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채혈검사 방식 변경에 가중되는 환자불안

2025-12-29 13:00:02 게재

질병 진단이나 건강 확인을 위해 우리는 주기적으로 병원에서 피를 뽑는다. 환자에게는 따끔한 통증과 결과에 대한 불안감이 앞서는 순간이며, 의료진에게는 채혈 실패의 압박감이 몰려오는 긴장의 시간이다.

현재 국민 대부분은 동네 병·의원(위탁기관)에서 이 채혈 과정을 거친 뒤, 며칠 후 그곳에서 결과를 듣는다. 위탁기관은 환자를 대면하며 검체를 채취하고 결과를 판독해 치료 계획을 세우며, 전문적인 분석은 별도의 검사기관(수탁기관)이 맡는 효율적인 분업 시스템이 안착해 있다.

환자는 병원 한 곳에 비용을 한 번만 내면 모든 과정이 마무리 되어 매우 간편하다. 특히 의원급 의료기관의 위탁검사 비중이 50%를 상회할 정도로 이 구조는 대한민국 보건 의료의 실질적인 토대를 이루고 있다.여기서 환자를 위한 피 한 방울에 담긴 의료진의 헌신과 분업의 가치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시장 투명화를 명분으로 ‘위·수탁 분리 청구’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보험공단에서 위탁기관(채혈 및 판독료)과 수탁기관(검사 분석료)에 검사비를 각각 나누어 지급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정부는 시장 관행 개선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이 정책이 국민에게 가져올 ‘정보 보안의 재앙’에 대해서는 충분한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

채혈 공포에 개인정보 유출까지 걱정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민감한 의료 데이터의 유출 위험이다. 분리 청구를 위해서는 환자의 신상정보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검사항목 정보를 매번 수탁기관에 전달해야 한다. 데이터 이동 경로는 복잡해지고 정보가 머무는 지점은 늘어난다. 보안 사고의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뜻이다.

통신사 정보 유출보다 무서운 ‘의료 정보’ 유출의 실체를 봐야 한다. 최근 대형 통신사와 쇼핑몰의 대규모 정보 유출 사고 당시 유출된 정보는 이름, 전화번호 등 단순 신상 정보이다. 하지만 검체 검사과정에서 유출될 수 있는 정보는 차원이 다르다. 수탁검사 사이트와 연동되는 정보는 개인의 가장 은밀한 영역인 ‘건강 정보’를 포함한다. 내가 앓고 있는 병, 유전적 요인, 숨기고 싶은 질환 이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단순히 반복되는 검사항목 리스트만 보더라도 개인의 질병 정보를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신상 정보는 번호를 바꾸면 수습이 상당히 가능하지만, 질병 이력과 유전 정보는 평생 바꿀 수 없는 낙인이 된다.

개인정보 사고가 빈번한 요즘, 환자들은 피를 뽑을 때마다 “내 병명이 새 나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새로운 공포에 직면할 것이다. 또한, 매번 검사 시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거쳐야 하는 행정적 번거로움도 오롯이 국민의 몫이 된다. 행정적 불편도 무시할 수 없다. 비용이 두 기관으로 나뉘어 청구되면, 환급이나 청구 오류 발생 시 환자가 양쪽 기관을 모두 상대해야 한다. 이는 환자의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게 하며 의료현장에서의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국민건강권 지키는 방향으로 개편돼야

환자의 불안을 해소하는 의료진의 기술과 판독 전문성은 의료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가치를 인정해 검체검사 판단료를 별도로 인정하며 현장의 혼선을 줄이고 있다.

정책 변화는 행정 편의보다 국민의 사생활 보호와 편의성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소중한 건강 정보가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이번 개편안이 국민 건강권을 지키는 방향으로 수정 보완되기를 바란다.

김태빈 경기도 내과의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