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금융·증권범죄합수단 부활에 부쳐

2022-05-31 12:03:26 게재

최근 미국 정부와 금융당국이 자본시장범죄에 대한 수사에 적극 나섰다. 블록딜(대형거래)과 공매도,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의 신주인수권 거래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표적 사례는 빌 황 사건이다. 한국계 투자자 빌 황은 지난해 주요 투자은행에 100억달러(약 12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혔다. 당국은 빌 황이 은행들을 속였고 주가를 조작했다고 판단한다. 지난 4월 빌 황에게 발부된 체포영장에 '부패 및 조직범죄 처벌법'(RICO법)을 비롯한 11개의 중범죄 혐의가 적시됐다.

RICO법은 미국 법무부가 마피아 두목과 마약갱단을 잡아들이기 위해 전통적으로 활용하는 강력한 연방법이다. 1989년과 1990년대 초 굵직한 월가 금융사기 사건에서 잠깐 활용된 바 있다. 빌 황 수사에 RICO법이 등장한 것을 놓고 미국 자본시장의 전문가들은 바이든행정부가 이 법을 자주 적용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금융선진국 자본시장범죄 수사 강화하는 추세

금융선진국에서 자본시장범죄 수사가 강화되는 추세인데 한국은 오히려 역주행을 했다. 문재인정부 당시인 2020년1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을 폐지한 이후 검찰의 관련 범죄 수사역량이 크게 약화됐기 때문이다.

2013년 설립된 합수단은 자본시장의 불공정거래 근절을 목표로 했다. 합수단은 경험이 많은 베테랑 검사가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예금보험공사·한국예탁결제원 등에서) 파견된 금융·회계전문가들을 지휘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합수단이 '여의도 저승사자'라고 불린 건 특유의 빠르고 전문적인 수사방식 때문이다.

합수단은 범죄첩보를 직접 수집해 수사를 진행했다. 검찰이 조기 개입할 필요가 있는 사건은 금융감독원 조사를 거치지 않고 즉시 수사에 착수했다. 이미 수사 중에 있는 증권범죄도 중대 사건이라고 판단되면 신속히 처리할 권한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추 전 장관이 라임·옵티머스 사건의 본격적인 수사를 앞두고 합수단을 없애버린 것은 '정치적 동기' 때문이라는 의혹을 샀다.

합수단 폐지 후 자본시장범죄 처리비율이 크게 떨어졌다. 지난해 증권선물위원회에서 검찰에 고발·통보한 사건(불공정거래 대상주식 기준)은 63건으로 2016년(81건) 대비 22% 감소했다. 2016~2018년까지 70~80건을 유지하던 사건수는 2019년 58건으로 감소한 후 2020년 60건, 작년 63건 등 예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자본시장은 갈수록 지능화·전문화하는 범죄의 사각지대로 전락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대표적인 부실수사는 라임·옵티머스 자산운용 사모펀드 사건이다. 라임 사모펀드 사건은 2019년 말 기준 4개 모펀드 및 173개 자펀드, 일반 투자자 4000여명, 피해액 1조6000억원대의 민생경제 범죄사건이다. 2000년대 코스닥시장에 벤처붐이 일 때 작전세력이 벌여온 각종 수법과 유사하다. 전환사채(convertible bond, CB) 편법거래, 경영권 탈취, 속칭 '기업사냥'인 무자본 인수·합병(M&A), 주가조작, 횡령·뇌물 등 한국 자본시장을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범죄들이다.

옵티머스 사건은 범죄 내용에서 훨씬 충격적이다. 옵티머스는 공공기관이 발행한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만기 1년 미만의 상품이라며 투자자들을 끌어 모았다. 증권사들이 판매에 적극 나서면서 3년간 2조원 이상이 투자됐다. 1조5000억원은 고객에게 되 돌려졌지만 잔고 중 2000억원 넘는 돈은 아직도 행방을 모른다.

검찰 "국민의 마음을 얻는 유일한 길" 걸어가야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취임 하루 만인 18일 합수단을 전격 부활시켰다. 자본시장 건전성 확보 차원에서 박수받을 일이다. 새롭게 갖춰진 검찰 수뇌부는 "경제범죄 민생범죄를 엄단하고 권력형 비리, 기업범죄나 금융비리 등은 그 배후까지 철저히 규명해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루나·테라사건이 1호 수사 사건으로 지정됐고 부실 수사 의혹이 제기된 라임·옵티머스 자산운용 사모펀드 사건도 재수사하기로 했다. 라임·옵티머스 사태가 권력형게이트로 번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지난 정부 당시의 여권 현역 정치인들이 거론됐기 때문이다.

과거 일부 정치검찰이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한 것에 대한 반성이 없어 아쉬움은 있다. 국민들은 검찰이 스스로 강조한 "국민의 마음을 얻는 유일한 길"을 걸어가는지 지켜볼 것이다. 세간에서 김건희 여사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서도 명확하고 공정한 수사결과를 내놔야 한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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