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4일 근무제, 대퇴직 시대(Great Resignation) 해법인가

2022-02-23 11:30:05 게재

미 채용전문가·기업대표들 "생산성 높고 번아웃 줄어 … 인재 잡는 강력한 수단"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 전자상거래 소프트웨어 기업인 '볼트'는 "올해부터 영구적으로 주4일 근무제로 전환한다"고 선언하면서 각종 신문 헤드라인을 장악했다. 볼트는 "지난해 3개월 동안 주4일제를 실험한 결과 생산성이 늘고 번아웃(탈진 증후군)은 줄었다"며 "대부분의 직원과 간부들이 주4일제를 찬성했다"고 밝혔다.

인재채용 전문매체 '휴먼리소스디렉터'(HRD)는 22일 "이 회사의 정책 전환이 알려지면서 인재들의 입사지원서가 물밀듯 들어오는 상황"이라며 "실리콘밸리의 다른 기업들도 주4일제 도입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동시간을 줄이자는 생각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모멘텀을 얻었다. 오는 4월 클라우드 펀딩 플랫폼 '킥스타터'를 필두로 한 미국과 캐나다 35개 기업들이 6개월 동안 주4일제 실험을 수행한다.

비영리기구 '포데이 위크 글로벌'(4 Day Week Global)이 주도하는 이 실험엔 약 2000명에 육박하는 노동자들이 참여한다. 이와 비슷한 파일럿 프로그램들이 영국과 호주 아일랜드 뉴질랜드에서도 준비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하원의원 마크 타카노는 지난해 여름 주4일제 법안을 제출했다. 주당 40시간으로 정해진 근무시간을 32시간으로 줄인다는 내용이다. 타카노 의원은 "전세계적으로 이뤄진 주4일제 실험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증명됐다"며 "생산성이 상승했고 삶과 일의 균형(워라밸)이 개선됐으며 노동자의 사기와 의욕이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잠재적으로 노동자들의 정신, 육체적 건강이 좋아지면서 건강보험료와 이에 대한 고용주의 부담이 낮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몇몇 기업을 중심으로 한 미국과 달리 다른 나라의 경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벨기에정부는 이달 초 보수 삭감 없이 주4일제를 선택할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를 법제화했다. 물론 고용주들은 노동자의 요청을 서면으로 된 설명을 곁들여 거부할 수 있다.

아이슬란드는 2015~2019년 주4일제를 실험했다. 보수 삭감 없이 주당 노동시간을 40시간에서 35~36시간으로 줄였다. 약 2500명의 노동자들이 이 실험에 참여했다.

아이슬란드 비영리기구 '민주주의와 지속가능성 협회'(Alda), 영국 싱크탱크 '오토노미'(Autonomy)가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참가자들의 만족도·행복도가 크게 증가했다. 업무과정이 최적화되고 동료 간 협업이 늘었다. 노동시간이 줄었지만 생산성은 그대로거나 개선됐다. 현재 약 86%의 아이슬란드 노동자들이 주4일제를 선택할 권리를 갖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재팬은 2019년 여름 한달 동안 주4일제를 실험한 뒤 "생산성이 40% 높아졌다"고 밝혔다. 스페인과 스코틀랜드도 현재 주4일제를 실험하고 있다.

주4일제에 대한 국제적인 호평이 많지만, 세계 최대 경제국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까. 타카노 의원은 미국 온라인매체 '악시오스'에 "지금 노동시장은 노동자가 우위에 있다"며 "지금이야말로 주4일 개념을 제시할 바로 그 시간"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현재 '대퇴직 시대'(Great Resignation)를 맞았다. 미 전역의 기업들이 역대 최고의 매출을 기록하는 때에 노동자들은 속속 일자리를 떠나고 있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4700만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직장을 그만뒀다. 노동자들은 환경친화적인 직장으로 옮기거나 더 많은 연봉을 요구하거나 보다 나은 노동조건을 원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퇴직과 이직이 늘어나면서 기업들은 노동력 부족 사태를 맞고 있다. 인재확보전에서 이기기 위해선 의료보험과 치과·안과보험, 401(k) 퇴직연금 등 전통적인 혜택을 넘어서는 카드를 노동자에게 제시해야 한다.

시애틀 소재 HR컨설팅기업 '리버브'(Reverb)의 창업자 겸 CEO인 미카엘라 키너는 주4일제가 노동자를 끌어들일 궁극의 협상카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MS와 아마존의 인재채용 부서에서 일했던 그는 "노동자가 일하면서 개인적 삶을 보상으로 즐길 수 있어야, 업무에 더욱 전념하고 기업에 계속 남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재를 고용하고 키우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인재 보유를 값으로 매기기 어렵다. 높은 역량을 내는 멤버가 그만둘 때, 그가 보유한 지식도 함께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HRD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직장문화의 거의 모든 측면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주5일제가 계속 유지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포드자동차는 1926년 자사 노동자에게 쇼핑과 여가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토요일 근무제를 없앴다.

시사주간지 타임에 따르면 대공황 시대 대량해고가 일어나자, 미국의 노동조합들은 주5일 40시간 노동제를 도입하기 위해 미 전역에서 싸웠다. 미 의회는 1938년 공정노동기준법을 통과시켜 주당 노동시간을 44시간으로 제한하고 초과근무에 대해 1.5배의 보수를 지급하는 내용을 법제화했다. 2년 뒤엔 주당 노동시간을 다시 40시간으로 줄였다.

HRD는 "거의 100년 동안 유지된 주5일제는 어쩌면 사라질 시간을 맞았는지 모른다"며 "코로나19 팬데믹이 전통적인 노동모델을 와해시켰다"고 전했다.

많은 노동자들이 생애 처음으로 집에서 근무하게 됐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인생의 우선순위를 다시 평가하게 됐다. 보다 많은 시간을 가족 친구들과 썼고, 직무에 대한 생각은 이전보다 줄었다. 탄력성은 노동자의 우선순위가 됐다. 그리고 주4일제는 탄력성을 쉽게 만들어준다.

미국 노동자들의 약 83%가 주4일제를 찬성한다. 미국 인재채용 자문기업 '굿하이어'(GoodHire)가 2020년 5월 4000명의 전일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의 주4일제 찬성률은 가장 높은 90%, Z세대는 가장 낮은 76%를 기록했다. 이들은 현재 노동인구에 속했거나 곧 속할 세대들이다.

그렇다고 미국 기업들이 조만간 주4일제를 대대적으로 도입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샌프란시스코 소재 온라인 직장보험 등록 업체 '이즈'(Ease)의 인재채용 상무인 마리 켐프는 "미국 기업 상당수가 여전히 재택, 원격근무를 도입하는 것을 고심하는 상황에서 주4일제는 이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의 치명적인 변종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확진자가 폭등하지 않았다면 많은 기업들은 재택근무가 생산성에 악영향을 준다는 근거도 없이 노동자들에게 사무실로 나오라고 요구했을 것"이라며 "직원들의 재택근무를 믿지 못하는 기업은 주4일제의 효과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샌프란시스코 소재 직장문화 플랫폼 기업인 '엠트레인'은 지난해 8월부터 주4일제를 시험적으로 도입했다. 창업자 겸 CEO인 재닌 얀시는 "현재 노동자의 감정을 분석하고 생산성을 측정하고 있다. 물론 주4일제에 대한 고객의 반응도 살펴보고 있다"며 "직원들이 주4일제를 통해 동기를 부여받고 있으며 새로운 도전과제를 맞아 기량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4일제로 인한 생산성 감소나 고객의 민원 제기 등 부정적 이슈는 없었다"며 "우리로선 매우 큰 걸음을 내디뎠다. 지금 상태라면 주4일제를 영구 도입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업·경제 전문매체 '패스트컴퍼니'(Fast Company)에 따르면 다목적 메시징 앱 '록'(Rock)의 창업자이자 CEO인 겐조 퐁은 "주4일제는 '두루 적용되는'(one-size-fits-all) 해법은 아니다.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노동의 방법과 시간을 재고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많은 기업들이 원격 또는 재택근무가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는 기업들의 사업 운영 방식을 다시 생각토록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채권추심 스타트업 '인데티드'(Indebted)의 창업자이자 CEO인 조시 포어맨은 최근 주4일 32시간 노동제로 바꿨다. 그는 "주4일 노동제를 선언하고 첫번째 45일 동안, 우리는 과거 넉달 반 동안 진행했던 채용 때보다 더 많은 지원자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전과 달리 지금은 대퇴직 시대에 직면했다. 주4일제는 노동자를 유지하고 끌어들이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며 "현재 직원들은 번아웃이 줄었고 직무 만족도는 더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