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물리적 충돌 피했지만 '불씨' 여전

2023-06-01 11:18:59 게재

비폭력 강조 민주노총 집회 큰 불상사 없어 … 분향소 철거 몸싸움 벌이기도

노동조합 탄압 중단과 윤석열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대규모 도심집회가 큰 불상사 없이 치러졌다. 경찰이 집회가 열리기도 전부터 불법행위에 대한 엄정대응 방침을 강조하며 긴장이 고조됐지만 민주노총이 비폭력·합법 집회를 진행하면서 우려했던 대규모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민주노총이 설치한 고 양회동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의 분향소를 경찰이 철거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민주노총이 지속적인 집회·시위를 예고한 가운데 경찰은 엄정 대응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대규모 충돌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1일 민주노총과 경찰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전날 서울을 포함한 전국 15개 거점에서 3만5000명이 참여한 가운데 '노동·민생·민주·평화 파괴 윤석열정권 퇴진! 민주노총 총력투쟁대회'를 개최했다. 서울의 경우 건설노조가 용산 대통령실 인근과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본청 앞에서, 금속노조가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사전집회를 갖고 광화문 세종대로에서 열린 본집회에 합류했다. 주최측 추산 서울 집회참여인원은 2만여명에 달한다.

경찰, 민주노총 양회동씨 분향소 강제철거 | 지난달 31일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경찰이 민주노총이 기습 설치한 건설노조 간부 양회동씨 분향소를 철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또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창원에서,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전북경찰청 앞에서 결의대회를 개최하는 등 전국적으로 집회·시위가 이어졌다.

민주노총은 집회에서 정부의 전방위적인 노조탄압 중단과 주 69시간제를 비롯한 노동개악 폐기, 윤석열정권의 퇴진 등을 요구했다.

이날 집회는 정부가 불법집회에 대한 강경대응 방침을 밝힌 이후 처음 열리는 대규모 도심집회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아왔다.

최근 수년간 집회·시위에서 대규모 폭력사태 등 불상사가 발생한 적이 없지만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달 16~17일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1박2일 노숙집회'가 시민들에게 불편을 줬다는 이유를 들어 도심 내 불법집회에 대한 강경대응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실제 경찰은 6년여만에 '불법 집회 해산 및 검거 훈련'을 재개했다. 윤 청장은 이날도 집회에 앞서 경비대책회의에 참석하면서 "경찰은 집회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시민자유를 볼모삼아 관행적으로 자행된 불법에 대해 해야 할 역할을 주저없이 담당하겠다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현장 지휘관 판단에 따라 캡사이신을 사용하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하고 집회 관리에 공적을 세운 경찰에 대한 특진을 내걸기도 했다.

경찰은 기동대 80여 부대를 서울에 투입했다. 6년여 만에 캡사이신 분사기도 동원됐다.

이처럼 경찰이 대대적인 물리력 사용 방침을 밝히며 대규모 충돌 우려가 제기됐지만 민주노총이 합법과 비폭력을 강조하면서 큰 불상사는 없었다.

민주노총은 집회를 시작하면서 "경찰이 집회를 폭력적으로 자극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어떠한 경우에도 경찰과 몸싸움을 하지 말자"고 참석자들에게 공지했다. "때리면 맞자"고도 했다.

집회가 당초 예정했던 오후 5시를 넘어 경찰이 해산을 명령하자 민주노총은 5시 20분쯤 자진해산 형식으로 집회를 마무리했다. 일부 참가자들이 야유를 보냈지만 주최측은 해산을 독려했다.

다만 야간문화제를 앞두고 오후 6시 30분쯤 민주노총이 청계광장 인근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 양 지대장 분향소를 긴급 설치하면서 경찰과 충돌했다. 서울시 요청으로 강제철거를 시도하는 경찰과 조합원 사이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 4명이 부상을 당해 팔이 부러진 조합원 등 3명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경찰은 철거를 방해하고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조합원 4명을 체포했다.

민주노총은 오후 7시부터 야간집회 형식으로 '양회동 열사 추모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당초 문화제를 마친 뒤 경찰청으로 행진할 예정이었지만 경찰과 충돌을 피하기 위해 행진을 취소했다.

이날 민주노총 집회에서는 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노정간 갈등이 커지는 가운데 경찰이 노조의 불법집회·시위에 대한 강경대응 입장을 강조하고 있어 향후 대규모 충돌 우려는 여전하다. 실제 이날 전남 광양에서는 망루농성 중이던 한국노총 간부가 진압에 나선 경찰이 휘두른 경찰봉에 맞아 머리를 다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서울경찰청은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기습적으로 불법 천막을 설치한 사안과 관련 경찰관을 폭행한 4명을 현장에서 검거해 수사중"이라며 "앞으로도 경찰은 시민들의 큰 불편을 초래하고 공공질서를 무너뜨리는 불법행위에 대해선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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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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