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정쟁보다 민생보호가 우선이다

2023-02-09 11:57:54 게재

전세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를 간접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전세금 반환 보증 사고액이 2018년 792억원에서 2019년 3442억원, 2020년 4682억원, 2021년 5790억원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1조1726억원으로 처음 1조원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HUG가 실제로 집주인을 대신해 세입자에게 전세 보증금을 대신 갚아준 대위변제액도 2021년 5040억원에서 지난해 9241억원으로 불어 1조원에 근접했다. 대위변제를 받은 세대는 2021년 2475세대에서 작년 4296세대로 늘었다.

전세사기 피해자의 약 70%가 20~30대 청년층이다. 보증보험에 든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적지 않다. 경제활동 기간이 짧은 청년층에게 전세자금이 전재산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전세자금에 대출금이 포함돼 있으면 미래까지 저당잡힌 셈이 된다.

전세사기 날로 진화하는데 정부대책 실효성 논란

전문가들은 사기를 피하기 위해서는 전세계약 시 가장 먼저 부동산의 시세를 정확히 파악할 것을 조언한다. 또 건축물대장 등기사항증명서 전입세대열람내역서 등 부동산 관련 공문서도 꼼꼼히 확인하라고 한다. 특히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할 것도 강조한다. 하지만 임차인이 아무리 꼼꼼히 확인해도 허점을 노리는 범죄자를 막아내기는 쉽지 않다. 전세사기 유형도 바지사장, 이중계약, 하루 차 근저당 등 갈수록 진화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유형이 무자본 갭투자 '깡통전세'다. 수백 수천채를 소유한 '빌라왕' 전세사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건축주(또는 건물 소유자), 임대인, 중개인, 부동산 컨설팅업체 등이 함께 짜고 세입자에게 집값보다 높은 전세금을 받아 챙기는 방식이다. 해당 주택을 임대차 계약과 동시에 경제적 능력이 없는 바지사장에게 넘기고 바지사장이 '나 몰라라'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세입자가 져야 한다.

계약기간 중 임차인 모르게 집주인을 바꾸는 방식도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다. 계약 후 자기도 모르게 집주인이 바뀌면 달리 방도가 없다. 바뀐 집주인이 국세를 체납했다면 전세 보증금은 후순위로 밀린다.

집주인이 전세계약을 맺을 권한이 없으면서 이를 속이는 수법도 빈번하다. 실제 소유주가 아닌 사람이 실제 소유주인 척 거짓말을 해 전세계약을 체결한 뒤 보증금을 챙기는 식이다.

이 외에도 세입자의 대항력이 전입신고 다음날부터 발생한다는 점을 이용해 이사 당일 저당권을 설정하는 사례도 있다. 이 경우 임차인 권리가 후순위로 밀린다. 처음부터 집주인이 세입자의 보증금을 노리고 집 한채를 여러 임차인과 계약하는 수법도 있다.

최근에는 임대인 단독 범행보다 건축주·공인중개사·매수인·분양팀에 금융인까지 가담한 조직범죄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할 공인중개사까지 가담한 사례도 많아 임차인, 청년층이 이들의 검은 손길을 막아내기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실제로 전세사기 특별단속을 벌이고 있는 경찰이 지난 7월 이후 피의자로 입건한 804명 가운데 공인중개사(120명)와 중개보조원(99명)이 27%를 차지했다.

최근 정부도 전세사기 방지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이 조직적 전세사기나 임대인의 악의적 무자본 갭투자, 깡통전세 리스크를 다소 줄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여전히 실효성 논란이 계속된다. 임대인 변경 시 임차인에게 계약내용에 대한 안내 고지 의무화, 계약체결 시점에 선순위 임대차정보 제공, 임대인 국세완납증명 확인 등 집주인에 대한 정보공개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세사기 금융사기에 정치수사만큼 행정력 쏟는지 의문

대장동 등 검찰 수사를 둘러싼 여야 정쟁이 계속 격화되고 있다. 사정기관도 관련 수사에 100명 가까운 검사들을 투입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권력남용과 부패는 마땅히 단죄받아야 한다. 하지만 전세사기나 금융사기 등 오히려 더 피해가 크고 넓은 민생보호에 그 만큼의 사법권이나 행정력을 쏟는지는 의문이다.

전세사기와 깡통전세를 방지하는 법안 상당수가 2년 전부터 발의돼 국회 상임위에 계류돼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조선시대 권력층이 정쟁과 사화를 반복하는 동안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결국 나라가 망했다는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차염진 기획특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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