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이란팀 홀대와 미국 내 이란이민자

2026-07-10 13:00:02 게재

‘테헤란젤레스’ LA경기 이점 못살려 … 이민자들, ‘미국의 적’ 편견에 정체성 은폐

소수 언어를 배우는 일은 고단하다. 그래도 언어의 끈을 놓지 않는 까닭은 세상에는 이면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란 거주 5년의 흔적은 몇 마디 말로 남았다. 이미 이란 생활도 만으로 8년이 되어간다. 그사이 미국 서부에서 거주한 기간도 3년이 들어있다. 누군가는 그만큼 현지어를 구사하느냐고 묻는다. 필자는 모국어인 한국어와 제1외국어인 영어와 제2외국어인 페르시아어 사이에서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다.

얼마 전 한해에 한번밖에 없는 한국외대 특수외국어능력평가에 응시했다. 물론 페르시아어였다. 때를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일찌감치 접수를 했지만 막상 시험날이 다가오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오랜 시간 테헤란에 거주한 탓에 상대적으로 말하기는 자신 있었다. 하지만 평가 영역은 듣기와 읽기다. 듣기 50문제와 읽기 50문제를 120분간 쉬지 않고 풀어야 한다. 영어로 치면 토익(TOEIC) 시험과 유사하다.

고군분투한 보람은 있었다. 성적표를 받아보니 시험 결과는 받을 수 있는 최고 바로 아래 등급이었다. 검정기준표가 제시한 필자의 보유 능력은 다음과 같다. “경험과 사건, 꿈과 희망, 목적을 기술할 수 있으며 견해와 계획에 대해 짧게 근거를 제시하거나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그저 점수만 따려고 한 것은 아니기에 근래에 미디어에서 접한 페르시아어 인터뷰와 이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제시해 보려 한다. 물론 페르시아어와 영어, 한국어가 혼재된 설명이 될 것이다.

세 경기 중 두 경기 치르면서도 바로 이동

“이란 셔야드 마즐룸타린 팀에 터리케 저메자하니 버셰(이란은 아마도 월드컵 역사상 가장 부당한 취급을 받는 팀일 것입니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 이란 국가대표팀 감독 아미르 갈레노에이가 1차전이 끝나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많은 우리 언론은 이를 “이란은 가장 억압받는 팀”이라고 헤드라인을 뽑아 기사화했다.

영어권 미디어가 먼저 ‘억압받다(oppressed)’라는 단어를 써서 번역했고 이를 다시 우리말로 번역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페르시아어로 ‘마즐룸(mazloum)’은 ‘억압받는’이라는 뜻도 있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는’이라는 의미도 있다. 여기서는 맥락상 후자에 가깝다. 이란은 매 경기 48시간 전부터 미국 입국이 허용되었고 경기가 끝난 당일 미국을 떠나 멕시코로 날아가야만 했다.

이란 대표팀은 월드컵 조별리그 세 경기 중 두 경기를 로스앤젤레스(LA)에서 치렀다. 만약 이란이 경기가 끝난 후 LA에 남았다면 회복은 훨씬 쉬웠을 것이다. 선수들은 마치 고향에 온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이란 외 지역에서 세계 최대 규모 이란인 커뮤니티가 형성된 곳이 바로 미국 LA이기 때문이다.

UCLA 캠퍼스 남쪽 윌셔(Wilshire)와 피코(Pico) 사이의 웨스트우드 대로 구간은 이란인들 사이에서 1980년대부터 ‘테헤란젤레스(Tehrangeles)’로 불리고 있다. 이란 디아스포라를 연구하는 오클라호마 주립대의 ‘에이미 말렉’은 2022년 10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LA의 이란 커뮤니티는 독보적이어서 LA에서는 페르시아어만 쓰면서 모든 일상적 필요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10년 주기로 실시되는 미국 인구조사(census)에 따르면 미국 내 이란인 커뮤니티가 본격적으로 성장한 시기는 1979년 이란 혁명기 전후다. 미국 내 이란인 인구는 1980년 12만명에서 1990년 28만명, 2000년 34만명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다. 공식 추정치로는 현재 이란계 미국인 인구를 50만명으로 잡지만 실제로는 두배가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2017년 미국 지역사회조사(American Community Survey) 데이터를 보면 페르시아어는 미국에서 20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로 50개 주 전역에서 쓰인다.

미국 내 페르시아어 화자의 73.2%는 이란계 혈통이다. 미국 전체 페르시아어 화자의 절반 이상이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으며, 이중 55%가 광역 로스앤젤레스(GLA)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페르시아어는 8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다.

캘리포니아, 특히 LA가 왜 이토록 이란인들의 이민 중심지가 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UCLA 사회학 교수 케반 해리스(Kevan Harris)는 테헤란과 비슷한 기후, 풍경, 교통체증 정도를 이유로 든다. 첫 이민자들은 1960년대 학생 신분으로 LA에 도착해 1970년대에 자리를 잡았다. 가장 큰 이민 물결은 이란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 1979년에 찾아왔다.

고등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날아온 유학생이든, 1979년 이후 건너온 전문직이나 난민이든, 20세기 중후반 미국에 도착한 이란인들은 양질의 교육기회,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분야 취업 기회, 테헤란과 비슷한 기후에 이끌려 LA를 찾았다. 이후에도 가족과 합류하기 위해,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을 피해 보다 많은 이들이 LA로 건너왔다.

물질주의적이며 과격하다는 편견들

현재 LA의 이란 커뮤니티, ‘테헤란젤레스’는 전세계 이란 디아스포라에서 가장 큰 공동체다. LA는 어떤 곳일까. 미디어에서 이곳은 종종 물질주의적이며 깊이가 얕다는 비판을 받는다. 많은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LA는 주로 표면적인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위적 성형수술, 과장된 할리우드 미학, 언덕 위 저택, 뉴에이지(New Age), 영적 트렌드가 LA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다. LA의 이란인들 역시 이러한 과시성을 드러내는 데 일조하고 있다.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시즌을 거듭한 미국 브라보 TV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샤즈 오브 선셋(Shahs of Sunset)’이 이를 잘 보여준다. 여기서 최초로 이란계 미국인들이 리얼리티쇼의 주체가 되었다. 유명 TV 프로듀서 ‘라이언 시크레스트’가 제작한 이 프로그램은 부유하지만 천박한 이미지로 LA의 이란계 미국인들을 묘사한다.

고정관념을 자본화하기 위한 제작사의 의도는 출연진 오디션 때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쌓아 과시하려는 열망이 강한 이란계 미국인을 찾아내 캐스팅했다. 출연자들에게 성공한 인생은 “구찌, 돌체앤가바나, 벤츠, BMW를 얼마나 가졌냐”로 묘사된다. 프로그램에서 LA의 이란인들이 보여주는 과시성은 불편하지만 그만큼 LA 규범에 성공적으로 동화되었다는 징표로도 읽을 수 있다.

LA의 이란인들은 물질주의적이며 얕고 과시적이라는 고정관념에 시달리는 동시에 미국 뉴스미디어에서는 종교적 극단주의자, 테러리스트, ‘악의 축’이라는 단일체로 재현된다. LA의 이란 이민자들과 자녀들에게 “이란은 영원한 미국의 적”이라는 편견은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이란인으로서 자존감은 훼손됐고 미국인으로서 소속감은 약화됐다. 차별과 괴롭힘, 종종 물리적 폭력까지 나타났다.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응하기 위해 LA의 이란인들은 영어식으로 이름을 바꾸거나 다른 민족처럼 보이도록 꾸미면서 정체성을 은폐했다.

이란 대신 페르시아 정체성 내세워

LA 이란인들이 택한 또 하나의 전략은 자신들을 부르는 호칭이었다. 말렉은 “이란인들은 이란인 대신 페르시아인으로 칭했는데, 페르시아의 이미지는 고양이와 양탄자인 반면 이란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생각은 모두 부정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연구 대상인 한 이란인 이민 2세는 “페르시아인이라고 하면 교양 있거나 상류층처럼 들리지만 이란인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제가 우라늄을 농축하고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이란에서 5년 거주한 필자 역시 호칭을 활용해 사람들의 편견에 응하고 있다. 무슨 언어를 말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한국어 영어 파르시(Farsi)라고 답한다. 파르시가 뭐냐고 물으면 페르시아어(Persian)라고 답한다. 페르시아어가 뭐냐고 다시 물으면 그제야 이란말이라고 답한다.

이란은 아랍어를 쓰지 않냐고 물으면 이렇게 설명한다. “이란의 페르시아어가 아랍문자를 차용하기는 했으나 문법 표현 발음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이다. 또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페르시아어는 인도유럽어족의 인도이란어파이고 아랍어는 아프리카아시아어족의 셈어파”라고 덧붙인다.

이란 근무하면서 알게 된 현지의 이면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이란은 종교적으로 이슬람 국가이며 지리적으로 중동에 속하지만 민족적·언어적으로 아랍이 아니다.’

미국 전체 페르시아어 화자의 절반 이상이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으며, 캘리포니아에서 페르시아어는 8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다. 샌프란시스코를 도보 순례하던 2022년 1월, 페르시아 거리(Persia Ave.) 새벽 풍경을 찍었다. 촬영 김욱진
김욱진 ‘AI와 실리콘밸리의 반문화’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