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이태원특별법 재의요구 건의

2024-01-30 11:44:19 게재

"위헌 소지" 국무회의 의결

유족들 '오체투지' 항의

정부가 '이태원참사 특별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는 안건을 30일 의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곧 재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10.29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및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이태원참사 특별법)' 재의요구안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특별법에 대해 "자칫 명분도 실익도 없이 국가 행정력과 재원을 소모하고, 국민의 분열과 불신만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별법에 규정된 특별조사위원회 권한에 대해 △헌법상 영장주의 원칙 훼손 △국민의 기본권 과도한 침해 소지 △위원회 구성 절차의 공정성과 중립성 훼손 우려 등을 짚으며 "참사로 인한 아픔이 정쟁이나 위헌의 소지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고 재의요구 건의 이유를 밝혔다. 이어 "진정으로 유가족과 피해자 그리고 우리 사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재발 방지에 기여할 수 있는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정부도 적극 수용할 것"이라며 '문제가 되는 조문'에 대한 여야간의 재협상도 촉구했다.

윤 대통령이 이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취임 1년 8개월여 만에 9개의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게 된다. 대통령은 직전에 거부권을 행사한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을 포함해 양곡관리법 제정안, 간호법 제정안 등 8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 이후 이태원참사 특별법은 국회로 다시 돌아가 재의결 절차를 밟게 된다. 다만 여당의 반대가 여전한 만큼 폐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부는 이날 재의요구 건의 후 10.29참사 피해지원 위원회 설치 등 별도 지원책을 발표했다. 유가족들과 국민 여론을 고려한 조치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10.29참사 피해지원 종합대책을 유가족과 협의를 거쳐 범정부적으로 수립,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책에는 △피해자 생활안정 지원금 및 의료비·간병비 확대 지원 △치유휴직 지원, 심리안정 프로그램 운영 △이태원 지역 경제활성화 방안 마련 △추모시설 건립 등이 포함된다.

방 국무조정실장은 "지금은 분열과 갈등이 아닌 연대와 협력을 통해 재난이 남긴 아픔을 잊지 않고 교훈으로 삼아 현명하게 미래를 함께 대비해 나가야 할 때"라면서 "국회에서도 건설적인 논의를 통해 미래를 대비하는 정책 마련에 뜻을 모아달라"고 말했다.

한편,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은 전날 이태원참사 현장부터 용산 대통령실까지 1.5㎞를 오체투지로 기어가며 거부권 행사 방침 철회를 촉구했다. 국무회의 당일에는 회의가 열린 정부서울청사 앞에 모여 특별법 공포를 촉구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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