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바꾸라는데 ‘감세·긴축’ 정책기조 변화 안보인다

2024-05-20 13:00:02 게재

정부, 재정전략회의서 2025년도 예산편성 방향 논의

R&D·저출산대응 예산 늘린다면서 세수확보 대책 없어

“경제정책 기조 싹 바꿔라” 4.10 총선 민의 역행 논란

정부가 내년(2025년) 예산편성시 연구개발(R&D), 저출생대응, 의료개혁 관련 투자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특히 논란이 됐던 R&D 사업에 대해서는 예비타당성 조사제도 전면 폐지까지 약속했다. 다만 기존의 건전(긴축)재정 기조는 유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4.10 총선에서 논란이 됐던 부자감세 기조와 관련해서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기존 감세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진다. 저출산 등 예산 확대에도 불구하고 재원마련을 어떻게 할 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대안이 없었다. 작년처럼 지출구조조정을 통해 재정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를 고려하면, 결국 기존 복지예산에 손을 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부자감세 철회 등 경제정책 기조 전환을 촉구한 4.10 총선 민의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4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제공

◆말잔치로 끝난 재정전략회의 = 20일 여당·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지난 17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R&D 외에도 △저출생 극복 △어려운 학생 및 취약계층 지원 △의료 5대 개혁 등에 대한 투자를 강조했다. 국가재정전략회의는 예산편성을 앞두고 재정운용 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최고 회의체다.

올해 재정전략회의에는 어느 때보다 R&D예산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정부는 올해 R&D 예산을 26조5000억원으로 책정, 전년(31조1000억원) 대비 14.8% 감축했다. 정부는 나눠먹기식 예산을 감축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과학기술계와 사전소통이 부족했던 데다 미래 성장동력까지 훼손한다는 비판이 거셌다.

결국 총선을 앞두고 정부는 ‘역대 최대 수준의 R&D 예산 책정’을 예고했고 재정전략회의에서도 이같은 방향성을 거론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R&D 예타 전면폐지”까지 언급했다. 예타란 총 사업비 500억원(국고지원 300억원 이상) 이상이 투입되는 사업의 정책적·경제적 타당성을 사전에 검증·평가하는 제도다. 정부는 건설공사를 제외한 R&D 분야의 예타를 면제하는 방향으로 국가재정법 개정을 추진할 전망이다.

◆취약계층 지원 강화 = 취약계층에 대한 예산확대도 약속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앞서 대통령 주재 민생토론회에서 약속했던 어려운 학생을 위한 장학금 확충 및 취약계층의 기초연금, 생활급여 확대 등에 재정투입을 강화키로 했다. 저출생 극복을 위한 예산은 재정투입을 강화하는 동시에 효율성 제고를 위한 재검토도 병행한다. 더불어 △전공의 수련 국가 책임제 △지역 의료 발전 기금 신설 △필수 의료 재정지원 확대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을 위한 보상 재원 확충 △필수 의료 R&D 등 5대 의료개혁 예산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차질없는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적극적 예산투입을 강조했다.

정부는 주요 국정과제에 대한 재정투입을 강조하면서도 건전재정 기조는 유지할 것도 확인했다. 주요 국정과제에 대한 재정 신규투입에 복지·이자 등과 같이 줄일 수 없는 의무지출 증가분을 고려하면 기존 부처별 사업예산을 줄여야 건전재정 기조를 지킬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존 복지예산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가 발표한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내년도 의무지출 예상액은 373조3000억원으로 올해(347조4000억원) 대비 무려 25조9000억원(7.5%)이 증가한다. 올해 전체 예산(총지출·656조6000억원)이 전년 대비 약 18조원 증가에 그쳤던 점을 고려하면 지난해보다 강화된 긴축운용이 필요한 셈이다. 올해는 의무지출 예산이 지난해(340조3000억원) 대비 약 7조원만 증가, 그나마 의무지출 확대에 대한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감세정책기조로 국민 설득할까 = 하지만 정부가 경제정책 기조를 크게 바꾸지 않고서는 정책에 대한 국민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압도적 과반을 차지한 야당을 설득하기도 어렵다.

실제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61%가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현 정부의 조세정책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는 국민들은 62%에 이르렀다. 국민 3명 중 2명은 ‘정부의 세금정책이 불공정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공평과세를 하고 있다는 응답은 불과 19% 였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지난달 28~30일 사흘간 국내 만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다.

정부가 올해 추진하는 대표적 경제정책에도 부정응답이 2배 가까이 많았다.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대해서는 55%가 부정적이었다. 금투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31%에 머물렀다. 종부세 완화에 대해서도 부정응답이 55%로 과반을 넘었고 긍정응답은 29%에 그쳤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총선 뒤에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 변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단기적인 임시방편적 정책대응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경제구조 개혁 과제를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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