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14만 경찰을 '공공의 적'으로 돌려서야
국정을 안정시켜야할 행정안전부장관이 되레 불난 데 기름을 부었다. 이상민 행안부장관은 경찰서장 모임 등 경찰의 반발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판사 출신 말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위험수위를 넘나들었다. 윤석열 대통령 의중을 드러낸 것이라면 더 심각하다. 경찰국 신설에 대한 옮고 그름을 떠나 전쟁을 선포하는 듯하다.
이 장관은 25일 전국 경찰서장회의와 관련해 "하나회가 12·12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 바로 이러한 시작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무장할 수 있는 조직이 상부의 지시에 위반해서 임의적으로 모여서 정부의 시책을 반대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도 했다. '공무원 복무규정'을 들며 "범법행위"라고 못박았다.
역대 정부 모두 헌법 위반했다는 행안부장관
경찰의 집단의사표시가 법을 어겼는지는 따져봐야할 문제다. 하지만 경찰을 쿠테타 집단으로 보는 데는 동의하기 힘들다. '쿠테타 집단'은 통제나 지휘 대상이 아니다. 바로 진압해야 할 '공공의 적'이다.
이 장관 주장대로 경찰내 소수 특정그룹(사실상 경찰대 출신을 지목하는 것으로 보인다)이 과거 군대 사조직인 하나회처럼 권력과 사익을 추구한다면 큰 일이다. 무장조직이니 언제 총칼을 들고 헌정을 중단시킬지 모르니 말이다. 5.18사태와 같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바로 계엄령을 내리고 모두 잡아들여야 한다.
지금이 그런 상황인가. 하급직 경찰모임인 직장협의회부터 총경까지 대다수 경찰들이 행안부의 경찰국 설치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경찰 지휘부도 겉과는 달리 속앓이를 하고 있을 것이다. 14만 경찰들을 공공의 적으로 돌릴 수는 없다. 8월 경찰국 시행령이 실시된다고 경찰이 통제되고 진정으로 '충성'을 할까.
이 장관은 경찰국 설치를 오해하고 있다고 답답해 하는 눈치다. 그는 "우려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내용을 정확히 이해를 하고서 이러한 모임을 하는 것인지,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부화뇌동하는 것인지는 잘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역대 정부는 헌법과 법률이 명하는 시스템과 계통을 무시해왔다"며 "대통령실에 파견된 민정수석실, 치안비서관 등의 경찰공무원들을 통해 음성적으로 경찰 업무를 지휘해왔다"고 했다. 당장 경찰인사를 할 시스템이 없어 이를 시행령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장관의 말대로라면 1991년 경찰청 독립 이후 모든 정부는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꼴이다. 경찰청 독립에 따른 입법 공백이 일부 있었다하더라도 불법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지금의 시행령 개정이 상위법 위반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경찰장악이라는 오해를 받고 집단반발까지 초래하면서까지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경찰인사 시스템을 보완하기 위한 임시조치라면 5년 또는 10년 후를 생각해 보면 이토록 국정혼란을 일으킬 사안은 아닌 듯하다.
또 경찰들의 공론화 요구에 대해 "논의만 무한정할 수는 없다"며 "이미 일선경찰 국회 언론 시민단체 등을 통해 충분히 공론화하고 의견을 수렴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일선경찰과 보수언론까지 반대와 우려를 표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하기야 쿠데타 모의 세력과 무슨 논의를 하겠는가.
민생과 동떨어진 권력기관 싸움에 민심 떠나
정부는 "경찰의 권한이 막대해져 이를 통제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경찰국 설치의 가장 큰 명분으로 삼았다. 하지만 행정안전부가 경찰국 신설 시행령안 등의 입법예고 기간을 당초 40일에서 4일로 단축해 줄 것을 법제처에 요청하면서 "국민의 권리·의무 또는 일상과 관련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편리한대로 말을 바꾸면 신뢰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번 '경찰의 난'은 문재인정부 시절의 '검찰의 난'과 유사하다. 타깃이 검찰에서 경찰로, 여야 공격수비가 바뀌었을 뿐이다. 그 결과는 뻔히 나와있다. 민생과 동떨어진 권력기관 간 지루한 싸움에 상처만 남고 민심은 떠났다. 지금 정부가 정권을 교체한 동력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는게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경찰도 감정적 대응은 자제해야 한다. 일제시대 이후 역사적 풍파 속에 자리잡아온 경찰의 지위와 역할을 성찰해야 한다. 권력이 경찰을 장악하는 것은 문제지만 어쨌건 경찰에 대한 통제는 필요한 일 아닌가. 가능한 한 질서정연하게 국민여론을 수렴하고 법적 테두리 내에서 자신의 의견을 관철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