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는 암호화폐 사기에 더딘 수사

2021-12-27 12:01:53 게재

'패스토큰' 수사, 9개월 미적

법령 미비에 피해자도 소극적

암호화폐 개발사와 다단계 판매조직, 가상화폐거래소가 유착했다는 의혹의 1000억원대 사기 사건이 발생했지만 수사는 9개월간 진척이 없다는 지적이다. 가상화폐 상장사에 관한 법령이 없는 데다 노인층이 주 피해자로 대처에 소극적인 것도 원인으로 제기되고 있다.

27일 내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3월 금융감독원 불법금융대응단에 "다단계 판매 회사 유로핀이 가상 자산 '패스토큰'을 이용해 불법 다단계 유사수신 행위를 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공익 신고자는 패스토큰 개발사와 가상화폐거래소가 짜고 '장부거래'를 통해 암호화폐 가격을 단기간에 폭등시키고, 다단계 조직은 노년층 은퇴자를 중심으로 코인 투자를 부추겨 수익을 챙겼다고 주장했다. 장부거래는 보유하지 않은 코인을 장부상으로만 거래해 시세를 교란하는 행위다.

다단계 회사 유로핀은 구좌당 120만원을 받고 투자자를 모집하면서 "코인이 상장되면 대박이 나고 회원 가입 즉시 수당 등을 통해 원금을 돌려준다"고 했다. 투자 설명회에는 가상화폐거래소 임원이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패스토큰은 최고가 800원을 기록한 뒤 가격이 하락해 결국 32원으로 올해 9월 상장폐지 됐고 투자자들은 평균 80~90% 손실을 봤다.

금감원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해 사건이 4월 서울 강남경찰서에 배정됐다. 그러나 두 달 만에 사건은 종결됐다. 경찰이 유로핀 서울사무소와 개발사 등을 방문했지만 공유 오피스는 텅텅 비어 있었고 관련자를 찾지도 못했다. 고소·고발도 없었고 피해자들은 고령으로 지방에서 상경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경찰은 "더 수사할 게 없고, 수사 의뢰 들어온 사건은 이송도 안 돼 6월 말 종결 처리했다"고 말했다.

서초경찰서로 넘어간 사건도 고소인이 없어 수사에 발목이 잡혔다. 가상화폐거래소 관련 법령이 없어 적극적으로 거래소를 뒤질 수 없는 것도 수사의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초 경찰은 "(암호화폐) 상장이 제대로 됐는지 상장사의 자료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유로핀 본사가 있는 대전 둔산경찰서도 "고소가 접수돼 사기와 유사수신 행위 등 다각적인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다"고 했다.

패스토큰 판매 조직에 도용 피해를 봤다는 황승익 NFC 대표는 "노인층을 대상으로 온라인 단톡방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해 피해자들이 전국에 있어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며 "다단계로 관계들이 연결돼 고소·고발도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 지역 피해자 김 모씨는 "직급이 올라가면 매달 80만원이 나온다고 해서 10구좌를 샀는데 한 번도 수당을 받은 적이 없어 돈을 날린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고소에 참여하지 않았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가상화폐 사기는 진화하고 있는데 관련 법령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서 법령의 빠른 정비가 필요하다"며 "경찰도 여건만을 따지지 말고 보다 적극적으로 수사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패스토큰 개발사 관계자는 "토큰 지갑과 코인을 개발했을 뿐 우리 회사도 피해자"라며 "다단계 사업자가 무단으로 자료를 도용하고 마치 관련 있는 것처럼 과장해 경찰에 여러 건을 고소한 상황이다"고 밝혔다. 또 "관련 보도에 대해서도 다단계 사업자가 허위 과장으로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했다는 진술 내용을 확보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박광철 기자 pkcheol@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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