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재협상 '공전' … 정부·여당 '공포마케팅' 논란

2024-01-30 10:55:24 게재

"'빵집·식당 사장, 범법자 될 수 있다'는 주장은 '대체로 가짜'"

"지난 2년간 폐업 없어 … 800만 실업 위기 지적도 사실과 달라"

민주 "정부 '대책 없는 유예' 주장 …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필수"

더불어민주당은 중대재해처벌법 재협상을 준비하고 있지만 정부와 여당은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대외적으로는 '중대재해처벌법 재협상'을 언급하면서도 실제로는 협상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50인 미만 사업장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확대 적용됐다. 사진은 28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의 한 공사현장. 고양=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30일 박주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지난 토요일(27일), 일요일(28일)에 정부가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면서 사실상 재협상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확인했다.

박 부대표는 윤 대통령이 언급한 상법 개정, 온라인플랫폼법 제정이나 당 차원의 김포 편입 등이 법무부, 공정위, 행안부 등에서 차단된 점을 지목하면서 윤 대통령 등 대통령실과 여당의 정책 제안에 대해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을 5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체에도 적용하는 방안이 2년간의 유예를 거친 후 지난 27일부터 시행된 데에 대해 우려를 쏟아내면서 재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전날 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 윤 원내대표는 오찬회동에서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과 관련, 영세사업자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국회에서 협상을 계속 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이도운 홍보수석이 전했다. 윤 원내대표는 브리핑에서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와 확대 시행 유예를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가 대책없이 '공포마케팅'만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는 "이번에 중대재해처벌법에 확대 적용하는 게 5인이상 50인미만 사업장인데 2022년 기준으로 50인미만 소상공인 자영업자 중 86%가 5인 미만으로, 적용대상이 아니다"면서 "실제 적용대상은 50인미만의 14%뿐"이라고 했다. "식당, 빵집에 다 적용된다는 듯 발표하는 것에 유감"이라며 "대통령께서는 사람이 죽어가는 데 그리 돈이 중요한가. 그 비정함으로 이태원법에 대해 거부권으로 이어가는 것이냐"고 했다. 그러면서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안을 가져오면 협상하겠다고 했다"며 "하지만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자신들의 일은 하지 않고 유예, 폐지하고. 사람 죽어나가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했다. "정부가 지난 2년간 유예기간동안 일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 그저 무조건 유예만 하자, 저는 그런 정치 하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홍 원내대표는 전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도 2년 유예기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정부의 공식사과, 앞으로 유예될 2년동안의 구체적인 재원지원 등 계획, 2년 유예 이후엔 반드시 실행하겠다는 정부와 경제단체의 확약 등 3가지 조건을 11월 초에 제시했다는 점을 환기시키면서 "산업안전보건청은 추가조건이 아니라 유예기간 2년동안 실시할 계획과 구체적인 대책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산업안전보건청은 유예 여부와 관계없이 반드시 필요한 기관"이라며 "산업현장에서의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과 관리감독"이라고 했다. "이미 영국이나 미국 등 주요 국가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유사한 법 체계가 있는 나라에는 거의 대부분이 산업안전보건청과 같은 유사한 기관을 설립해서 운영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민주당은 정부와 여당의 '공포마케팅'에 강도 높게 대응하고 있다.

'전문 안전관리자 채용부담 등 경영부담이 심각하다'는 주장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은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산업안전법상 의무 위반의 '처벌 수위'만 강화한 법"이라고 했다. 산업안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의무 대부분이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기업 수준의 안전보건체계 구축 등을 요구하지 않고 있고 안전관리자 선임 의무가 없는데다 제조업 등 일부 업종은 안전점검 등의 업무 겸직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의무를 잘 모르거나 적용이 어려워서 혼란이 심각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요구하는 안전점검이나 교육 등은 이미 산업안전법에 의해 적용되어 시행하고 있고 고용노동부 실태조사 결과 중대재해처벌법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답변한 사업장이 6%에 불과하다"고 했다.

'사업주를 범법자로 만들어서 800만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지난 2년간 재판이 진행 중인 사업장을 포함해서 폐업한 사업장은 한 곳도 없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에서 사업주가 구속된 사례도 없다"고 했다. '빵집 사장님, 식당 사장님도 범법자 될 수 있다'는 비판엔 '대체로 가짜뉴스'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사고가 발생했다고 무조건 처벌하는 법이 아니다"고 했다. "2022년 숙박음식점 업종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는 5명에 불과, 전체 사망사고의 0.78% 수준이고, 2023년 9월까지 통계에서는 1명으로 0.22%, 음식점의 경우 대부분이 외주업체의 배달 중 발생한 사고들"이라고도 했다.

홍 원내대표는 "중소기업 쪽 여러 분과 상의해본 결과는 상당 부분 준비가 됐고 유예되면 좋겠지만 유예 안 돼도 우리들은 해나갈 수 있다는 게 현장 얘기"라며 "지나치게 자꾸 유예해야 한다라고 공포 마케팅 하는 것 자체도 사실과 동떨어진, 현장과 동떨어진 여론 조성을 하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마치 중소기업을 챙기는 듯이 말하면서도 협상 의지를 보이지 않고 대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총선을 앞두고 책임을 민주당에 떠넘기려는 속셈으로 읽힌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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