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민주적 리더십이 과학기술 경쟁력 만든다

2025-12-12 13:00:01 게재

최근 미국 주식시장에서 인공지능(AI) 반도체 제조사 엔비디아, 전기차 기업 테슬라, 양자기술 기업 아이온큐 등 과학기술 기반 기업들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등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 기업은 혁신기술을 바탕으로 미국은 물론 전세계 경제를 견인하며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이는 우수한 연구자와 선도적 과학기술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 성장동력임을 보여준다.

연구현장의 신뢰문화 정착이 성공의 열쇠

우리나라도 이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R&D) 지원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혁신적인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정책을 살펴보면 과학기술 육성을 위한 정부의 강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해 대학원생 장학금 수혜율을 높이고, 전문 연구인력 중심의 대학 연구체계 개편과 출연연구기관의 신진연구자 채용 확대도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연구자가 본연의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연구비 관리체계를 ‘규제’ 중심에서 ‘자율과 책임’ 중심으로 전환하고, 각종 서식을 간소화해 행정 부담을 줄이겠다는 계획도 포함했다. 여기에 과감한 도전을 장려하기 위해 ‘도전적 임무 전용 트랙’을 신설하고, 혁신성 중심의 평가체계로 전환하며, 실패를 자산화 하는 새로운 연구 문화 정착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가 매년 총지출 대비 R&D 예산을 5% 수준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정책들은 과학기술계가 꾸준히 요구해 온 예측가능한 연구비 지원, 연구 자율성 회복, 도전적인 연구환경 조성 등에 대한 정부의 긍정적인 응답이다. 이러한 정부의 예산과 정책이 차질 없이 실현되고 성공적인 결과를 낳기 위해서는 정책 집행과정에서의 민주적 리더십과 연구현장의 신뢰 문화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연구는 창의적 발상과 그 과정에서 마주치는 실패의 반복을 통해 성장하는 여정이다. 새로운 발견에는 새로운 사고와 수많은 시행착오가 따른다. 이 때문에 연구자는 통제보다 자율이 보장된 환경에서 더 큰 힘을 얻고 믿음과 신뢰 속에서 크게 성장한다. 특히 추격형에서 선도형 연구로 전환되고 있는 지금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연구 과정은 불확실성과 복잡성 융합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구자에게 자율과 책임을 대폭 부여하며 실패마저 포용하고 기다려주는 신뢰의 문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신뢰문화 형성은 권위주의적 리더십 아래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작은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이유로 과도한 규제를 만들고, 일벌백계를 명분으로 지나친 처벌을 가하며, 효율만을 앞세워 창의성을 억누르는 제도를 도입하거나 통제를 강화하면 성과가 높아진다고 믿는 사고방식 속에서는 신뢰 기반의 연구 문화가 정착되기 어렵다. 특히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추격형 시대의 낡은 성공 신화가 여전히 남아 있는 곳에서는 진정한 창의적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연구현장에서는 작은 실수를 질책하기보다 격려로 감싸주고 성과를 재촉하기보다 묵묵히 기다려주며,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연구에 지장이 없도록 연구자를 보호하는 리더십을 요구한다. 이러한 민주적 리더십이 있을 때 연구자는 자긍심과 신념을 갖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으며 그 문화 속에서 우수 인재도 지속적으로 유입될 것이다.

정부 연구비가 보조금 아닌 출연금인 이유

정부 연구비가 보조금이 아닌 ‘출연금’인 이유를 다시 한번 상기해 보자. 출연금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이지만 정부가 직접 하기 어렵거나 민간 등에서 대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 민간에 ‘반대급부’ 없이 지원하는 공적자금이다. 따라서 연구자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은 단순히 의무를 부여하는 행위가 아니라,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의미 있는 연구성과를 창출해 달라는 ‘요청’에 가깝다.

이러한 의미로 볼 때 정책 실현 과정에서 연구자에 대한 신뢰와 자율을 존중하는 과학기술계의 민주적 리더십이야말로 대한민국 과학기술을 선도형으로 이끌어 갈 가장 중요한 열쇠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이석래 한국연구재단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