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이번엔 헤즈볼라와 전면전?

2024-01-09 10:46:17 게재

레바논에서 헤즈볼라 지휘관 폭사 … 헤즈볼라 "제한·규칙·구속 없는 싸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스라엘이 이번에는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전면전 위기로 치닫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8일 사우디아라비아 알 울라에서 중동 지역 긴장 완화를 위한 일주일간의 순방 기간 중 무하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가자지구 지상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 악화와 미국의 만류 등으로 저강도 정책전환을 선언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일부 병력을 빼는 대신 레바논으로 확대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인한 헤즈볼라 지휘관 사망이 도화선이 되고 있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남부 마즈달 셀름을 공습했으며 이 공격으로 헤즈볼라 정예 라드완 부대의 지휘관 중 하나인 위삼 알타윌이 숨졌다.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이 시작된 뒤 지금까지 사망한 헤즈볼라 지휘관 가운데 최고위급이다. 현지 소식통은 "이제 상황이 더 폭발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AFP통신은 "숨진 지휘관이 레바논 남부지역의 헤즈볼라 작전을 관리해 온 인물"이라며 "그는 차량을 겨냥한 이스라엘 공습에 사망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전투기로 헤즈볼라 대원들이 작전 중인 장소를 포함해 다수의 레바논 내 목표물을 타격했다고만 밝혔다.

지금까지 레바논에서 135명의 헤즈볼라 대원을 포함해 180명 가량이 목숨을 잃었고 이스라엘에서도 9명의 군인과 민간인 4명이 사망했다.

레바논만이 아니다. 시리아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성명을 통해 시리아 남부의 베이트 진 마을에 머무르던 하마스의 하산 아카샤를 제거했다며 "우리는 어떤 위협에도 계속해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시리아 영토에서 오는 테러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시리아는 자국 영토에서 발생하는 모든 행위에 책임을 져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최근 이스라엘이 시리아 지역에 폭격을 강화하면서 지난 3개월간 헤즈볼라 대원이 19명 가량 사망했으며, 이는 지난해 나머지 기간을 전부 합친 것보다도 2배 이상 많은 수치다.

앞서 지난 2일엔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외곽에 있는 하마스의 사무실까지 드론 공습을 받아 하마스 정치국 부국장 알아루리 등 6명이 사망하면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무력충돌 수위가 높아졌다. 헤즈볼라가 지난 2006년처럼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은근히 이를 부추기는 양상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북부 국경을 방문해 "헤즈볼라는 2006년 우리를 오판했고 지금은 더 심하게 오판한다"며 "헤즈볼라는 이곳에서 엄청난 힘과 단합, 안보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결단을 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광범위한 군사작전 없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원하지만 그렇다고 멈춰 서진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남쪽의 친구들(하마스)을 통해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예시를 보여줬다. 곧 이곳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등 서방의 고위 관리들이 황급히 중동을 찾았으나 해법을 찾지 못했다. 워싱턴포스트는 7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전쟁 초기 헤즈볼라를 하마스의 배후로 지목하면서 선제공격을 제안했지만 미 행정부가 즉각 만류했다고 보도했다.

헤즈볼라 역시 이스라엘과 전면전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헤즈볼라는 알아루리 사망 직후 성명을 통해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고 있다"며 보복을 다짐했는데 이번에 위삼 알타윌의 사망으로 감정은 더욱 격화될 조짐이다.

헤즈볼라 최고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지난 3일 연설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적이 레바논에 대해 전쟁을 벌이려 한다면 우리는 어떤 제한도, 규칙도, 구속도 없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헤즈볼라는 하마스 고위 지도자 살레 알아루리가 살해된 이후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강화했다. 이스라엘 언론에 따르면 헤즈볼라 공격으로 메론 산의 북부 항공 통제 기지에 대한 로켓포 공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이스라엘군과의 전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부군과 맞먹거나 우세한 전투력을 갖췄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두바이에 본부를 둔 걸프연구소는 헤즈볼라가 1000명의 정규 대원과 6000∼1만명의 자원병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추정했고, 일부 군사전문가는 헤즈볼라의 병력 규모를 6만명으로, 보유 중인 미사일을 15만발 가량으로 추산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전면전을 벌이고 이란까지 가세한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블링컨 장관이 "실제로 확전되는 것은 이스라엘과 레바논, 헤즈볼라 그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또 다시 중동을 급히 찾은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정재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