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재판지연과 기술탈취 피해자들의 고통

2024-09-10 13:00:01 게재

변호사가 직접 대법원에 갈 일은 드물지만 얼마 전 의뢰인과 판결선고를 청취하러 갔다. 이 의뢰인은 2017년 초 피고인들을 프로그램 저작권 침해 혐의로 고소했고 대법원 판결까지 무려 7년을 기다렸다. 이 사건 제1심에서는 피고인들을 유죄로 판단하였지만 제2심은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은 결국 피고인들의 무죄를 확정했다.

의뢰인은 민사소송에서 승소했음에도 7년을 기다린 형사소송에서 피고인들이 무죄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 허탈해 했다. 또 다른 특허침해 손해배상소송의 경우 소장 제출부터 제1심 선고까지 4년이 걸렸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한국 법원의 재판지연은 고질적인 문제로 알려져 있다. 특히 기술탈취 관련 소송에서 재판지연은 매우 심각하다. 소 제기 시점에서 높게 평가된 기술의 가치가 판결이 선고될 무렵에는 크게 하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소송 결과에 기술가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손해배상액이 대폭 줄어들거나 가해자에 대한 형벌이 지나치게 가벼워질 수 있다. 중소기업이 기술탈취를 당한 경우 소송이 장기화되면서 발생하는 비용과 '분쟁 중인 기술'이라는 오명으로 인해 사업이 어려워진다. 피해 기업이 결국 폐업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전문지식과 경험 풍부한 인력보충 시급

재판지연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기술소송에 대한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인력 부족이다. 법원은 지식재산 전담 재판부나 법원을 두고 있기는 하나 사건수와 난이도에 비해 인력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기술 관련 소송 경험이 없는 법관은 사건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술개발에 들인 시간이나 비용·노력을 충분히 판결에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법원만의 문제만이 아니다. 검찰과 경찰 단계에서도 기술 관련 사건을 다룰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을 갖춘 인력이 부족하다.

재판이 지연되는 두번째 원인은 가해자들의 의도적인 지연 전략이다. 민사와 형사소송이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 어느 한쪽 소송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요청하거나 법원 결정과 명령에 반복적으로 불복하는 방식으로 재판을 지연시키려는 것이다.

가해자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술가치가 하락해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한다. 또 재판이 길어질수록 가해자들은 탈취한 기술을 계속 사용할 수 있고 관련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벌 수 있어 의도적으로 재판을 지연시키려고 한다.

재판지연을 막기 위해서는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인력의 보충이 가장 시급하다. 특히 재판에서 주로 다퉈지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기술 내용과 가치 등에 대한 판단만 빨라져도 재판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만약 인력보충이 어렵다면 기술에 관한 판단을 중립성을 갖춘 외부 전문기관에 위임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더불어 재판 진행 전 사전절차로 사전 증거보전 및 보호명령 제도를 도입한다면 재판 진행시간을 미리 줄일 수 있다.

이 외에도 법원에서는 재판 기일을 조속히 확정하고 집중심리제도를 도입하는 등 재판을 보다 빠르게 진행하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기술탈취 피해자 고통 덜도록 제도개선을

결국 기술탈취 소송이 길어질수록 피해자 고통은 커지는데 가해자들에게는 오히려 유리한 상황이 벌어진다. 기술탈취 피해자들이 더 이상 장기간 소송으로 고통받지 않고 공정한 재판절차를 통해 신속히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도록 개선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이경화 재단법인 경청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