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은행들, 바젤Ⅲ 반발…국제사회 주시

2024-03-25 13:00:00 게재

SVB 등 파산에 규제 강화돼 … FT “은행들, 유럽보다 강력한 자본규정에 경쟁력 상실 주장”

은행자본 건전화 개혁방안인 ‘바젤Ⅲ’ 최종안을 놓고 미 규제당국과 월가 은행들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미 당국과 월가의 샅바싸움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국제적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 7월 공개된 바젤 최종안에 따르면 자산 1000억달러 이상 은행들은 자기자본을 평균 16% 늘려야 한다. 연방준비제도(연준)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통화감독청(OCC) 등 3대 금융규제당국이 주도한 이 개혁안은 내년 7월 시행 예정이다.

지난 20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월가 은행들은 ‘국제적 추세보다 더 가혹한 조치를 일방적으로 적용하면 미국 은행업계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며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기존자본 대비 3%, 유럽연합(EU) 9.9%(이행기간엔 5.6%)인 데 반해 미국은 평균적으로 16%를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형은행들이 격앙된 상태다. JP모간체이스 최고경영자 제이미 다이먼은 “미국 은행들이 투자를 못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은행업계 로비단체들은 당국을 상대로 한 소송까지 거론하고 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연준 감독부서를 이끌었던 랜달 퀄스 전 이사는 “대형은행들의 개혁 저항은 전례 없는 일”이라며 “당국을 화나게 할 우려가 있는 소송은 하지 않는다는 게 업계 관행이었다. 하지만 이제 은행들은 ‘이보다 더 나빠질 순 없다’며 저항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더 엄격한 규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중소기업들에 대한 여신이 급감할 것이라는 은행업계의 주장은 과장된 엄살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미국 은행들이 체력이 강력하게 회복했고 유럽 은행들보다 수익성이 높아 바젤III 최종안의 충격을 쉽게 흡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유럽은 한자릿수, 미국은 두자릿수 늘려야

자기자본비율 등 은행감독과 관련한 국제표준을 제정해 각국에 권고하는 바젤은행감독위원회는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 2010년 ‘바젤Ⅲ’ 개혁안을 확정했다. 하지만 이 역시 잠재적 허점을 갖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2017년 ‘바젤Ⅲ 최종안(Basel Endgame)’이라는 별칭의 개혁안을 내놓았다.

이 최종안의 핵심은 ‘위험가중자산(RWA)’ 재검토다. 자기자본비율 산출시 분모에 해당하는 자산을 자산계정의 단순합이 아니라 은행의 실질적인 리스크를 반영해 다시 계산한 게 RWA다. RWA가 낮을수록 은행이 손실에 더 잘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4년부터 시행된 일련의 규칙에 따라 은행들은 감독기관이 정한 표준 위험측정기준이 아닌 자체모델을 사용해 RWA를 계산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은행마다 계산방식에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젤위원회는 “광범위한 이해관계자들은 은행이 제각기 보고하는 위험가중자본비율을 신뢰하지 않았다”며 “자체모델 사용을 크게 제한하는 개정안이 RWA의 신뢰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당초 미국 규제당국도 해외 규제당국들과 비슷한 입장이었다. 2021년 말 퀄스가 연준 이사에서 퇴임할 무렵 미국 규제당국이 은행 자본비율을 ‘한자릿수 중반대’ 비율로 늘릴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이는 유럽 등 다른 관할권과 일치하는 수치였다.

하지만 규제완화를 지향했던 트럼프행정부가 물러서고 더 엄격한 정책을 원하는 바이든행정부가 들어섰다. 게다가 지난해 초 실리콘밸리은행(SVB) 등 미국 지역은행들이 잇달아 무너지는 등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심각한 금융 스트레스 상황이 발생했다. 유럽 크레디트스위스 파산은 대형은행들도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일깨웠다.

따라서 2023년 7월 발표된 세부안은 이전 예상과는 크게 달라졌다. 미국 규제당국은 은행시스템 전반의 자본요건을 한자릿수가 아닌 두자릿수 중반대(16%)로 대폭 높였다. 지난해 초 지역은행들의 위기를 반영해 자산 1000억~2500억달러 규모 은행도 바젤Ⅲ 최종안의 대상이 됐다. 대상 은행은 약 40개로 늘어났다.

JP모간은 자본을 현행보다 25% 더 쌓아야 한다고 밝혔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40%를 더 쌓아야 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개혁안은 월가 전체에 충격을 불러일으켰고 곧바로 격한 분노로 이어졌다.

은행들은 이미 재정적으로 튼튼해졌기 때문에 그같은 개혁안이 필요치 않다고 주장한다. 미국 8대 은행들이 정치권 로비를 위해 만든 ‘금융서비스포럼(FSF)’에 따르면, 2009년 2970억달러에 불과했던 8대 은행 자본금은 2023년 말 기준 9400억달러로 증가했다.

FSF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션 캠벨은 “이들 은행은 지난 15년 동안 규제 측면에서 절대적으로 강화됐다”고 말했다. 연준 감독·규제 부서에서 부국장으로 일했던 캠벨은 “자본을 30% 추가로 늘리면 안전성과 건전성은 거의 증가하지 않지만 비용은 그에 비례해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위험가중자산 증가는 특히 9대 은행들에서 두드러진다. 이 가운데 1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FSF 회원은행이다. 바젤 최종안에 따르면 9대 은행 RWA는 현재 대비 24% 늘어난다. 반면 소규모 은행들의 경우 9% 증가에 그친다.

은행들은 위험가중자산에 대한 자본 요건이 강화되면 해외 은행들과의 경쟁에서 불리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가계와 기업 등에 대한 대출이 급감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전미중소기업협회 토드 맥크래켄 회장은 “회원사들은 새로운 규정에 따라 많은 은행들이 인수합병되면,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시장경쟁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전 통화감독국장으로 현재 은행컨설팅기업 ‘루드비히 어드바이저스’의 최고경영자인 진 루드비히는 “도드-프랭크법이 제정될 때만큼 변화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며 “10년이 넘는 개선과 건전한 운영 끝에 은행의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반면 독립지역은행협회는 개혁안에 대한 의견서에서 “바젤 개혁안을 지지한다”며 “자본 산정방식에 어느 정도 통일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 통화감독청장 마이클 슈는 ‘대출비용이 올라 대출이 줄어들 것’이라는 은행들의 주장에 대해 “수십억달러 수익을 배당금 지급과 자사주매입에 쓰기보다 대출에 할당하면 된다”고 말했다.

월가 “이미 튼튼 … 개혁안 필요없어”

당국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5개 대형은행의 자본을 새로운 자본요건과 비교했을 경우 0.16~1.05% 부족하다. 하지만 미국 대형 은행 지주회사들은 2015~2022년 평균적으로 자본의 1.80%에 해당하는 이익을 냈다. 이는 대형은행들이 새로운 자본 부족분을 충당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임을 시사한다.

금융규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 은행들의 대출업무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결과다. 바젤위원회 사무국장을 지낸 빌 코언은 “은행업계 전반에서 시장리스크를 상당히 과소계상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 ‘알지브리스’에서 주식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마크 콘래드는 “바젤 최종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이론적으로는 미국 은행업계의 경쟁력 상실이 우려되지만 실제로는 회의적이다. 미국에서 적극적으로 점유율을 확보하려는 유럽 은행들은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대형 은행들 및 기타 이해당사자들은 486명의 연방 로비스트를 고용해 바젤 개혁안 내용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업계가 벌인 가장 큰 규모의 로비활동이다.

연준은 은행들이 바젤 최종안으로 받게 될 불리한 영향에 대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경우 타협할 의향이 있음을 시사했다. 연준 제롬 파월 의장은 이달 초 이 개혁안이 은행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인정하면서 “광범위하고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종안을 다시 만드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았다.

바젤Ⅲ 최종안은 2022년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연기됐다. 영국과 EU는 내년 1월, 미국은 내년 7월 시행할 방침이다.

국제 금융규제 당국들도 미국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 금융당국 한 고위관계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중심지인 미국의 상황에 모든 사람이 주목하고 있다”며 “은행들의 반발이 너무 감정적이어서 개혁안 시행의 전체 과정을 위협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