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 체육 과제│인터뷰 - 정용철 서강대 교수

"학생선수 학습권은 기본적으로 보장해줘야"

2022-04-28 11:12:20 게재

운동선수들에게 제2의 진로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 스포츠윤리센터, 계속 지원 필요

■코로나19가 체육 분야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

사상 초유의 일이기 때문에 생활체육이나 프로스포츠 등 각 분야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프로스포츠의 경우 처음엔 '어떻게 관중 없이 경기를 하느냐. 이건 스포츠에 대한 모독'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무관중 경기에 대체로 적응했다. 야외에서 하는 골프 같은 특정 종목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오히려 상한가를 쳤고 걷기도 엄청나게 활성화됐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소중함이 커지듯 코로나19 상황은 체육, 신체 활동에 대한 전국민적 각성의 계기가 됐다.

코로나19 첫해에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학생들은 완전히 비대면으로 1년을 보냈다. 이들에게는 코로나19 상황이 굉장히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글쓰기를 배우는 것처럼 어린 나이에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스포츠에 대한 리터러시(literacy, 문해력), 체육에 대한 소양이 있는데 그것을 배우지 못했다. 가상현실(VR)과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스포츠를 접근할 통로를 열어줬어야 했는데 다 닫힌 상태에서 방법이 없었고 당시에는 감염병 대응에 급급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장기적 영향은 당분간 지켜봐야 할 문제다.

정용철 서강대 교수│△전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 민간위원 △대학스포츠협의회(KUSF) 집행위원 △스포츠인권연구소 사무처장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 △문화연대 집행위원. 사진 이의종


■국민들이 일상 속에서 좀 더 스포츠 활동을 즐기려면 어떤 정책을 펴야 할까.

요즘 방송인 김민경씨가 나이키 광고 모델을 하는데 주제가 '모두의 운동장'이다. 2019년 스포츠혁신위원회(혁신위)의 주제가 바로 '모두를 위한 스포츠'였다.

나이키 광고가 핵심을 잘 짚었다. 김민경의 몸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운동선수의 전형적 이미지와 다른 지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운동을 즐기고 잘 하며 이를 유튜브를 통해 선보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쾌감을 선사한다. 나이키 광고는 특정 몸을 가져야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깨부수는, 신선하고 경계를 허무는 시도다. 민간기업의 캠페인이지만 고무적이다.

일반 국민들의 체육 활동을 위한 스포츠클럽 활성화는 문재인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였고 더디지만 여전히 진행은 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탑다운' 방식이어서 자생력이 별로 없다. 우리나라 스포츠클럽의 특징은 폐쇄성에 있다. 특정 단체나 동호인들이 시설과 장소를 독점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동네 약수터에 있는 배드민턴클럽에도 들어가는 게 어렵다. 이제 명실상부한 '모두의 운동장'이 돼야 한다. 여성이, 어린이가, 몸이 불편한 사람이 와서 운동을 하려고 하면 할 수 있어야 한다. 근육을 과시하는 운동이 아니라 누구나 원할 때 10분 거리 체육시설에 가서 운동을 즐길 수 있게 접근성, 개방성이 보장돼야 한다.

동네 초등학교에 가서 배드민턴을 칠 수 있도록 오후 4시 이후에는 스포츠클럽 담당자가 교장 대신 학교시설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또 동호회나 단체가 독점하는 시설들을 풀어 일반 국민들과 공유하는 등 기존 시설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체육계에서 폭력 등 사건이 끊이지 않는데 이유는 무엇인가.

선수들 상담을 해 보면 거의 마지막에 나오는 얘기가 '갑질'이나 감독과의 관계, 성희롱 성폭력 문제들이다. 경기를 어떻게 잘 이끌고 메달은 어떻게 딸지 2시간여 얘기하다가 선수들이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라고 하면 가슴이 철렁한다. '옛날 얘기'라고 하는 전문체육단체 관계자들도 있지만 아직도 그런 문제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드러내놓고 하는 폭력은 많이 줄었지만 더 교묘한 방식으로 선수들을 착취한다. 이를 가해자 개인의 일탈로 보고 그 사람을 단죄하는 방식으로 '꼬리 자르기'를 해선 안 된다. 이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덮는 것이다. 수많은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잘못을 하고 피해를 입는다면 이는 구조에 문제가 있는 거다. 구조의 문제로 접근을 해야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 해결할 수 있다.

■학생선수들의 학습권은 어떻게 보장해야 할까.

학교에서 운동하는 선수들을 학생선수라고 한다. 학교에 다니는데 학생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학생이 맞는데 마치 학생이 아닌 것처럼 이들 스스로, 그들을 바라보는 학교 관계자도 생각한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학습권 침해의 사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학생선수 1명이 펜싱을 그만두려고 한다. 펜싱을 계속 하면 자신의 장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 그가 나가면 팀 유지가 안 된다.

그래서 코치는 '나는 너를 절대 운동 그만두게 못한다'고 호통친다. 또 그 드라마에서는 대학진학을 결심한 선수에게 '수능 400점 중에 80점 받아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라며 걱정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400점 중 80점이 불안한 수준인 거다.

누군가의 성공을 위해서는 소위 '밑에서 깔아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할 때, '수많은 깔린 인생들은 누가 책임지느냐'가 학생선수 학습권 보장의 핵심이다. 특히 야구 축구 농구 같은 인기 종목이 아니라 펜싱 사격 등의 종목은 소수 중에서도 소수가 하고 이 종목에서 메달을 따고 직업을 가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리나라 전문체육의 선수 양성 체계는 잔인한 외줄 인생이다. 줄타기를 하면서 가다가 떨어지면 이를 받쳐줄 안전망이 없다. 굉장히 위태롭다. 외국에서는 선수들이 또 다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원을 한다. 이를 '듀얼 커리어(dual career)'라고 한다. 전문적으로 운동해온 분야를 깊이 들어가거나 법학 등 전혀 다른 분야를 공부한다. 대부분 다른 분야로 전향할 때 운동선수 경험은 장점으로 작용한다. 운동선수 경력을 자산으로 다른 분야에서도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나간다.

■혁신위 권고는 잘 이행되고 있나.

혁신위는 빙상계 성폭력 사건이라는 국민적 충격 속에서 대통령이 나서서 스포츠 개혁을 완수하라고 만든 조직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체육계의 위기의식과 국민적 공감대가 만나 권고가 공식적으로 채택되고 발표가 됐다는 의미가 있다.

청와대의 의지가 컸기 때문에 동력이 굉장히 컸고 저항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제대로 틀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당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권고를 7차까지 했다. 스포츠윤리센터 설립, 학교체육 정상화(학생선수 학습권 보장), 스포츠기본법 제정, 스포츠클럽 활성화 등을 다뤘다.

혁신위는 전문체육을 포함한 전체 스포츠 정책을 하나로 꿰어 개선하고자 했다. 이전에는 전문체육이나 생활체육 혹은 유소년체육 등 하나씩만 개선하고자 하다 보니 해결이 안됐다. 이것들이 모두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었기 때문이다. 또 연차별로 세부적인 정책 실행까지 언급했다.

혁신위에는 민간위원 15명에 당연직 정부 부처 차관급 위원 5명이 참여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기획재정부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함께했고 이들 모두 권고안에 최종사인을 했다.

문재인정부의 체육개혁 의지가 떨어지면서 혁신위는 1기에서 그쳤다. 이후 문체부와 교육부가 혁신위 권고를 이행하고 있는데 워낙 전문체육의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혁신위 권고안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한다. 학생선수의 인권을 강화한다고 하면서도 '학생선수 출석인정 결석 허용일수 축소'라는 혁신위 권고안을 이행하지 않고 이전처럼 연간 수업일수의 1/3 범위에서 허용한다고 한다. 학습권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권리 중 하나인데 이를 보장하지 못하면서 인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충돌된다.

학부모들은 사실, 권고안에 반대한다. 자기 자식의 미래가 걸려 있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렵다. 내 자녀가 고3이고 전국대회 입상 성적이 있어야 대학에 지원할 수 있다고 한다면 주중에라도 경기가 열리고 이에 출전해야 한다.

문제는 전문종목단체에 있다. 예를 들면 과학적 지원은 받아들이고 학생선수 학습에 대해서는 '현장 의견을 들어보자'고 하는 식이다. 정치권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보다는 표가 되면 움직이는 식이다. 안타까운 지점이다.

■체육 관련한 법제도 개선에는 진전이 있었나.

국민체육진흥법이 2020년 개정되면서 '체육을 통해 국위 선양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는 문구가 삭제됐다. 국위 선양이 우리나라 전문체육 최우선 목표였는데 그 목표가 삭제됐다는 것은 굉장히 큰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또 혁신위 권고안에 따라 2021년 스포츠기본법이 제정됐다. 다만 스포츠가 국민이 누려야 할 기본권이라는 것을 선포하고 이에 맞게 조항들이 포함돼야 하는데 법안 뒤로 갈수록 스포츠진흥법처럼 만들어졌다. 기본법이라는 인권의 탈을 쓴 일종의 진흥법이 돼 아쉽다. 이에 스포츠인권연구소를 중심으로 관련 논의를 모으고 있다.

■스포츠윤리센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혁신위는 1차 권고에서 독립적이면서 전문적인 스포츠 인권 기관을 설립하라고 권고했다. 문체부 산하에 있지만 독립적으로 활동을 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인권센터들의 기능을 모아 좀 더 효과적, 통합적으로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인권침해에 대응하도록 했다.

원래 스포츠윤리센터가 아니라 '스포츠인권센터'라는 명칭이었다. 인권과 윤리가 비슷하지만 다른 개념이다. '윤리'에는 '가해자를 벌 준다'는 의미가 강한데 '인권'은 보다 기본적 권리를 지키는 것을 뜻한다. 이곳이 스포츠 분야에서 인권의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

다만 문체부 산하에서 독립적 기관으로 활동하는 게 쉽지 않았고 예산이나 인력도 기존 계획보다 많이 축소됐다. 특히 전문인력으로 뽑은 조사관들이 다른 분야 조사관이라 전문성을 갖추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노조가 만들어지면서 당시 이사장과의 갈등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츠윤리센터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

■스포츠기본법에 명시된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스포츠기본법에는 국무총리 산하에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를 두는 내용이 명시돼 있어 시행이 될 거다. 없던 게 생기니까 나름대로의 기능을 확보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과연 위원회가 전문체육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고민하는 선수들과 지도자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점은 있다.

대선 기간에는 체육부, 체육청 신설 등의 논의가 있었다. 일본은 스포츠청을 만들었고 우리나라도 일본의 사례를 연구하면서 논의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독립 부처가 체육의 발전에 좋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문체부 안에 하나의 부서로 있는 것보다 전문 업무를 할 가능성은 있겠지만 독립 부처가 제대로 기능을 하려면 그에 맞는 역량을 갖춰야 하는데 그것이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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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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