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현장 리포트
실리콘밸리 구글·애플 캠퍼스 마음산책
지난달 구글의 점심은 제육볶음이었다. 구글 내부를 소개해주겠다는 클라우드 분야 엔지니어의 초대를 받고 캠퍼스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식당에서 끼니부터 채우고 시작하기로 결정한다. "이번 주는 제육볶음이 나오는 주간이에요. 제육볶음 드셔도 되고요. 다른 카페테리아에는 스테이크도 있어요. 뭐 드실래요?" 한국인답게 제육볶음으로 배를 채운다.
구글 캠퍼스 한복판에서 제육볶음을 배식받으며 생경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쌀밥을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떠 줬다. 지역실정에 맞게 세계화되고 있는 한국문화의 힘을 새삼 실감한다. 밥 한그릇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본격적으로 캠퍼스 탐방에 돌입했다. 갓 뽑은 카푸치노 한잔을 손에 든 채.
초심과 헝그리정신 강조하는 구글
구글의 넉넉한 인심은 널리 알려졌다. 제육볶음도 카푸치노도 돈을 받지 않았다. 이동하는 곳곳마다 값비싼 디톡스 물이 놓여 있다. 물론 공짜다. 식당에서 한층 올라가니 도서관이 나온다. "천국이 있다면, 그곳은 도서관일 것"이라고 말한 보르헤스가 절로 생각날 만큼 고요하고 평온한 분위기다. 시끌벅적한 식당 바로 위에 완전히 이질적인 공간을 구성해놓았다. 구글다운 발상이다.
도서관 옆에는 명상실(Meditation Room)이 있다. 직원들의 마음 건강을 챙기겠다는 단순한 의도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UC버클리의 인류학 교수 캐롤린 첸은 저서 '일하고 기도하고 코딩하라'에서 "빅테크 기업들은 이제 종교적 기능까지 회사 안으로 포괄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분석한다.
도서관과 명상실 한층 위에는 휴식을 취하고 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몰아서 마련해 놓았다. 한쪽에는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방이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아케이드 게임도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즐긴 추억의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2'가 깔려 있었다. 구석에서 테이블 축구를 할 수도 있고 볼링처럼 공을 굴려 표적물을 쓰러뜨리는 게임도 준비돼 있다.
조금 더 걸었더니 정체를 알 수 없는 통로가 나왔다. 통로 끝에는 마법사의 은밀한 아지트 같은 공간이 등장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려는 구글의 장난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아이 같은 장난스러움을 어른의 진지함으로 구현하려는 게 구글이 세상을 대하는 자세다.
사실 구글 캠퍼스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따로 있었다. 바로 업무공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부를 창출한 회사 중 하나인 구글이 어떻게 일하는지 엿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혹시 무리한 부탁일지 몰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지만 초대자는 흔쾌히 업무공간을 공개했다.
개성있고 특색있는 식당 휴게실 도서관 놀이터 명상실에 비해 구글 직원들의 사무 공간은 밋밋했다. 직원 한명 한명은 예상보다 훨씬 좁은 책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구글이 구성원들의 혁신을 이끌어내기 위해 치밀하게 설계한 규칙이다. '심플, 결정의 조건'의 저자 도널드 설과 캐슬린 아이젠하트는 "구글의 규칙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사무실을 대학원생 연구실처럼 만든 일"이라고 단언한다.
초창기 구글 직원은 사무실을 마음대로 꾸미고 회의실 이름을 원하는 대로 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수가 고정된 벽 없이 칸막이를 사용해 박사과정생 연구 책상처럼 공간을 꾸몄다. 여유 공간이 충분한데도 대부분 이 규칙을 따랐다. 설과 아이젠하트는 "비좁게 배치된 자리 덕분에 의사소통이 원활해지고 창의적 발상 교환이 활발해졌으며, 경제적으로 부유한 직원들도 스타트업처럼 굶주린 약자와 같은 태도로 공격적으로 일하게 됐다"고 평가한다.
필자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굶주린 약자와 같은 태도다. 현재 구글은 '빅테크' 혹은 '테크 자이언트'를 대표한다. 문자 그대로 거인처럼 몸집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지만 구글은 여전히 언더독(underdog)의 자세를 강조한다. 우리가 익숙한 개념으로 풀이하자면 초심(初心)과 헝그리 정신이 되겠지만 이를 빅테크 문화에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초심은 어떤 특정 시점의 마음을 잊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자신을 새로 시작하는 직업인으로 정의하려는 마음이다. 지금껏 이룬 부와 혁신이 얼마나 막대하건 간에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면서 새로이 출발점에 서는 자세다.
헝그리 정신도 마찬가지다. 빅테크의 헝그리 정신은 배고픔을 극복하고 졸업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의도된 결핍은 부를 이뤘음에도 혁신을 지속하기 위해 끝까지 탑재해야 하는 전제조건이다. 따라서 초심과 헝그리 정신은 성공하고 나서 폐기하는 구식 하드웨어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주기적으로 갱신해야 하는 소프트웨어와 같은 역할을 한다.
총체성 온전함의 정신 표현한 애플파크
구글 캠퍼스를 벗어나 애플로 발걸음을 옮겼다. 구글과 애플을 잇는 가교는 역시 '헝그리 정신'이다.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2005년 스탠퍼드대학 졸업식 연설 마지막 문장은 '늘 배고프게, 늘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다.
대중은 이를 잡스가 창작한 말로 인식하지만 가장 처음 슬로건을 주창한 사람은 1960~1970년대 반문화(counterculture) 흐름을 이끈 스튜어트 브랜드다. 1968년부터 1972년까지 브랜드가 발간한 잡지 '홀어스카탈로그(Whole Earth Catalog)'의 폐간본 구호가 바로 '늘 배고프게, 늘 우직하게'였다. 이 구호는 당시 기술과 인간의 접점을 찾으려던 젊은 예비 창업자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줬다. 대표적 인물이 스티브 잡스다. 잡스는 스탠퍼드대학 연설에서 '홀어스카탈로그'에 경의를 표하며 이를 종이로 만든 구글이었다고 평가했다.
잡스가 애플 직원들에게 남긴 마지막 유산은 아이폰이 아니라 애플의 현재 본사인 '애플파크'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쿠퍼티노 지역의 부지를 하나씩 하나씩 매입한다. 수십년 전만 해도 과수원이었던 땅 60만㎡를 확보해 영속적인 회사를 표상하는 캠퍼스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공개하며 "대대손손 애플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상징을 사옥으로 남기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잡스가 설계에 깊숙이 관여한 애플파크는 결국 그가 사망한 지 5년이 넘어 2017년 완공된다.
현재 애플의 본사이자 제2캠퍼스인 애플파크는 완벽한 원을 그리고 있다. 왜 원 모양일까. 여기에는 잡스가 일평생 애플에서 추구한 총체성과 온전함(wholeness)이 담겨있다. 아쉽게도 외부인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까닭에 애플파크 내부를 들어갈 수는 없었다. 대신 애플이 1993년부터 2017년까지 본사로 사용한 제1캠퍼스에 초대를 받아 방문할 수 있었다. 애플 제1캠퍼스 이름은 '인피니트 루프(Infinite Loop)'다. 타원 모양의 이 캠퍼스 명칭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끝없이 동작하는 현상을 일컫는 '무한 루프'를 변주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선(禪)불교도로서 영속성과 한계없음을 추구한 수행자 스티브 잡스의 철학과 가치관이 숨어 있다.
시작하는 자의 마음, 갈망하는 자의 결핍
인피니트 루프 캠퍼스에는 신입직원을 교육하는 '애플 대학(Apple University)'이 존재한다. 건물 한 벽면에는 잡스의 발언이 양각돼 있었다. NBC 앵커 브라이언 윌리엄스와 한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었다. 월리엄스가 묻는다. "성찰적 질문을 하나 하죠. 당신은 현재 애플이 이룬 성취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잡스가 답한다. "거기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 말아야겠지요. 그저 다음이 뭔지 찾아내야 합니다(Do not dwell on it for too long. Just figure out what's next)."
누군가 실리콘밸리 정신적 본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두가지를 들겠다.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과 갈망하는 자의 결핍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