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비대면 실명확인, 대출사기 악용"

2022-07-18 10:59:56 게재

경실련 '신분증 사본인증' 피해자 고발대회

"신분 진위 확인 책임, 금융회사가 져야"

지난해 8월 자녀의 휴대폰 단말기 보조금을 돌려받으러 통신사 대리점을 찾았던 A씨는 억대의 대출사기를 당했다. 대리점 직원이 A씨의 신분증 복사본으로 대포폰을 개통해 4개 금융회사로부터 1억5000만원의 대출을 받아 가로챈 것. 대리점 직원이 A씨의 신분증 복사본을 이용해 비대면 대출을 받는 동안 명의도용 사실을 알아챈 금융기관은 없었다.

20여만원의 지원금을 받으려다 졸지에 1억5000만원의 빚을 떠안게 된 B씨는 금융회사에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금융회사는 자신의 책임이 없다며 계속 이자를 징수하고 있다.

B씨 역시 본인 모르게 억대의 대출사기 피해를 입은 경우다. 범인은 범용공인인증서로 본인인증을 받은 후 B씨 명의로 알뜰폰을 발급받고 해킹을 통해 확보한 B씨의 신분증과 여권사진을 이용해 4개 금융회사로부터 비대면으로 2억50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신분증은 분실신고된 것이었지만 금융사로부터 대출을 받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뒤늦게 대출사기를 당한 사실을 알게 된 B씨는 금융감독원에 신고했지만 개인정보 관리를 잘못한 피해자의 과실이 커 보상이 어렵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8일 '금융사 엉터리 핀테크 비대면 실명확인 금융사고 피해자 고발 기자회견'을 갖고 금융사의 신분증 사본인증 시스템으로 인한 대출사기 피해사례를 발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인터넷은행이 휴대폰에 저장된 신분증 사본만으로 5900여만원을 대출해줘 피해를 입은 사례, 신분증사본을 촬영한 2차 사본제출로 간편 비번과 OTP를 발급받아 1억5000만원을 이체해 피해를 본 사례 등도 등장했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금융회사가 비대면 금융거래 과정에서 신분증 원본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 그럼에도 금융회사가 책임을 회피하면서 피해자들은 구제를 받기가 어렵다.

경실련은 "금융회사들이 스마트폰을 활용한 비대면 실명 확인시 신분증 촬영본으로 무차별적으로 '사본인증'을 간편하게 하고 있다"며 "현행 엉터리 핀테크 '신분증 사본인증' 시스템으로는 국민 누구나 비대면 대출사기를 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경실련에 따르면 현재 5대 은행 중 신분증과 원본대조가 가능한 진위확인 시스템을 갖춘 모바일뱅킹은 전무한 상황이다.

경실련은 "시중은행 등 사설인증기관들은 신분증 진위확인 시스템 도입, 관련 정보통신 설비투자 비용 등이 아까워 신분증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인증절차나 보안시스템을 알면서도 도입하지 않고 있다"며 "엉터리 비대면 실명확인 시스템을 방치해 금융사고를 내놓고 '배째라'는 식으로 피해자들을 소송으로 내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실련은 "신분증 사본인증으로 금융사기가 발생하도록 방치해선 안된다"며 "금융회사의 무과실 책임원칙 및 입증책임 전환을 통해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고 추락한 전자금융실명거래의 안전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실련 금융개혁위원 김윤호 변호사는 "금융회사들의 횡포로 피해자들이 소송으로만 내몰리고 있고, 피해구제는 지연되고 있다"며 "원스톱 피해구제를 통해 민·형사상 사건 대응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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