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3년

피해자들 "보복 두려워 신고 못한다"

2022-05-11 11:05:32 게재

"참거나 떠나거나 선택해야" … 5인 미만은 법 사각지대

"대표와 팀장이 지속적으로 괴롭힌다. 야간이나 주말에도 업무 카톡을 보내고, 바로 확인하지 않으면 '응답이 느리다'며 화낸다. 최근에는 'x발, 일을 어떻게 처리했길래 이래'라며 폭언을 했다. 괴롭힘으로 인해 2년 이상의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으며, 공황장애와 불안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신고를 하면 2차 가해를 당할까 두려워 신고하지 못하고 있다. "(직장갑질119 제보자)

"팀장이 회사 창고에 감금하고 '능력이 부족하니 회사를 나가라'며 소리지르고, 다른 직원들 앞에서 비하적 표현을 일삼았다. 결국 직장 내 괴롭힘으로 산재판정까지 받고 휴직하고 있다. 아직까지 트라우마에 직장에 나가기 무서운데 회사에서는 가해자와 분리조치 등을 제대로 취하지 않고 있다."(한 디자인 회사 근로자)

직장갑질119 회원들이 10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에서 70년 낡은 근로기준법 재건축 선포식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 직장갑질119 제공


코로나19 방역조치 완화로 직장인들이 대면근무로 복귀하고 있다. '직장갑질' 문제가 다시 논란거리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가 규정돼 있지만 현실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피해 근로자들과 전문가들의 일관된 의견이다.

최근 직장 내 괴롭힘을 회사에 신고했다가 해고당한 중소기업 과장 A씨는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팀장의 괴롭힘에 대표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는데 며칠 후 회사의 압박으로 사직할 수밖에 없었다"며 "더러워서 피한다는 심정으로 근로자는 괴롭힘을 참거나 퇴사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 형사처벌 어려워 = 직장 내 괴롭힘은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에 규정됐다.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 즉, 직장 내 괴롭힘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 그 자체만으로 형사처벌 규정이 없다. 사용자가 직접 직장 내 괴롭힘을 가한 경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을 뿐이다.

2차 가해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은 존재한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 및 피해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되고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처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정재욱 노동전문 변호사는 "이는 사용자의 관리책임 내지 2차 가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를 처벌하는 조항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직장 내 괴롭힘 전체 사건 처리 현황을 보면,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후 지난해 말까지 총 1만4327건을 종결했는데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179건으로 1.25%에 불과했다.

전 별 노동전문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자체도 입증이 어려운데 신고로 인해 불리한 처우를 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는 더욱 어렵다"고 설명했다.

민사소송도 쉽지 않다. 고용노동부 진정 등으로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이 입증되더라도 실제 받을 수 있는 손해액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정 변호사는 "소송비 등을 고려하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대표가 괴롭히면 "답없어" = 전문가들은 회사 대표가 직접 근로자를 상대로 직장 내 괴롭힘을 가한 경우 구제방법이 없다고 보고 있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하거나 사건을 인지한 경우 사실확인을 위한 객관적 조사를 실시해야 하고, 조사기간 동안 피해 근로자 등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근무장소변경, 유급휴가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할 의무를 진다. 전 변호사는 "대표가 직접 근로자를 괴롭히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이러한 경우 가해자인 대표와 분리조치하는 등 적절한 조치가 불가능하다"며 "피해자들도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 자진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A씨는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후 대표로부터 협박성 내용증명까지 받았다"며 "업계에 소문이 알려지면 재취업이 어려울 것이라는 두려움에 고용노동부에 제기했던 진정을 취하하고 퇴사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 제약회사를 퇴사한 B씨는 "대표의 괴롭힘을 임원에게 신고했다가 보복성 정직을 당한 후 퇴사했다"며 "작은 회사 근로자들의 경우 대표가 괴롭히면 답이 없다"고 토로했다.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은 여론조사 기관인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응답자 중 470명이 지난 1년 내 직장 내 괴롭힘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중 사용자(대표, 임원, 경영진)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 중 27.7%를 차지했다.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해야 = 5인 미만 사업장은 직장 내 괴롭힘 피해가 더 심각하지만 실질적인 구제방안이 전무하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가해자가 사용자라는 응답이 40%로 가장 높았지만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아 고용노동부 등에 신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직장갑질119에 제보한 한 근로자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데 대표 폭언으로 너무 힘들다. 잘못한 일이 없는데 대표가 생떼를 쓰면서 시말서를 쓰라고 하고, 인격 모독적인 발언을 한다"며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의학과까지 다녀왔는데 5인 미만 회사는 신고조차 할 수 없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승길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은 '직장 내 괴롭힘의 법적쟁점과 개선방안' 논문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는 직접적으로 근로자의 인격권 침해를 보호하기 위한 규범이므로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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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괴롭힘방지법' 현실은 '무용지물'

안성열 박광철 기자 son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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