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제보다 젯밥에 정신 팔린 IT사업자들

2022-05-23 11:47:47 게재
이해성 내일e비즈 CTO/부사장

2008년 비트코인에 대한 최초의 논문과 이를 바탕으로 동작하는 프로그램이 나왔을 때 그 존재를 곧 바로 알아차린 IT 전문가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실제로 사용되면서 빠르게 알려졌으며, 2010년 이후 비트코인 작동의 핵심 알고리즘인 블록체인이 컴퓨터과학의 오랜 난제였던 '비잔틴 장군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라는 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비잔틴 장군 문제'란 여러 장군들이 힘을 합해 어떤 성을 공략해야 하는데, 그들 중 배신자가 있으며, 나머지 장군들도 누가 배신자인지는 모르지만 배신자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는 알고 있을 때 어떤 방식으로 서로 소통하면서 배신자의 정보 교란을 극복하고 성을 점령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즉 대다수 장군들이 동일한 날짜와 시각에 동일한 성을 공격하면 성공하지만, 배신자가 보낸 정보에 의해 교란당해서 공격할 성을 다르게 설정하거나 공격할 날짜와 시각을 다르게 알아 다수 장군들이 동시에 동일 장소에 모이지 못하면 성에 대한 공격에 실패하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핵심은 중앙집권적인 정보 통제와 명령 하달이 없이, 각각의 주체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해 마치 중앙의 정보 통제와 명령 하달이 있을 때와 같은 신뢰할 수 있는 동작을 수행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많은 IT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의 성공 여부를 자신할 수 없지만 그 기술적인 기반인 블록체인만큼은 여러 분야에 응용돼 기술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라고 예측했다.

블록체인 존재 자체 부정한 '루나'

하지만 2022년 현재의 상황은 이와는 좀 다르게 가고 있다. 기존에 존재하던 중앙집권적인 기술을 블록체인이 대체에 성공한 경우는 찾기가 힘들다. 지난 10여년간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기존 기술보다 가성비와 성능이 좋은 사례를 만들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돈이라는 관점에서는 전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비트코인 가치가 급등했고, 블록체인을 통해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는 이더리움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종류의 암호코인들이 쏟아져 나왔고, 전문 거래소가 난립하면서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거대한 투전판이 만들어진 상황이다.

인공지능 기술에 기반해 보다 맥락중심적이고 개인화된 서비스가 될 거라고 했던 웹3.0이라는 개념도 어느 때부터는 블록체인이 핵심 기반 기술이 될 것이라고 말이 바뀌었다. 난립하는 암호코인들도 자신들의 최종 목표는 웹3.0 구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서 암호화폐 공개(Initial Coin Offering, ICO)에 성공했지만 현재까지 웹3.0은 성공적인 서비스로 내세울 만한 것을 찾기 힘들다.

그러는 사이에 비잔틴 장군 문제도, 블록체인도, 비트코인 이더리움의 동작원리도, 웹3.0이 무엇인지도 모르거나 관심없는 일반 대중은 암호코인을 일종의 주식투자처럼 인식하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암호코인 가격의 등락에 희비를 교차하고 있다. 암호코인을 일종의 화폐로 바라보는 시각은 점차 사라졌고 이제는 이들을 일종의 디지털 자산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상황이다. 사실 비트코인도 유동성 문제가 있어서 유동성이 생명인 화폐의 역할을 하기에는 태생부터 한계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5월 10일 단 하루 만에 시가 총액 50조원이 넘는 '루나'와 이에 연계된 '테라'라는 코인의 가치가 증발해 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원인으로 여러가지 설이 난무하지만 한가지 황당한 사실은 해당 코인 발생사인 '테라폼랩스'가 이 코인들의 기반 블록체인을 자신들의 의지대로 중단시키거나 동작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진짜 블록체인이 아니다. 블록체인은 한번 가동을 시작하면 사실상 멈출 수 없는 탈중앙화를 목표로 만들어진 기술인데, 이 회사의 경우 블록체인의 근본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한 상황인 것이다.

투전판 된 암호코인 시장, 정부가 나설 때

암호화폐가 수백년 전 '네덜란드 튤립 광풍' '영국 남해회사 광풍'과 비교되며 경고되던 상황이 이제는 점차 현실이 되는 느낌이다. 따라서 이제는 각국 정부가 나설 상황으로 보인다. 그동안 각국은 블록체인에 기반한 기술혁신과 그 결실로 풍요로운 미래를 기대하며 되도록 개입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현실은 점차 기술혁신보다는 너도 나도 뛰어든 투전판으로 변해가는 모습일 뿐이다.

남해회사에 투자했다가 실패로 큰 재산을 날린 뉴턴은 "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예측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