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금융 이용 계좌 즉시 거래 중단…피해 신고·구제 한번에
금융당국, 원스톱 피해 신고 체계 구축 … 내년 1분기 내 시행
연이율 60% 초과 대부계약, 금감원장 명의의 ‘무효화 통지서’ 발송
범죄수익 이체된 집금계좌 동결 추진, 언론 보도기준도 제정·시행
금융당국이 불법사금융 이용 계좌를 즉시 차단하기로 했다. 또 피해자의 신고가 접수되면 불법추심이 중단되도록 조치하고 채무자대리인 선임, 소송을 통한 구제 등이 한번에 이뤄질 수 있도록 원스톱 피해 신고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29일 오전 국무조정실과 법무부, 경찰 등 정부 관계기관, 금융감독원과 서민금융진흥원 등 유관기관이 참석한 가운데 현장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불법사금융 근절방안’을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불법사금융에 이용된 계좌를 차단하기 위해 자금세탁방지제도(강화된 고객확인)를 활용하기로 했다. 금융회사는 기존 계좌가 대포통장으로 의심되는 등 범죄에 이용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고객확인(CDD)보다 강화된 고객확인(EDD)을 하도록 돼 있다.
금감원이 불법사금융 피해자가 원리금·연장비·지연금 등을 상환(송금)한 상대방 계좌에 대한 정보를 금융회사에 제공하면, 금융회사는 강화된 고객확인 대상으로 분류하고 해당 고객에게 안내한 후 고객확인 재이행시 계좌거래를 허용하는 방식이다.
계좌 중단 기간은 원칙적으로 고객확인 재이행 전까지이며, 고객의 정보제공거절 등으로 고객확인이 불가할 경우 거래관계는 종료된다.
금융당국은 불법추심에 직접 이용된 계좌뿐만 아니라 대포통장 가능성이 높은 해당 명의인의 타 금융회사 계좌, 범죄수익이 이체된 집금계좌에 대해서도 대부업법 개정을 통해 동결을 추진하기로 했다. 불법추심에 이용된 대포통장 명의인 정보를 금융권에 공유하고 범죄수익이 이체된 계좌정보를 상대 금융회사에 제공해 각 금융회사가 점검·동결하는 방식이다.
◆피해 신고하면 전담자 배치, 추심 즉시 중단 = 불법사금융 피해자가 서민금융진흥원이나 금감원에 신고를 하면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신용회복위원회)로 신고사항이 이송돼 ‘전담자’가 배치된다. 전담자와 함께 피해 신고서를 작성해 금감원에 신고하면, 금감원은 불법추심이 즉각 중단되도록 초동 조치 후 경찰 수사의뢰, 신고내용에 따른 각 불법수단 차단 및 법률구조공단 채무자대리인 선임 의뢰를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경찰의 수사 결과를 회신 받으면 법률구조공단에 손해배상·부당이득반환 청구 등 소송구제 청구를 의뢰하는 등 피해자의 신고 한번으로 모든 절차가 이뤄지는 ‘원스톱 불법사금융 피해신고 체계’가 구축된다.
피해자는 피해구제 과정에서 불법추심 중단 여부 등을 전담자 및 각 구제기관과 긴밀히 공유하며 각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원스톱 피해신고 체계는 금감원의 온라인 시스템 개편에 걸리는 시간(6개월)을 고려해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의 피해자 전담체계와 함께 내년 1분기 내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불법추심 행위를 즉시 중단하기 위한 금감원의 초동조치도 강화된다.
현재 채무자대리인 선임(약 10일 소요) 전 바로 불법추심을 중단하도록 금감원은 불법추심자에게 채무자대리인 선임 및 법적 대응 예정임을 구두 또는 문자로 경고하고 있다. 올해 9월부터 11월말까지 불법추심자의 전화번호가 확인된 1397건에 대해 즉시 중단 및 거래 종결 등을 요청했다.
또 내년 1분기부터는 금융감독원장 명의의 ‘반사회적 대부계약 무효화 통지서’를 발송해 불법추심이 즉시 중단되도록 할 계획이다. 올해 7월 개정된 대부업법에 따르면 연이율 60% 초과 대부계약 등 반사회 대부계약은 상환의무가 없어서 원금과 이자를 회수할 수 없다.
반사회적 대부계약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법률구조공단을 통해 관련 소송(부당이득 반환청구, 손해배상 등) 등을 지원해 피해자를 구제하고 있다. 지난 5월과 6월에 반사회적 대부계약 무효소송에서 피해자가 승소해 손해배상을 받은 판결이 나왔다.
◆불법추심 SNS계정 정보 조회, 연동 전화번호도 차단 =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아직까지 반사회적 대부계약은 이자뿐만 아니라 원금까지 무효이고, 따라서 원금조차도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점을 모르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며 “관계기관이 긴밀히 협업해 다각적이고 지속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또 “최근 불법사금융은 SNS 차명계정, 대포통장 등을 활용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수사 및 단속, 피해 구제에 많은 어려움이 야기되고 있다”며 “변화하는 양상에 대한 대응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수사 연계 등을 위해 불법추심을 한 SNS계정 정보를 금융당국이 SNS사업자에게 조회할 수 있도록 대부업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SNS계정 정보는 이용자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ID), 가입일, 해지일 등이다.
또 불법추심 SNS계정에 연동된 전화번호도 불법추심 전화번호로 간주해 차단할 수 있도록 대부업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불법추심에 이용된 SNS 계정 정보 조회권을 신설하면서, 조회결과 확인된 전화번호 등도 차단하기 위해서다.
금감원은 인공지능(AI) 기반 불법정보 감시시스템을 통해 단속 대상을 현재 불법대부광고에서 불법추심 게시물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SNS플랫폼에도 단속정보를 제공해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 심의) 조치 전 자율적인 신속 차단을 유도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 배너 광고 등 온라인 대부광고시 대부이용자의 전화번호가 대부업자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안심번호 사용을 의무화하는 감독상의 명령권을 발동하기로 했다. 또 대부이용자가 대부계약을 포함한 모든 대출을 온라인에서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금융위 등록대부업자가 대부계약 후 신속히 신용정보를 등록하도록 지도할 예정이다.
추심 관리감독 규제의 사각지대로 지적되고 있는 ‘렌탈채권 매입추심업’에 대한 관리감독도 강화된다. 렌탈채권 매입추심업자에 대해서도 대부채권 매입추심업자와 동일하게 금융위 등록을 의무화하고 채권추심 가이드라인도 마련할 예정이다.
◆불법사금융예방대출 금리 5~6%대로 낮춰 = 금융당국은 연체자 등 금융취약계층도 받을 수 있는 불법사금융예방대출(옛 소액생계비 대출) 금리를 현재 15.9%에서 5~6%대로 낮추기로 했다.
내년 1월 2일부터 금리 수준을 12.5%로 인하하고 전액 상환시 납부한 총 이자의 50%를 페이백해 실질 부담금리를 6.3% 수준으로 완화하는 방식이다.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적 배려자의 경우는 금리수준을 9.9%로 인하해 전액 상환시 실질 금리부담을 5% 수준으로 낮췄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는 ‘불법사금융 및 과다채무 피해 예방을 위한 보도기준’이 발표됐다. 한국기자협회·금융위·금감원·서민금융진흥원·신용회복위원회는 보도기준 시행을 위한 협약식을 체결했다. 보도기준에는 불법사금융 및 과다채무 피해 보도시 피해자 및 가족의 신원을 유추할 수 있는 얼굴, 음성, 이름, 거주지, 직업 등의 신상식별정보는 노출하지 않는 등 피해자의 인권과 권익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또 관련 내용을 보도할 때는 불법사금융 피해에 노출된 경우 금융감독원(1332)에 신고해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과다채무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에 서민금융진흥원(1397) 또는 신용회복위원회(1600-5500)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게재하도록 권고했다.
연이율 60% 초과 대부계약은 원금과 이자 모두 무효라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이 위원장은 “이번에 제정된 보도기준은 불법사금융 신종수법은 널리 알리되 불필요한 개인 프라이버시는 공개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라며 “금융위는 보도기준이 불법사금융 예방에 기여할 수 있도록 협약 기관과 지속적으로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