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슈퍼 엘니뇨? 침엽수 집단고사 현상 심해지나
기후변화에 민감한 아고산대, 구상나무 생장속도 감소 등 한대성 식생 쇠퇴 … 생물다양성 확보에 '적신호'
전세계적으로 침엽수 집단고사 현상이 증가하는 가운데 '슈퍼 엘니뇨'에 의한 영향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닥쳤다. 1990년대 후반부터 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 등지에서는 엘니뇨와 가뭄 등으로 인한 수목 고사 현상이 심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슈퍼 엘니뇨까지 닥치게 되면 산림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려가 될 수밖에 없다. 만약 올해 슈퍼 엘니뇨가 발생하면 2015년 이후 8년 만이다.
구상나무 등 상록침엽수들은 해발 1200미터 이상의 서늘한 지역에만 제한적으로 자생하는 특성상 기후변화로 인한 건조기후와 고온현상에 취약하다. 기상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온 상승은 지난 100년 동안 약 1.7℃로 지구 평균 0.75℃보다 2배 이상 빠르다. 고온과 가뭄이 겹치는 확률이 높아지면서 구상나무 등 상록침엽수들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1900년대 후반부터 전세계 침엽수 고사 = 22일 국립생태원의 '아고산 침엽수림 쇠퇴 원인과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심각한 엘니뇨로 말레이시아 수목의 12~28%,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의 열대우림 37~82%가 고사했다. 또한 극심한 가뭄으로 한국의 구상나무 20~50%가 피해를 입었다. 중국의 경우 소나무과 50만ha가, 러시아 산림은 40만ha가 손실됐다.
아고산은 극지와 함께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한 생태계 중 하나다. 아고산대에 서식하는 생물은 대부분 낮은 온도에 오랫동안 적응해왔기 때문에 급격한 기온상승은 생장에 심각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이 지역에는 분포역이 좁은 생물들이 많아 멸종위기종나 희귀종으로 지정된 경우가 다수인만큼 산림 생물다양성 감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산림의 기후변화 적응속도보다 기후대의 이동속도가 더 빠르게 되면 멸종위기종이 증가하는 등 여러 문제가 생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구상나무가 대표적이다. 한국 특산식물(한정된 지역에서만 생육하는 고유식물)인 구상나무는 한반도 기후변화의 척도가 되는 '기후변화지표종'으로 꼽힌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 멸종위기종으로 등재되어 있다.
한라산은 지리산과 함께 넓은 구상나무숲을 볼 수 있는, 중요한 곳이다. 구상나무는 암봉과 암벽, 너덜지역 등과 같은 암석이 노출된 곳에서 주로 자란다. 한라산 해발 1300~1400미터 부근부터 정상부까지 분포한다.
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지에 실린 '아고산 지역의 구상나무 분포 변화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위성영상 및 항공영상 분석을 통해 구상나무 서식지 변화를 추정한 결과, 1998년 이후 15년간 한라산 구상나무 서식지 분포가 34% 감소했다. 지리산의 경우 1981년 이후 27년간 18% 줄었다.
◆저지대에서 올라오는 수종 경쟁에서 밀려 = 구상나무는 엘니뇨-남방진동과도 관련이 있다. 한국생태학회지에 실린 '한라산 구상나무(Abies koreana W.)의 연륜연대학적 연구 : 기후변화에 따른 생장변동 분석' 논문에 따르면, 구상나무의 생장은 전년도 1월, 2월, 3월 및 11월 엘리뇨 지수와 양의 상관관계가 있었다.
엘리뇨가 발생해 겨울기온이 상승하면 구상나무 생장 속도는 감소했다. 기온이 오르면 식물의 개화 시기가 빨라지고 난대성 식생의 분포대가 확대된다. 반면 구상나무 등과 같은 한대성 식생은 쇠퇴한다.
한국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한반도 기온이 연평균 0.5℃ 상승할 때 난온대 상록활엽수림대의 분포는 서해안과 동해안 각각 80km 정도 북상하게 된다. 또한 2000년대비 2090년에는 활엽수림과 혼효림(두 종류 이상의 수종으로 구성된 산림)은 각각 14.3%, 11.6% 증가할 것을 예측했다.
반면, 침엽수림은 24.9% 정도 감소할 전망이다. 이는 충주댐 유역을 대상으로 1985~2000년의 위성 영상을 통해 토지피복변화를 모니터해 변화양상을 바탕으로 2090년까지 산림분포를 예측한 결과다.
이미 구상나무 등과 같은 고산 및 아고산지대(고산대와 산지대 사이 수직분포대) 식생의 경우 저지대에서 올라오는 수종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는 상황이다. 넓은 지역에 걸쳐 침엽수림과 혼효림은 줄어들고 상록활엽수림·낙엽활엽수림 등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문제는 구상나무처럼 높은 산에 섬처럼 형성되어 있는 나무들은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북쪽의 높은 산으로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나뉘지만 국립산림과학원은 기후변화로 인한 온도 상승이 계속되면 2100년에는 구상나무가 멸종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게다가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유전자원 보존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리산 구상나무의 경우 전 개체의 16.2%가 근친교배의 결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곧 종 소멸 속도의 가속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엘니뇨 = 감시구역(열대 태평양 Nino 3.4 지역 : 5°S~5°N, 170°W~120°W)의 3개월 이동평균한 해수면온도 편차가 0.5℃ 이상으로 5개월 이상 지속될 때 그 첫달을 엘니뇨의 시작으로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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