이사회는 갖은 고생을 극복한 이민자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인도 CEO들이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얻는다는 것.
최근 트위터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인도 출신의 파라그 아그라왈을 CEO로 선택했다. 전임 CEO인 잭 도시가 그를 추천했다. 무엇보다 트위터가 기업문화의 변화를 시급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트위터는 단합을 저해하는 기업문화 때문에, 플랫폼 오남용에 따른 비판 때문에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또 잭 도시는 기업운영에 온전히 신경 쓸 수 없는 파트타임 CEO였다. 트위터는 물론 지급결제 기업 스퀘어를 동시에 운영했다. 또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곁눈질을 주기도 했다.
한편 도시의 전임 CEO인 딕 코스톨로도 외부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와드와 교수는 "트위터 내부의 광신적 애국주의 문화, 이사회가 모두 남성으로 구성된 문제 등에 대해 비판을 제기했을 때, 코스톨로의 대응은 합리적 지적에 귀를 기울이는 게 아니라, 외부 비판자를 공개적으로 저격하는 것이었다"며 "인도 출신 CEO라면 그렇게 대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도인들이 미국의 선도적인 기술기업 운전대를 잡게 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