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철규 칼럼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의 이견(異見)
8월 24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5회 연속 동결하면서 5월 경제전망치에 대한 수정 전망을 내놓았다. 올해 경제성장율 전망치는 1.4%로 유지한 반면,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값은 낮췄다. 거기다 중국의 부동산 위기가 지속될 경우 올해 성장률이 더 낮아질 뿐 아니라 내년 성장률이 1.9~2.0%로 더 하락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별 전망치도 추가해 놓았다. 2년 연속 1%대 성장률을 기록할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다.
부동산 위기를 포함한 중국의 경기둔화가 한국에 미칠 부정적 효과가 내년에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데 비중을 둔 전망이다. 중국경제의 상황을 심상치 않게 보는 듯하고, 정부의 '상반기 침체-하반기 회복(상저하고)' 전망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관점은 통계청이 내놓은 '7월 산업활동 동향'에서도 어느 정도 뒷받침된다. 산업생산이 3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으며, 소매판매액지수(전월비 -3.2%)가 큰 폭의 소비하락을 보였고, 특히 설비투자는 -8.9%로 2012년 3월 이후 최대로 감소했다.
열흘쯤 후 경제부총리는 언론 인터뷰에서 하반기에 경기회복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기존의 '상저하고' 전망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7월과 8월에 반도체 수출의 물량 증가(아직 가격증가는 없지만)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상반기에 0.9% 성장했기 때문에 연간으로 기존의 성장률 전망치 1.4%가 달성되려면 하반기 성장률이 그 두배 이상이어야 한다는 논리도 제시했다.
중국경제에서 문제가 되는 기업들 대부분이 공기업이고, 경제에 대한 사회주의 체제의 통제력이 유지되고 있어서 안정화가 가능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이 또한 지난 20여년 간 '중국위기론'을 둘러싸고 진행된 논쟁의 한축을 이루는 낙관적인 견해로 어느 정도 타당한 근거를 갖고 있다 할 것이다.
다만 7월 산업활동 동향을 여름철 집중호우와 같은 일시적 요인으로 치부한 것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반도체 경기의 저점과 회복 시기가 지연될 것이라고 보는 업계와 시장참가자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경제 위기와 반도체 수출 전망 이견
경기전망을 둘러싼 한국은행과 경제부총리의 견해 차이는 결국 중국경제 위기와 반도체 수출 전망 차이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둘은 상반된 근거와 주장들이 있기에 어느 한쪽 의견이 더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기에는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그러나 정책당국은 낙관적인 견해만을 강조하기보다는 조금 더 비관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든다. 그래야 '반도체산업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는 한국경제를 아직도 천수답경제에 머물게 하고 있지 않나' '중국시장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가 미국경제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로 대체되고 있지는 않을까'라는 두가지 질문이 정책과제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가지 과제는 단기적 경기전망과 무관하게 구조조정에 속하는 정책과제다. 이미 올 1~7월간 한국의 수출액에서 미국의 비중(18%)이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19.6%)을 너무 빠른 속도로 대체하고 있다.
한편, 같은 날 기자간담회에서 한은총재는 또 한가지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 하반기 들어 예상보다 증가속도가 빠른 가계부채 문제다. 한은이 여전히 긴축적인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는 근거로 꼽은 것이다. 그러면서 젊은 세대의 부동산 투자에 대한 우려를 명시적으로 표현했다. 인플레이션을 모른다고도 했다. 한은 총재는 가계부채의 연착륙을 자신의 가장 큰 과제라고 했으며, 빚내서 집사는 데 대해서 수차에 걸쳐 거듭 경고한 바 있다.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을 부동산시장에서 찾은 것이다.
5차례에 걸친 기준금리 동결을 두고 한은이 긴축적인 입장을 고수한다고 볼 수 있는지, 또 공직자가 국민들에게 '집사라 마라'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차치하고라도 일단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은 적절한 일이다. 그러나 가계부채의 증가는 한은의 긴축통화정책이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긴축에 들어간 지 2년이 지났는데, 가계부채는 올 2분기 말 기준으로 전년 동기말 대비 52조2000억원이 증가했다. 문제는 가계부채뿐 아니라 기업부채도 올 1분기말 기준으로 전년동기말 대비 10.3% 급증했다는 데 있다. 통화긴축의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거꾸로다.
한은의 통화긴축정책 목적 이루지 못해
한은 총재가 직접 '정부의 대출금리 인하 압박'이나 특례보금자리대출 등 주택구입자금 대출확대에 우려를 겸한 불만을 표한 적이 있기 때문에 한은의 입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한은의 통화긴축정책이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정부는 9월 중 추가적인 '부동산 공급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한다. 경제수장들의 이견(異見)이 지속되고 커질수록 국민이 느끼는 불확실성도 커질 수밖에 없으니, 결국은 합리적 투자가 아닌 '베팅'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