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북한이 남북관계 단절을 추구한 진짜 이유

2024-03-12 13:00:13 게재

북한이 남북관계 단절을 겨냥한 일련의 조치를 취했다. 그 이유와 관련해 3가지 관점이 제기되었다. 첫째, 남북관계 지속이 북한체제를 내부적으로 붕괴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남북관계 단절을 통해 남한을 정복할 명분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셋째, 국제사회로부터 북한체제를 한국과 무관한 체제로 인정받음으로써 체제를 보존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이러한 관점은 한반도 현상유지 또는 변경과 관련이 있다. 4강의 이익이 교차하는 지구상 유일 지역이란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특성으로 인해 어느 주변국도 한반도 현상변경을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입장이란 측면에서 보면 이들 관점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듯하다.

북한이 남북관계 단절을 표방한 것은 관계 유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없는 반면 손해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게다.

한반도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라는 4강의 이익이 교차하는 지구상 유일한 지역이다. 한반도가 분단된 것도, 남북통일이 쉽지 않은 것도, 북한이 핵무장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특성 때문이었다.

오늘날 한반도 비핵화를 진정 원하는 국가는 한국뿐일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되는 경우 남북통일 가능성이 있는데 통일한국의 전략적 선택이 강대국 패권경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경우 미중경쟁에서 미국이 상당히 불리해지는 반면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하는 경우 중국이 상당히 불리해질 것이다.

남북관계 지속 허용치 않는 한반도 안보역학

미국과 같은 주변국 입장에서 보면 북한이 한국과 일본을 타격할 수 있을 정도의 핵무기와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 미 본토 타격이 가능한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지 못하는 현재 상태가 최적일 것이다.

냉전 종식 이후 남북교류가 가능했던 것은 미국이 이 같은 교류를 염원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은 한국의 대북 경제지원을 염원했다. 이는 북한체제 붕괴 저지 목적이었을 것이다. 반대로 오늘날 미국은 남북교류를 적극 저지해야 하는 입장일 것이다. 남북교류 지속으로 북한경제가 발전하는 경우 미 본토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탄 개발이 용이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핵무장의 감춰진 진실’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필자가 입증해보인 바처럼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이 추구한 목표는 3가지였다. 첫째, 북한이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탄을 개발하지 못하게 한다. 둘째, 북한이 한국과 일본을 타격할 수 있을 정도의 핵무기와 미사일을 지속 유지하게 한다. 셋째, 북한이 더 이상 대화 요구에 응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들 3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책은 첫째, 북미 간에 스몰딜이 가능한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그리고 참석하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벌어질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김정은이 하노이정상회담에 참석하게 만든다.

둘째, 정상회담 시작 직전에 김정은이 대륙간탄도탄을 더 이상 시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게 한다. 셋째, 트럼프 미 대통령이 완벽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김정은에게 제안한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정확히 이처럼 했다. 당시의 정상회담을 보며 북한은 더 이상 북미 또는 남북대화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그 후 얼마 동안 북한은 대화에 여운을 남겼다. 이는 대화와 교류를 통한 북한경제 회생이 너무나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의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입은 엄청난 체면손상을 서서히 줄이기 위한 노력이었을 것이다.

남북 및 북미대화 원천 차단 노려

김정은이 남북단절을 선언한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이처럼 선언하지 않으면 향후에도 한국 또는 미국이 대화를 제안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고 이 같은 대화에 응하는 경우 하노이정상회담에서 보았듯이 얻는 것은 전혀 없는 반면 김정은의 체면만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대화에 응하지 않는 경우에도 체면이 손상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게다. 남북 및 북미대화 원천 차단을 위해 북한이 남북관계 단절을 선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권영근 국방개혁연구소 소장

한국국방연구원 전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