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시공 현장증언

속도전, 숙련공 부족, 불법하도급 … 부실시공 원인

2023-08-11 11:34:02 게재

현장 베테랑 건설노동자들 한목소리 … "적정 임금제 도입, 기능등급제 활성화로 숙련인력 육성해야"

"무너진 주차장 바로 위는 입주하면 우리 딸이 놀았을 놀이터가 들어설 자리였습니다. 입주 전에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부실시공도 모른 채 살았을 겁니다."(인천 검단 안단테 아파트 입주 예정자인 어광득씨)


지난 4월 인천 검단 안단테 아파트단지 주차장 붕괴사고로 '철근 누락'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무량판 구조를 주차장에 적용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91곳을 전수조사한 결과 15곳에서 결함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후 민간아파트 293곳도 무량판 구조를 집중조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무량판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부실시공이 사라지지 않는 원인으로 건설사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무리한 공사 속도전, 숙련공 부족, 불법 하도급 등을 꼽았다.

9일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위원장 장옥기, 건설노조)과 국회 교통위원회 심상정 의원(정의당·경기 고양갑) 주최로 서울 영등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긴급 아파트 안전진단 현장 노동자가 말하다' 토론회가 열렸다.

강한수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부실시공과 견실시공을 가르는 핵심 공정은 골조(뼈대) 공사"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몸으로 비유하자면 뼈가 철근이고 살이 콘크리트"라며 "골조공사가 부실하면 건물이 무너진다. 이 과정에서 어떤 불법 혹은 편법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심상정 의원은 "건설현장의 다양한 사고의 근본원인은 공사비와 공사기간 부족을 유발하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라며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헬멧쓰고 현장을 다니면서 건설비리를 척결하겠다고 하는데 핵심인 불법다단계 구조 개혁에는 손도 안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설노조, 부실시공 LH 책임자 처벌 촉구·국토교통부 규탄│전국건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3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 부실시공과 관련해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17년차 철근 노동자 한경진씨는 부실공사의 원인으로 △숙련공 부족 △공기(공사기간) 단축을 위한 무리한 공사 진행을 꼽았다

그는 "건설사들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저임금 노동자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킨다"면서 "공사기간을 단축해야 노동자 인건비, 현장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비용, 공사 자재와 건설기계 임대료 등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우천 우설 한파 폭염에도 일을 강행한다"고 지적했다.

철근작업은 건물의 뼈대를 세우는 일로 건물의 진동이나 하중에 의한 균열을 방지하고 건물에 수명을 늘려준다. 설계도면에 따라 수직근과 수평근이 교차하는 자리를 단단히 결속해야 건물도 안전하다. 철근을 시공할 때 도면을 보거나 도면을 보는 사람의 설명을 듣고 조립을 정확히 할 수 있는 사람이 숙련공이다.

한경진씨는 "전국 어느 아파트 현장이든 골조 공정에 투입된 인력 70~90%가 미숙련 이주(외국인) 노동자"라며 "관리자 1명이 이주노동자 20~50명에게 작업지시와 시공상태를 점검하다 보니 철근이 안들어가거나 규격에 맞지 않는 철근을 사용하고 철근끼리 결속이 안돼도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철근을 100개를 묶어야 하는데 20~30개만 묶는 경우도 많고 오히려 사측에서 조금만 묶으라고 노동자를 압박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며 "콘크리트 속에 묻힌 철근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시공사와 감리만 눈 감는다면 문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하청사가 철근작업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타설 날짜를 미리 잡아놓고 무조건 끝내라는 식으로 작업지시를 한다"고 덧붙였다.

◆철근, 콘크리트 타설 문제, 미장으로 덧칠 = 30년 경력의 레미콘 노동자 김봉현씨는 콘트리트 타설 과정에서 부실시공 사례를 소개했다. 김씨는 "건설사(원청)가 덤핑을 해 생산원가를 후려치면 레미콘(굳지 않은 콘크리트) 공장에서 이윤을 위해 비싼 자재는 60% 이하로 줄이고 싼 석탄재 비율을 높이는 등 배합 불량문제가 발생한다"면서 "또 건설현장에서 신속하게 타설하지 않고 레미콘 차량 '몰배차'(단시간 무더기 레미콘 차량 배차)로 장시간 대기하면서 축구공처럼 동그랗게 굳은 레미콘을 폐기처분하지 않고 삽으로 깨거나 물을 많이 타서 타설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레미콘 생산에서 현장 타설까지 여름철에는 90분, 겨울철에는 120분 안에 이뤄져야 하는데 건설사들은 공기단축을 위해 레미콘 차량 '몰배차' 등으로 레미콘이 굳거나 분리되는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김봉현씨는 "비가 많이 내리는 날씨에도 비가림 안전시설도 없이 타설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타설현장을 보면 빗물에 시멘트와 골재가 분리돼 패여나가는 상황에도 그대로 타설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거나 지자체에 고발하면 작업이 중단되기도 하지만 거의 무시하고 공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불량 레미콘 타설로 해당 부위에서 골재 분리현상 같은 문제가 나타나면 미장으로 덧칠해서 눈가림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적정임금제, 생산성·고용안정성 확보 = 실제로 건설노조가 지난 7~8일 건설노동자 251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무량판 시공현장에서도 '속도전을 강요받는다'는 응답이 전체의 43.5%(1093명)였다. '무량판 시공이 복잡한 데 반해 숙련공은 부족하다'는 응답도 29.3%나 됐다.

잇따른 부실시공의 원인(중복응답)에 대해서는 '불법도급'(73.8%)을 가장 많이 꼽았다. '무리한 속도전'(66.9%) '감리 부재 혹은 부실 감독'(54.0%) '미등록 이주노동자 착취'(52.1%)가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도 부실시공의 근본원인으로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숙련인력 부족 등을 꼽았다. 함경식 건설안전기술사·노동안전연구원장은 "건설사들은 공기(공사기간)를 단축해 임대료나 현장 유지·관리비를 절약해 이윤을 극대화한다"면서 "이번 아파트 부실시공 문제 원인에 감리 부재와 LH의 전관 문제가 있는 것도 맞지만 근본적으로는 건설업계에 만연한 불법 다단계 하도급과 무리한 공사 진행, 건설현장의 불안정한 고용형태와 기능인력 부재가 핵심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연구센터 전문위원은 '적정임금제' 도입과 '기능등급제' 활성화를 제시했다. 심 전문위원은 "건설근로자에게 적정임금을 지급하면 저숙련 근로자보다는 고숙련 근로자들의 채용을 선호할 것"이라며 "건설사들도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할 이유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과 경기도 등 일부 지자체에서 적정임금제를 시범사업으로 실시해 성과를 거둔 사례도 소개했다.

심 전문위원은 "적정임금제가 적용된 공사와 그렇지 않은 일반공사를 비교한 결과 적정임금제 공사현장에서는 내국인 숙련인력이 우선 고용됐고 고숙련 인력이 투입되니 오히려 노동력 투입도 감소하고 생산성 역시 높아졌다"며 "근로자도 사업자 발주자도 모두 '윈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건설근로자 기능등급제가 숙련인력을 육성하고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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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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