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제재시스템 개혁' 윤석열 정부 과제 | ② 금융업권별 제재권한 제각각

은행장 문책경고는 금감원장, 증권사 대표는 금융위에서 결정

2022-05-25 12:06:45 게재

유사 사안이라도 업권별로 제재 처분권자 달라 '형평성' 논란 … 제재심·증선위·금융위 등 복잡한 절차, 지나치게 비효율적

부실 사모펀드(DLF)를 판매한 은행들의 최고경영자인 은행장은 '내부통제 기준마련 의무 위반'이 인정돼 금융감독원장으로부터 중징계(문책경고)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같은 혐의로 제재가 진행 중인 증권사 대표이사(라임펀드 판매)들은 금융위원회의 처분을 1년 6개월 이상 기다리고 있다. 증권사 대표이사들은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 심의를 받았지만 최종 제재권한이 금융위원회에 있는 반면, 은행장의 경우 문책경고까지는 금감원장에게 제재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25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회사와 임직원에 대한 제재권한은 금융관련 법규(은행법 보험업법 자본시장 등)에 따라 제재권자를 달리 규정하고 있다.

금융회사의 경우 인허가취소·영업정지·시정명령은 금융위가 최종 결정하지만 기관경고와 기관주의는 금감원장이 조치권자다. 임원의 경우 해임과 직무정지는 금융위가 결정하지만 주의적 경고와 주의 등 경징계는 금감원장의 권한이다. 중징계 중에서도 문책경고는 업권에 따라 제재권한이 나뉜다. 은행·보험·여전·저축은행 임원에 대한 문책경고는 금감원장이, 금융투자·금융지주 임원에 대한 문책경고는 금융위가 조치권자다.

부실 사모펀드 관련 '내부통제 기준마련 의무 위반'과 같은 지배구조법 사안은 은행법과 자본시장법 등 개별 업권법에 따라 조치권자가 달라진다. 은행과 증권사 최고경영자에 대한 최종 제재권자가 다른 이유다.

* 지배구조법 위반사항과 관련해, 개별 금융법령 조치권자에 맞춰 은행 보험 여전 저축은행 임원에 대한 문책경고는 금감원장이, 금융투자 금융지주 임원에 대한 문책경고는 금융위 권한. ** 임원 문책경고 조치와 마찬가지로 개별 금융법령 조치권자에 맞춰 은행 보험 여전회사 직원에 대한 면직요구는 금감원장이, 금융투자 금융지주 저축은행 직원에 대한 면직요구는 금융위가 행사


금융회사 임원이 중징계를 받으면 향후 3~5년간 금융회사 임원 취업이 제한된다. 따라서 금감원으로부터 최고경영자가 문책경고(중징계 중 가장 낮은 단계)이상을 사전통지 받으면 금융회사들은 사활을 걸고 방어에 나선다.

금융회사 직원에 대한 정직·감봉·견책·주의는 모두 금감원장이 조치권자다. 면직의 경우 은행·보험·여신전문금융회사·상호금융은 금감원장이 권한을 갖지만, 증권사·금융지주·저축은행은 금융위에 제재권한이 있다.

◆금융위로 제재권 일원화 움직임, 검사 약화 우려 = 제재권한이 이처럼 분산돼 있으면 동일한 위규행위에 대해 업권별로 제재 수위가 달라질 수 있는 등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금감원에서 중징계가 확정됐다면 금융위에서 다시 판단을 받으려는 요구도 커질 수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금융회사 임원에 대한 중징계 이상 제재권한을 금융위로 일원화시키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현재 금감원의 제재심의위원회 조직이 금융위로 넘어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금융회사를 검사하는 조직과 제재하는 조직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의 제재를 수사·재판절차와 비교하면서 수사와 재판이 한 곳에서 진행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제재는 형사처벌과는 성격이 다른 행정제재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도 검사·조사와 제재 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 해외 주요 금융감독기구들도 검사와 제재기관을 분리·운영하지 않고 동일 기관에서 업무를 수행한다.

오히려 검사와 제재를 분리하면 금감원의 검사기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산업정책과 금융감독정책 권한을 모두 갖고 있는 금융위가 시장 친화적인 방향을 유지할 경우 제재 수위가 낮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금감원 검사부서의 한 직원은 "검사를 통해 엄중조치가 필요한 위규사항이 발견되더라도 제재 수위가 낮아지면 금감원 검사가 시장에서 힘을 잃게 될 것"이라며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면 소위 '물검사'가 진행될 수밖에 없고 시장의 리스크를 키우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대식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제재권한은 실무를 잘 알고 있는 금감원이 갖는 게 맞다"며 "금융위는 큰 틀과 제도를 마련하는데 집중하고 집행은 현장에 가까이 있는 금감원에 위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위와 국회 등에서는 민간조직인 금감원이 행정제재 권한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공무원을 행정고시·공무원 시험을 통과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고 있지만 미국 등 주요국가는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공무원으로 보기 때문에 개념 자체가 다르다"며 "금감원은 법에서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공적 민간기구로, 직원들은 위법행위가 발생했을 때 공무원에 준하는 형사처벌을 받는 대상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공무원에 대한 개념을 이제는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감원에 제재권한을 주더라도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통제장치를 마련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금융위로 넘어간 '불공정거래·회계부정'사건 하세월 = 금융회사와 관련된 제재는 금감원 제재심에서 1차 논의가 이뤄지고 중징계 일부와 금전제재는 금융위에서 한다.

하지만 불공정거래와 회계부정 등 금융회사가 아닌 자본시장에서 벌어진 위법행위에 대한 제재권한은 금융위에 있다.

당초 금감원에서 제재절차를 진행했지만 2009년 금융위로 조직이 넘어갔다. 금감원 산하 자문기구로 있던 회계감리위원회(감리위)와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자조심)는 현재 금융위 산하 자문기구로 바뀌었다.

문제는 금융위가 제재권한을 모두 가져가면서 사건처리가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금감원 제재절차는 검사·조사가 끝나면 제재 안건 처리가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반면, 금융위는 처리해야 할 안건을 정해서 금감원에 회부하라고 통보하는 구조라서 이미 조사가 한참 전에 마무리된 사건도 제재절차에 올라가지 못하고 대기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2017년 10월부터 2018년 5월까지 초단타매매(고빈도 매매)를 통해 코스닥시장을 교란시킨 혐의를 받고 있는 시타델증권의 불공정거래 의혹 사건에 대한 금감원 조사는 2020년말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에 금융위(자조심·증권선물위원회)로 안건이 올라갔으며 아직 제재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으로 나뉜 제재권한으로 인해 신속히 이뤄져야 하는 행정제재는 효율성이 떨어지고 행정력 낭비로 이어진다. 검사·조사가 끝난 사건의 제재절차에만 6개월이 넘게 걸린다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금감원은 검사부서에서 검사를 마치면 부서 자체 심의, 제재심의국 심사조정을 거쳐 제재심의위원회 심의를 진행한다. 이후 금융위가 제재권한을 갖고 있는 사안은 금융위 안건 소위원회를 거쳐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최종 결정된다. 금전제재(과태료·과징금)의 경우 금감원 제재심 이후 증권선물위원회를 한 번 더 거쳐야 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 내에서도 여러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사안을 반복적으로 설명해야 하는데 증선위·금융위를 거치면 담당 사무관과 과장, 국장 보고 등 사안을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비효율적인 구조"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단계가 복잡할수록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고, 해명이 필요한 당사자들도 변호사 선임 등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며 "제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그 피해는 투자자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절차를 단순화해서 행정제재는 신속하게 진행하고 법적으로 다툴 부분이 있으면 소송을 제기하는 절차가 있는 만큼 법원에서 다투면 된다"며 "제재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 보장이 중요하지, 사법절차(검사·제재분리, 1·2심 구조)와 같이 운영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이경기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