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는커녕 정치 실종” 대통령실 격앙
특검법 처리에 “이런 식이면 대화 이유 없어”
“취임 2년 기자회견, 취임일은 넘기지 않을 것”
대통령실이 야당의 ‘채 상병 특검법’ 국회 본회의처리에 격앙된 기색이다. 윤석열 대통령으로서는 직접 회담을 제안하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무대’까지 마련해주며 협치 분위기를 띄웠는데 찬물을 끼얹은 격이기 때문이다. 거부권 행사는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총선 후 더욱 악화된 여소야대 지형을 의식한 듯 협치의 끈을 놓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3일 통화에서 “성의를 다해서 회담을 준비하고 야당 대표에게 장을 열어줬는데 매우 유감”이라며 “협치는커녕 정치 실종”이라고 비판했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거대야당이 계속 이런 식으로 국정운영을 한다면 우리가 국회와 대화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며 “(국회를) 잘 지켜보겠다”고 했다.
앞서 전날 정진석 비서실장은 대통령실 브리핑을 통해 “협치 첫 장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민주당이 입법 폭주를 강행한 것은 여야가 힘을 합쳐 민생을 챙기라는 총선 민의와 국민들의 준엄한 명령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며 “향후 엄중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홍철호 정무수석도 3일 오전 MBC라디오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입법 폭거”라는 표현을 쓰며 “대통령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홍 수석은 채 상병 특검법에 앞서 합의처리된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사법절차를 종료한 사안이니까 대통령이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 정부가 받아들이겠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채 상병 건은 경찰과 공수처가 수사 중인 사건”이라며 “(대통령은) 이걸(채 상병 특검법을) 받아들이면 나쁜 선례를 남기는 거고 더 나아가서 직무유기가 될 수 있다, 이렇게까지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사법절차 후에도 이태원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데 대해서는 “여야 합의가 안 됐다”는 이유를 댔다.
홍 수석은 또 문재인정부 시절인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권이 없어졌다며 “그래서 경찰이 (수사)하도록 하자고 해놓은 법 취지를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 (전 해병대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이라고 말했다.
유족과 해병대원들의 눈물이 있는 사건이니 특검법을 수용할 수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그래서 공수처에서 지금 수사를 하고 있다”며 “민주당에서 검찰을 못 믿겠다 해서 공수처를 만든 게 아니냐”고 반박했다. 그는 “법을 초월해서 여야 합의도 없는 부분에 대해서, 사법 절차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 덜커덕 받아들일 순 없다”며 “가슴이 따뜻하고 안 따뜻하고의 이 문제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에 통과된 특검법에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10번째라는 지적에는 “21대 국회가 여소야대다 보니까 민주당에서 다소 정치 쟁점화할 수 있는 것들을 거부권 행사를 할 수밖에 없게끔 그렇게 밀어붙인 것도 분명히 있다고 본다”며 “건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고 했다.
채 상병 사건 처리 당시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이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통화한 사실이 논란을 빚고 있는 데 대해서는 “어떤 팩트(사실)을 잡아서 논란을 만들 수 있다”며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야당과의 소통을 완전히 닫지는 않겠을 것이라는 입장도 표했다.
홍 수석은 영수회담도 앞으로 기약하기 힘들어진 것이냐는 질문에는 “묵묵하게 기존대로 소통하고 신뢰 구축하고 협치하자(는 입장), 그것을 지금 아직까지는 견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송 무더기 징계 논란과 관련해서는 “무더기 징계든 또 과잉적인 그런 어떤 추가 조치든 왜냐하면 이게 결국은 다 대통령께 좋지 않은, 국민들께 보이는 현상”이라며 “(대통령도) 국민정서가 있는데 뭐 무슨 나에 대한 위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직접적인, 너무 업무만 가지고 보지 말아라,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겠느냐”고 봤다.
한편 윤 대통령의 취임 2년 기자회견이 임박함에 따라 ‘불편한’ 현안들에 대해 대통령이 어떤 입장을 낼지 관심이 모인다. 홍 수석은 “(기자회견이) 취임일은 안 넘길 걸로 (안다)”며 “그렇게 지금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