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천국 일본, 돌봄서비스 DX(디지털 전환)가 살길
2035년까지 140만명 추가 인력 필요 … "디지털 활용, 효율적 인력재편으로 GDP 2% 상승"
일본경제연구센터 보고서
일본은 노인의 나라다. 65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30%에 육박한다.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해지는 75세 이상 노인도 인구의 15%에 달한다. 의료와 돌봄 관련 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종사하는 사람만 700만명에 이른다. 2035년이 되면 추가로 140만명이 필요하다는 추산도 나온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지만 경제논리만 따지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노동시장에서 효율적 인력이동을 가로막는다. 일본경제연구센터(JCER)는 최근 일본의 현재와 미래를 볼 때 의료와 돌봄분야에서 디지털혁신을 통해 국내총생산(GDP)을 추가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돌봄산업, 생산인구 10% 이상 종사
일본 총무성이 지난 15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일본의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전체 인구의 59.4%, 65세 이상 인구는 28.9%를 차지했다. 이론적으로 두 명의 현역세대가 고령자를 부양하고 돌봐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75세 이상 고령자도 14.9%에 달한다.
이에 따라 일본은 최근 20년간 의료와 간병을 포함한 '의료·복지' 분야 취업자가 1.8배 늘었다. 취업자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0%를 넘었지만 인력부족은 여전하다. 특히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이른바 '단카이세대'가 모두 75세에 이르는 2025년이면 이러한 문제는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일본경제연구센터는 지난 1일 '디지털 전환(DX)을 활용한 의료·돌봄분야 생산성 향상'이라는 보고서에서 2035년까지 관련 분야의 노동력 수요는 지금의 1.2배 수준인 8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현재보다 140만명이 더 필요하다. 지난해 기준 생산가능인구(7450만4000명)로 비교해도 10% 이상이 이 분야에서 일해야 하는 셈이다. 갈수록 노동력이 줄어든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비중은 더 늘어난다.
보고서는 DX의 원활한 도입여부에 따라 2035년 이 분야에 요구되는 인력의 규모도 큰 차이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지금과 같은 낮은 생산성으로는 2035년까지 많게는 140만명의 추가적인 인력이 필요하지만, 혁신이 수반되면 50만명 정도로 충분하다는 관측을 내놨다. 이에 따라 해당분야 인력 1명이 돌볼 수 있는 사람도 지금의 2.4명에서 3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
데구치 쿄코 JCER 주임연구원은 니혼게이자이신문 기고에서 "DX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면 2035년까지 의료와 돌봄 분야의 취업자수 증가를 1/3 수준으로 억제할 수 있다"며 "디지털혁신이 원활하게 진행되면 이 분야에 취업하는 사람의 증가를 억제할 수 있고, 보다 생산성이 높은 분야로 인력의 이동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이런 방식으로 노동시장이 좀 더 효율적으로 재편되면 2035년까지 실질국내총생산(GDP)은 2% 정도 상승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내다봤다. 노동력인구의 감소와 75세 이상 인구의 급증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한정된 노동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배치하느냐가 생산성 향상과 경제발전에서 결정적이라는 의미이다.
지역내 혁신사례 광역단위 확대 과제
의료 및 돌봄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디지털혁신을 어떤 방식으로 진전시킬지가 문제다. 의료현장에서는 정보의 공유와 원격진료의 활성화를 강조했다. 일본은 2024년부터 의사에 대해서도 근로시간 관련 시간외 근무에 대한 벌칙 규정을 도입해 장시간 진료와 치료가 어려워지면 의료인력 부족이 더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진료과목 및 지역간 의사의 편중도 심각하다. 일본의 의사수는 최근 20년간 1.3배 늘었지만 특정 진료과목과 지방의 인력부족은 심각하다. 보고서는 "의료는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제조업과 달리 재고를 준비해 두기 어렵다"면서 "인력의 미스매칭을 해결하기 위해 디지털화를 통해 각종 정보를 신속히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대표적인 성공사례는 2020년 4월 구사츠종합병원을 중심으로 세운 '코난메디컬컨소시엄'이 사가현 남부에 있는 5개 도시의 의료와 요양분야 5개 법인 101개 시설을 하나로 묶은 의료 연계 시스템이다. 이 컨소시엄은 '커맨드센터'로 불리는 정보공유시스템을 통해 입퇴원 환자의 병상 확보와 간호사의 파견 등을 조정한다. 병동마다 예정된 수술과 치료 건수, 배치된 간호사가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을 점수화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병원간 업무의 혼잡도를 3단계로 예측하는 시스템을 통해 인력과 수술실, 입원실 등을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도록 했다.
의료현장에서 원격진료도 강력한 대안이다. 원격진료 시스템에 의한 중증환자의 관리에는 집중치료 전문의가 관여해야 하는데 일본의 경우 지방을 중심으로 관련 전문의가 부족하다. 전문의가 아예 없거나 시설이 없는 지역도 있다. 이런 조건에서 원격진료 시스템을 확산하면 전문의의 적절한 진료와 치료서비스가 가능해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베시의 T-ICU이다. T-ICU는 등록된 집중치료 전문의가 대기하는 '서포트센터'와 일반 병원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전문의가 일반 의사에게 조언하는 시스템이 가능하다. 고베시는 코로나19 감염의 확산으로 노인들에 대한 진료와 집중치료 수요가 늘어난 2020년 이후 T-ICU에 의한 원격 치료를 활용하고 있다. 고베시의 사례는 작은 지역단위 의료시설을 원격진료 시스템으로 연결한 경우이지만 좀 더 넓은 광역단위에서 네트워크 연결이 가능하고, 집에서 직접 진료와 치료를 받는 단계로 나아갈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시스템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전자 진료기록카드 공유시스템이 필수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17년 현재 전자 진료카드의 도입률은 병원의 경우 43.9%, 일반진료소는 41.6%이다.
우리나라도 2035년 고령자 30% 넘어
일본에서도 돌봄 서비스는 힘들고 급여도 적은 직업이어서 인기가 없다. 요양과 간병 등 돌봄 노동에 종사하는 구인배율은 2019년 이후 조금 떨어졌지만 3배 이상이다. 노동자 1명에 3곳의 일자리가 있다는 의미다. 일본의 유효구인배율이 1.2배 수준임을 고려하면 구인난이 극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집권 이후 임금인상을 주도하면서 가장 먼저 임금을 올려야 할 곳으로 지목한 곳이 이들이다.
75세 이상의 고령자가 늘어나면 당연히 사회적으로 돌봄 서비스의 수요는 크게 증가한다. 일본에서 법적 '요개호대상'(돌봄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준)은 70대 후반부터 급격히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현재 이런 대상이 668만명으로 20년 만에 2.7배 증가했다.
JCER 보고서는 이 분야에서 디지털혁신과 관련 △돌봄인력 상호 커뮤니케이션 강화 △로봇 등 최신 기술의 활용 등을 제시했다. 특히 돌봄 시설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노인들에 대한 직접적인 신체적 정신적 보호보다 각종 기록과 업무 인수인계 등 부차적인 업무에 써야하는 시간이 근로시간의 20~30%에 달한다는 조사도 있다. 이에 따라 돌봄인력 상호간의 보고와 연락, 공유시스템의 디지털화가 필요하다.
돌봄 로봇 등 새로운 기구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시설이나 자택에서 목욕이나 배설, 식사 등 직접 돌봄에 관한 분야에서 로봇의 활용이 가능해지고 있다. 예컨대 노인이나 환자가 혼자 일어나기 힘들 때 로봇이 도와줄 수도 있다.(사진 참조)
여러명이 해야 하는 일을 한명이 할 수도 있다. 이동에 필요한 로봇을 사용하면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조사에 따르면 로봇의 도움을 받으면 사람의 도움에 비해 이용자들의 심적 부담도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 다양한 IT시스템을 전혀 도입하지 않은 시설이 전체의 1/4을 넘는다. 상당한 정도의 일괄 시스템을 정비한 시설이나 기관도 40% 가까이 되지만 여전히 양적 질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한편 갈수록 고령화가 심각해지는 한국도 먼나라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65세 고령인구는 16.6%로 일본의 2000년(17.4%)과 비슷한 수준이다.
인구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2035년이면 65세 이상 고령자 비중이 전체 인구의 30.1%로 지난해 일본 수준을 넘어선다. 15~64세의 생산가능인구도 지난해 71.6%에서 2035년 61.8%로 줄어 현재 일본 수준과 비슷해진다. 하지만 의료 및 돌봄 서비스에서 어떻게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시장의 효율적인 인력이동과 배치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활발한 논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