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사기 지능화되는데 법률·제도는 제자리걸음

"사기범 통장에서 내 돈 빠져나가는데도 바라만 봐야"

2022-04-15 11:32:14 게재

투자 빙자 사기에 속수 무책 … 범죄 이용 통장 지급정지, 상습 범죄자 신상공개 논의

암호화폐(코인) 투자 등을 미끼로 투자자를 모집한 뒤 투자금을 가로채는 등 가상자산 유사수신 관련 사기가 급증했다. 하지만 피해사실을 알아도 현행 법과 제도가 피해자 보호에 한계를 드러내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15일 경찰 등에 따르면 암호화폐 사기의 가장 흔한 수법은 다단계 판매(유사수신) 사기다. 자신들이 발행·운영하는 암호화폐나 거래소에 일정 금액을 투자하면 일정 수익을 돌려준다고 속이는 식이다. 이들은 암호화폐 발행, 투자자 모집, 홍보자료 배포 등 역할을 나눠 범죄를 저지르는 등 갈수록 지능화한 사기 수법을 보이고 있다.

최근 암호화폐(코인) 투자 등을 미끼로 투자자를 모집한 뒤 투자금을 가로채는 등 가상자산 유사수신 관련 사기가 급증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코인원 고객센터 모습. 사진 연합뉴스


그러나 피해 회복의 첫걸음인 계좌 지급정지 제도가 도입되지 않아 알고 당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보이스피싱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범행이 의심되면 계좌 지급정지가 이뤄진다. 하지만 돈을 받아 대신 투자하는 등의 행위는 지급정지 대상에서 빠져 있다. 전기통신금융사기 범주에서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를 제외한 탓이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 사기 사건 수사 중에 주거래 은행에 지급정지 요청을 했지만 '현행법상 지급정지를 금융기관이 따를 의무가 없으며 민사소송 문제도 있어 지급정지를 못한다'는 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경찰이 2400억원 확인한 통장, 2주 후 120억만 남아 = 사정이 이렇다보니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더라도 해당 계좌가 상당기간 피해자들의 돈을 가로채는 범죄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지급정지가 늦어지면서 범죄수익 환수에 어려움이 크다는 것이 일선 경찰들의 지적이다.

현재 범죄수익 환수는 몰수·추징 보전 제도에 따라 이뤄진다. 경찰이 신청하면 검찰이 청구한 뒤 법원이 인용 여부를 결정한다. 신청부터 법원 결정까지 며칠이 걸린다.

즉, 법원이 몰수·추징 보전 결정을 최종적으로 내리기 전에 계좌에서 범죄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역대 최대 암호화폐 사기 범죄로 꼽히는 '브이글로벌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브이글로벌 사건을 수사하던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해 4월 15일 회사 계좌에 남은 2400억원에 대해 기소 전 몰수보전을 신청했다. 범죄 피의자가 확정 판결을 받기 전 범죄 수익을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다.

하지만 같은 달 29일 법원에서 인용 후 확인한 결과, 브이글로벌 계좌에 실제 남은 돈은 약 120억원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 청구 및 법원 인용까지 걸린 2주 동안 2300억원가량이 출금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초기 수사 단계에서 자금을 동결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에는 다른 금융사기 범죄에도 지급정지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법안들이 계류돼 있다.

국회 김용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3월 24일 사이버상에서 발생하는 투자사기도 방지하고 구제할 수 있도록 하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김 의원은 "기존 보이스피싱이 사람들의 공포심이나 불안을 이용했다면, 투자를 가장한 사기는 일반 국민들이 금융상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점을 이용한 보다 지능화된 수법"이라며 "투자 가장 사기 역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전기통신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기존 보이스피싱과 실질이 같음에도 현행법상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위에 포함돼 있지 않아, 피해자들이 금융기관에 지급정지 등을 요청해도 구제를 받기 힘들었다"고 지적했다.

물론, 계좌지급정지 대상 확대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투자 자문·일임 사기를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위에 포함할 경우 피해자의 일방 주장에 의한 지급정지가 빈번히 발생할 수 있어 선의의 계좌 명의인의 재산권 행사에 과도한 제한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QRC뱅크 사건 주범, 집행유예 받고 재범 = 일부에서는 상습 사기 범죄자도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기 범죄자들이 처벌을 받고도 또 다른 법인 등을 만들어 투자자를 모아 피해를 주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가상화폐에 투자하면 고수익 배당을 해주겠다며 투자자들을 속여 수천억을 끌어모으는 등 '불법 다단계'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QRC뱅크 대표 A씨가 대표적 사례다. A씨는 지난 2018년 6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등 동종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국회에는 박재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 발의한 '다중사기범죄 피해 방지법'이 계류돼 있다.

법안은 '법원으로 하여금 상습으로 다중사기범죄 행위를 한 자 등에게 유죄판결을 선고하는 경우 성명, 나이, 주소 및 실제거주지, 사진, 다중사기범죄 요지 및 전과사실 등의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명령을 동시에 내리게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한편 경찰도 범죄수익추적 체계를 확대 개편해 범죄수익을 철저히 추적하고 각종 민형사상 구제절차 등 피해회복 절차 연계 및 안내를 강화하는 등 실질적인 피해회복 활동 및 입법 제도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갈수록 지능화·조직화되는 등 범죄 양상에 맞는 대응체계를 마련하고 유형별 단속과 피해회복, 법·제도 개선을 통한 예방 등 전방위적 대응강화 정책을 추진해 다중피해사기 근절을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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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철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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