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공정질서 | 인터뷰 -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노동위는 노동시장 공정질서를 만들어 가는 기구"

2023-12-08 11:46:33 게재

대안적 분쟁해결 확산, 버스·의료·철도 파업 막아 … "노동문제 정치화, 정치가 사회적 대화 걸림돌"

"10월 중앙노동위원회의 '육아휴직 성차별 시정명령'은 낡은 관행을 바꾸는 '작은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한국기술교육대 직업능력심사평가원에서 만난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올해 가장 의미있는 노동위원회 판정으로 꼽으면서 한 말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29일 취임직후 '대안적 분쟁해결제도'(ADR,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을 도입했다. 디지털 시대로 전환하면서 근로자와 사용자의 경계구분이 흐려지고 노동과 고용분쟁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새로운 환경변화에 맞는 분쟁해결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10개월 동안 개별분쟁은 물론 버스·의료·철도 등 집단분쟁 현장에서 파업을 막을 수 있었다. 노동위원회도 현장형으로 바뀌고 있다. 노동위원회는 K-ADR 프로그램으로 '공정 노사 솔루션'(공솔)과 '직장인 고충 솔루션'(직솔)을 만들어 사업장의 갈등을 예방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노동위원회는 노동시장 공정질서 만들어 가는 기구"라며 공정을 강조했다. 현장 최일선에서 뛰는 조사관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업무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노동위원회 설립 70년을 앞두고 내부 혁신을 만들어 내고 있다.
노동개혁에 대해서는 시간이 걸린다며 기술변화에 대응한 직업훈련을 의제로 제안했다. 최근 한국노총 사회적 대화 복귀에 대해서는 협상에 대한 원칙과 비전부터 합의하고 공동의 관심사인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창의적인 대안 마련을 주문했다.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서울대 노동경제학을 공부하고 미국 아이오와대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중노위 공익위원,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노동경제학회 회장을 지냈다. 김영삼정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김대중정부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을 지냈다.

 


■김영삼정부 때인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출범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윤석열정부가 지난 3월 노동개혁의 하나로 추진한 근로시간 개편안이 '1주 69시간제' 논란으로 중단됐다.

1996년 노사관계 개혁은 상대적으로 단순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현 정부의 노동개혁 스케일 더 크고 의지도 강하다. 지금은 노동조합의 정치적 영향력도 막강해졌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로 중산층의 약화된 상태로 일반 국민의 노동개혁에 대한 관심도 더 크다. 복합적인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일상화 등으로 노동개혁에 대한 정보의 전달과 공유가 다양해지고 동시에 취약해졌다. 특히 프레임 문제가 그렇다. 잘못된 프레임으로 근로시간 선택의 폭을 넓히자는 제안이 장시간 노동으로 변질됐다.

노동개혁의 핵심은 중산층 회복이다. 노동개혁에는 시간이 걸린다. 노동개혁의 목표와 달성 전략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고용기회를 늘리고 소득을 높이는 방법이 직업훈련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다. 기술 변화와 발전에 맞는 직업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 노동개혁이다. 이 문제가 노동개혁의 의제가 되면 좋을 듯하다.

■지난달 13일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 복귀'를 선언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노사정의 노동정책을 둘러싼 정책협상의 무대라고 볼 수 있다. 협상의 성공은 신뢰와 비례한다. 정부는 노동계 특히 한국노총을 친구로 신뢰관계를 추구한다고 본다. 하지만 노동문제가 정치화되고 있다. 정치가 사회적 대화의 걸림돌이 된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사회적 대화의 필요조건은 충족됐지만 충분조건은 여전히 부족하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대화의 전략이 필요하다. 먼저 협상에 대한 원칙과 비전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해결을 정부나 한국노총 모두 핵심과제로 삼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노동계와 정부가 창의적인 대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올해 노동위원회 판정 가운데 가장 의미있는 판정사건은 꼽는다면.

지난 10월 중앙노동위원회의 '고용상 성차별 시정명령'이다. 해당 사업장은 전통업종이 아닌 신산업인 정보통신(IT)업 대기업에다 노조가 있는데도 성차별을 방치한 케이스다. 취업규칙에 여성이 육아휴직을 가면 승진에 불이익을 주도록 규정했고 징계와 같은 등급이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성차별로 보고 시정명령을 했다. 취업규칙을 고쳐야 하고 불이익 줬던 것을 원상회복시켜야 한다. 회사측에서 행정소송을 냈다. 하지만 중노위는 법원에서 다퉈서라도 이 문제를 바로 잡으려고 한다.

노동위원회는 노동시장의 공정질서를 만들어가는 기구다. 판정은 낡은 관행을 바꾸는 '작은' 개혁이 될 수 있다. 여성 경력단절의 중요한 원인이 육아문제다. '일과 삶의 균형' 즉 워라밸에서 제일 중요한 게 아이를 키우고 직장생활을 잘하는 거다. 이런 문제에 노조와 회사가 적극 나서고 정부도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래야 저출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지난해 5월부터 고용상 성차별과 직장내 성희롱 피해 근로자에 관한 적절한 조치의무 위반과 불이익 처우에 대한 노동위원회 시정제도가 시행중이다.

노동위원회의 시정제도는 큰 의미가 있다. 그간 법위반에 대해 벌금 및 과태료 등 처벌에 중점을 뒀는데 이제 차별적 처우 등의 시정은 물론 근로조건 개선이나 적절한 배상을 통해 피해자의 권리보호를 할 수 있다. 노동위원회는 고용상 성차별 시정명령 외에도 성희롱 근로자 보호를 위한 근무장소 변경이나 유급휴가 명령 등이 적절한지를 살펴볼 수 있다.

■노동위원회에 접수된 분쟁사건이 8월말 기준으로 작년 동기보다 22% 급증했다.

노조 관련 집단분쟁과 근로자 개인 개별분쟁 모두 늘었다. 특히 개별분쟁이 급증했다. 노조조직률이 늘면서 노조사무실,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등 복수노조 관련 사건이 늘었다. 개별분쟁의 경우 직장내 괴롭힘 등으로 인한 해고나 징계 사건이 늘었다.

그 이유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경기후퇴와 디지털 전환으로 악화되고 새로운 고용관행이 빠르게 확산한데 있다. 게다가 근로자의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관련 입법도 많아졌다. 반면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분쟁해결 문화는 후퇴하고 노동분쟁이 사법화된 것도 이유로 들 수 있다. 또한 법원과 달리 노동위원회가 분쟁을 신속하고 무료로 해결한다는 장점이 노동위원회의 판정이나 조정서비스에 대한 수요의 증가로 나타났다.

■취임이후 노동분쟁 해결방식으로 미국의 '대안적 분쟁해결 제도'(ADR)를 제시했다.

이해관계의 차이로 갈등이나 분쟁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적은 비용으로 신속하게 당사자들이 수긍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분쟁해결 지원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선진국에서 대안적 분쟁해결 즉 ADR이 보편화됐다. ADR은 법원에서 소송이 아닌 협상·화해·조정·중재 등으로 당사자들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미국은 물론 노동법원제도를 따르는 독일도 ADR을 활용한다. 이들 나라는 물론 영국 호주 일본은 ADR법까지 도입했다.

ADR은 각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부당노동행위를 예로 들면 미국과 일본은 화해를 통해 구제하는 비율이 70~80%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부족하면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되기 어렵지만 화해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좋아서 노조는 물론 사용자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부당해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취임 이후 화해를 통한 분쟁해결을 강조하면서 근로자는 물론 사용자한테도 많은 이익을 돌려줬다고 자평한다. 지금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ADR법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국회에 ADR법 도입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올해 ADR로 많은 집단분쟁을 해결했다.

지난 10개월 동안 216건의 ADR로 해결됐다. 대표적으로 3월 서울시버스 노사가 ADR를 활용해 사전조정으로 파업없이 임금협상과 단체협약을 타결했다. 그 이후 한국노총 산하 의료산업노조나 민주노총 산하 보건의료노조도 ADR로 해결했다. 여름에는 민주노총 소속 26개 지방의료원 단체교섭을 조정위원들이 12시간이 넘는 마라톤 조정을 통해 극적으로 타결했다. 민주노총 소속 철도노조도 지난해와 올해 파업을 앞두고 임단협 타결을 끌어냈다. 얼마 전에는 포스코 노사도 노동위원회에 조정서비스를 요청했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기대에 부응했다. 노동위원회가 노사 대화가 막히면 SOS를 칠 수 있는 기구로 자리 잡아가는 느낌이다.

■'공정 노사 솔루션'(공솔)과 '직장인 고충 솔루션'(직솔)을 도입했다.

공솔과 직솔은 노동위원회가 만든 예방적 ADR 프로그램이다. '공솔'을 도입하기로 합의한 사업장에 대해서 노동위원회는 단체협약의 체결을 둘러싼 갈등은 물론 해석과 이행 등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는데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

'직솔'은 개별 분쟁 특히 직장내 괴롭힘 등의 고충해결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에 따르면 직원들이 힘들면 고충처리하게 돼 있다. 보통 회사나 노조의 중책을 맡은 사람이 고충처리위원이다. 하지만 직원 입장에서는 고충처리위원이 보호막이 될지 아닐지 불안하다. 직솔 도입을 합의한 사업장에 대해 노동위원회가 추천한 전문가는 외부 고충처리위원이 된다. 마치 옴부즈맨 역할을 하는 것이다.

■ADR 전문가 양성프로그램 도입과 '디지털 노동위원회'를 구축하고 있다.

ADR 전문가 양성은 필수이고 노동분쟁 해결시스템의 핵심 중의 핵심 인프라다. 내년에는 교육과 능력인증제도를 도입하려고 한다. 노사도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쉽게 얻어 스스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고 위원과 조사관이 업무를 효과적으로 하도록 디지털 노동위원회를 구축하고 있다. 디지털 노동위원회가 구축되면 노사는 직장이나 자택에서 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 위원과 조사관들이 판정문과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드는 시간이 줄고 활용할 수 있는 정보는 많아진다. 판정문과 보고서들을 데이터화하면 키워드 몇개 만으로 쉽게 찾을 수 있다.

■내년이면 노동위원회가 설립된 지 70년이다. 노동위원회의 비전은 무엇인가.

공정과 신뢰를 핵심가치로 삼는 전문적인 노동분쟁 해결지원 기구를 지향한다. 당사자들이 사건을 신청하면 그때 가서 해결을 도와주는 수준을 넘어, 분쟁의 원인을 진단하고 예방시스템을 구축하는 기구로 성장해 신뢰사회를 만드는데 일익을 담당하고자 한다. 내부적으로는 고용형태의 다양화 등에 따른 새로운 분쟁도 해결하는 전문기구이자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시장의 약자에게 권리구제 등으로 도움을 주는 헬프 기구로 자리잡고자 한다.

■디지털 시대로 전환하면서 근로자와 사용자의 경계구분이 흐려지고 노동과 고용 분쟁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노동위 업무 자체를 더 유기적으로 가져가야 한다. 현재 조정은 주로 파업 다루는 걸로 인식되고 있다. 파업이 문제가 아니고 개별 분쟁에서 다툼이 많아지고 있다. 조정기능이 확장이 된다고 본다. 새로운 분쟁해결 방식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

노동법을 유연하게 가져가야 한다. 근로기준법 경우 문턱이 높다. 5인 이하 사업장은 적용되지 않는다. 기준을 높여놨기 때문이다. 5인 이하 사업장 근로자들이, 1인 노동 하는 사람들도 보호받으려면 문턱을 낮춰야 한다. 노동법이 더 포용적이 돼야 한다. 그 안에서 노동위원회가 현장에 맞춰 좀 더 유연하게 적용이 가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미국 영국에는 에이카스(ACAS)처럼 노동을 폭넓게 인정해 주고 분쟁을 효과적으로 해결해 주는 노동위원회가 돼야 한다.

글 사진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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