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호성 교수의 '삐딱한 수학 이야기'

수학의 시대, 미래 선택권 빼앗는 수능 선택 과목

2022-07-13 11:08:55 게재
남호성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상위권 고3 10명 중 7명은 이과 선택'

어느 신문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다. 지금 고등학교는 문·이과가 통합됐다. 그런데 이과 선택이라니 무슨 얘기일까? 들여다보면 수학 '선택과목'에 대한 이야기다. 의대나 서울 주요 대학의 공대 등 인기 있는 이공 계열 학과에 가려면 들어야 할 과목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새롭게 치러진 수능 체계에서 수학 선택 과목에 따라 총점의 유불리도 컸다고 한다.

수능 수학, 선택 과목 점수 차의 파장

현재 수능에서 수학은 '확률과 통계' '기하' '미적분' 중에서 한 과목을 택해야 한다. 통상 확률과 통계가 아닌 미적분이나 기하를, 탐구에서는 과학탐구를 주로 선택하는 학생들을 이공 계열 전공 지망 학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의 공학·자연과학·의학 계열 전공은 대부분 수학에서 미적분 기하를 선택한 학생들만 뽑는다고 한다. 반면, 인문계는 그런 제한이 없다.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줬지만 특정 선택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불이익이 크게 발생하고 있다.

앞에 언급한 기사는 이러한 쏠림 현상이 우려된다는 내용이었다. 현재 서울 소재 대학의 인문·자연 계열 전공 비율은 52:48 정도로 오히려 문과 비중이 더 높다. 반면 상위권 고등학생들은 7:3 정도로 자연 계열 전공, 더 정확히 말하면 자연 계열 전공에 지원할 수 있는 과목을 선호한다.

이런 선호 과목 편중엔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일단 입시에서 기하 미적분 선택이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이 큰 것 같다. 현재 수능 수학 체계는 각 수학 과목에 잘못된 편견만 덧씌운 인상이다. 정부도 대학도 학생도 확률과 통계를 문과 수학으로, 기하 미적분은 이과 수학으로 기정사실화한 것 같다.

특히 확률과 통계를 선택한 학생들은 향후 특정 학과에 응시할 권리를 박탈당한다. 문·이과 통합의 기치를 걸고 세 과목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면 학과 선택 면에서도 완전한 통합을 보장해야 한다.

현재 고교 수학 교과 체계에서 특정 과목을 선택했다는 것만으로 특정 학과의 빗장을 거는 것은 학생과 대학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다. 4차산업혁명과 더 직접적으로 관련된 과목이 확률과 통계다. 그저 숫자나 문자로만 존재하는 인터넷 세상의 정보를 모아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거나 새로운 상품·서비스를 만드는 빅데이터, 이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기계를 학습시키는 인공지능은 거의 모든 공학 분야에서 미래 핵심 기술로 꼽힌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핵심 원리는 확률과 통계에 바탕을 둔다. 실제 컴퓨터, 소프트웨어 관련 전공을 한다면 기하보다 확률과 통계가 더 연계성이 있다.

경영학 심리학 행정학 등 전통적인 사회과학 분야와 그 졸업생들이 진출하는 직업에서도 사회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데 수학 과목, 특히 확률과 통계 미적분을 많이 활용해왔다. 최근 이런 추세가 더 강화됐다. 역시나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때문이다. 어문 계열조차 나처럼 언어학과 인공지능을 연계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이 많다. 이미 인문사회 대학원에서 하위 전공과 이들을 연계한 전공을 개설하고, 수학과 코딩을 가르치는 곳도 많이 생겼다. '문과 수학' '이과수학'이 따로 없다.

지금보다 더 수학 역량을 요구할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이 수학을 더 잘 쓸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때다. 그런데 많지도 않은 수학 과목을 교육 당국은 '선택권'이라는 이름으로 쪼개놨다. 대학은 계열별 칸막이를 뒀다. 이는 학생들이 공부할 수학을 스스로 한정 짓게 만든다. 입시는 이를 더 심각한 상황으로 이끈다. 전문가조차 한두 줄로 설명하기 어렵고, 일반인은 긴 설명을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성적 체계, 원점수가 아닌 과목 선택 자체에 따른 유불리까지 복잡하게 얽히고 설켰다.

전공·진로 선택권 좁히는 수능 수학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현재 고교에서의 문·이과 통합은 통섭과 융합이 강조되는 사회에 대한 대비는 물론, 학생들이 너무 어린 나이에 진로를 결정하게 하고 이를 정정하기가 힘든 구조를 개선하려는 목적도 크다고 생각한다. 나만 해도 그 선택의 순간이 앞날을 좌우하는 무게에 비하면 너무 가볍고 쉬웠다. 문신은 개인의 자유지만 지우기 어렵기에 어린 나이에 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문신보다 100배는 더 중요한 진로 선택은 충분히 고민하고 경험할 시간을 거친 뒤 해야 한다.

지금의 수능 시스템에선 확률과 통계 선택은 상위권 학생들에게 불리하다. 무엇보다 절반의 학과 선택권을 스스로 반납하게 된다. 이 시스템의 맹점 때문인지 올해 신입생 중 자연 계열 학과를 지망했다 인문계열 학과에 지원한 일명 '교차지원' 사례를 흔히 본다. 반대의 경우, 즉 확률과 선택을 선택해 자연 계열 학과로 진학한 사례는 지원 자체가 봉쇄돼 찾아볼 수 없다.

이런 복잡한 상황은 수많은 사람들을 수학에서 더 멀어지게 한다. 누구에게나 쓸모 있는 기본적인 수학 과목들조차 그 필요성을 깨닫기도 전에, 입시 관문을 넘기 위해 선택부터 하라고 강요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다시 우리 학생들이 감당하게 될 것이다.

전공 선택의 폭부터 직업 선택의 폭까지 수학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혹은 그 영향을 최소화하려 대학 입학 이후 필요한 수학을 홀로 어렵게 공부할 수도 있다. 개인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손해다. 수학을 포기한 문신을 지우는 비용이 이미 크다. 더 커지기 전에 방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