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전공의 대량 고발' 분산 수사로 대비

2024-03-11 13:00:24 게재

일선서·시도청 역할분담 준비 … 전현직 간부 수사도 속도

복귀 명령을 거부하고 있는 전공의에 대한 무더기 고발이 임박한 가운데 경찰도 수사 채비에 나섰다. 경찰은 최대 수천명을 동시에 수사할 것으로 보고 ‘분산 수사’ 지침을 마련했다. 특히 경찰은 대한의사협회(의협) 전현직 간부들을 소환하는 등 고소·고발 사건에 대한 수사를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11일 경찰 등에 따르면 윤희근 경찰청장은 최근 지휘부 화상회의에서 전공의들에 대한 고발과 수사가 곧 이뤄질 수 있다면서 일반 전공의는 일선 경찰서에서, 주동자와 범죄 혐의가 중한 전공의는 각 시도경찰청에서 각각 맡아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윤 청장은 또 “각 시도경찰청과 경찰서에서 수사를 잘 챙기고 법과 절차에 따라 단호하게 대응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회의에는 전국 18개 시도경찰청장과 일선 경찰서장이 모두 참석했다. 경찰은 그동안 정부의 전공의 고발에 따라 최대 수천명을 동시에 수사하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분산 수사 방안을 검토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가 경찰청에 고발장을 내면 경찰청은 전공의가 근무하는 병원 소재지별로 구분해 각 시도청과 일선서에 배당할 계획이다.

경찰 출석 전 입장 표명하는 노환규 전 의협회장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9일 전공의 집단 사직 공모 의혹과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로 출석하기 전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시도청에 수사 방안 마련 지시 = 경찰청은 또 최근 각 시도청에 수사 지연이 없도록 효율적인 수사 방안을 자체적으로 마련하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이에 따라 각 시도청은 광역수사단과 일선 경찰서 지능팀으로 구성된 전담팀을 꾸리거나 지능팀·경제팀이 합동 수사하기로 하는 등 저마다 대책을 강구 중이다.

서울경찰청의 경우 수사과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청은 광역수사단과 일선 경찰서에도 수사 참고자료를 작성해 배포했다.

서울지역 일선 경찰서 담당자는 “지시가 내려온 것은 있다”면서 “상황을 주시하면서 구체적인 대응방안 마련을 위한 회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본청 수사지침은 인권침해를 하지 말고 법리적으로 신중하고, 신속하게 수사해야 한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또한 경찰은 정부와 의료계의 강경 대치가 길어짐에 따라 의료 공백으로 인한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도 대비하고 있다. 이 경우 각 시도청에 신설된 형사기동대가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강력범죄수사대와 경찰서 형사 등으로 구성된 형사기동대는 중요 범죄에 대해 직접 수사할 수 있다.

특히 경찰은 정부나 각 병원측의 고발장이 접수되면 통상적인 고발 사건보다 신속하게 출석 요구와 소환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실제 의협 지도부에 대한 고발 건의 경우 고발 접수 바로 다음 날 사건을 서울청 공공범죄수사대로 배당한 데 이어 연휴를 끼고도 이틀 만에 압수수색과 피고발인 출석 요구를 동시에 진행했다.

◆의협 간부 등 수사 속도 = 전공의 수사가 아직 본격화하지 않았음에도 의정 갈등은 이미 고소·고발전으로 번졌다. 현재 집단행동과 관련해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은 파악된 것만 총 5건이다.

보건복지부는 전공의 집단사직을 교사한 혐의로 의협 지도부를 고발했다. 경찰은 복지부가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발한 의협 전현직 간부 5명에 대한 수사 속도를 높이고 있다.

서울청 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 9일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을 불러 11시간 이상 조사했다. 경찰은 노 전 회장을 상대로 전공의들의 이탈을 주문하거나 지지했는지 여부를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회장은 조사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전공의들이 사직하고 병원을 비운 이유는 정부의 잘못된 의료정책 때문”이라며 “나를 비롯한 몇몇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매우 치졸한 공작”이라고 말했다.

복지부가 고발한 5명 중 경찰 조사를 받은 것은 노 전 회장이 두 번째다. 경찰은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 박명하 의협 비대위 조직강화위원장,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 등 나머지 3명에 대해서는 12일 소환할 예정이다.

또 현직 의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의료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병원 자료 삭제를 종용한 글을 올린 사건과 의협이 사무실에서 대량의 보안문서를 폐기 처분해 증거인멸 의혹이 있다며 시민단체가 고발한 건도 서울경찰청에서 수사 중이다.

◆전공의 블랙리스트도 수사 = 또한 의사 집회에 제약회사 직원이 동원됐다는 온라인 글이 허위라며 의협이 작성자를 고소한 건, 병원에 남은 전공의 명단이 의료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된 것과 관련해 시민단체가 커뮤니티 운영업체 등을 고발한 건은 서울청에서 맡고 있다.

의협이 전공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도록 지시했다는 온라인 게시글에 대해서도 의협이 고소를 예고하고 있다.

경찰은 집단행동과 관련해 의료계의 각종 불법행위를 파악하고자 첩보 활동도 강화했다. 온라인 게시글에 대한 모니터링을 확대하고 관련 업종 종사자 등을 폭넓게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복귀 전공의 색출 시도는 구체적인 행위에 따라 강요, 협박, 실명 공개 시 명예훼손 등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면서 “온라인 게시글의 경우 진위를 확인해 수사 진행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세풍·오승완·박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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