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미래대응기금이 향해야 하는 곳, 청년의 첫 일자리
지난 5일 당·정·청은 반도체 호황으로 발생하는 추가 세수 전액을 적립하는 ‘미래대응기금’ 신설에 합의했다. 내년까지 1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이 기금은 특별법 제정을 거쳐 반도체, 인공지능(AI)데이터센터, 피지컬AI 등 3대 메가프로젝트와 양극화 대응, 균형발전, 그리고 2030 청년을 위한 주거·창업·일자리 지원에 쓰일 것이라고 한다.
용처에 청년정책이 포함된 것은 구색 맞추기가 아니라 필연이다. 정부는 이미 AI 기반 산업전환에 국가와 기업의 역량을 쏟아붓겠다고 공표했다. 그런데 바로 그 전환이 청년의 첫 일자리를 지우고 있다는 경험적 증거가 국내외에서 쌓이고 있다. 반도체가 벌어들인 세수의 원천인 AI 전환이 정작 그 시대를 살아갈 세대의 출발선을 지우고 있다면 그 과실로 조성한 기금이 가장 먼저 향해야 할 곳은 자명하다.
총고용 멀쩡한데 진입로 무너져
AI발 산업전환이 청년 일자리를 줄이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세계경제포럼(WEF) 올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신입 채용공고가 최근 18개월간 35% 감소했고, 최고경영자의 40%가 1~2년 내 주니어 직책 축소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스탠퍼드 디지털경제연구소가 미국 최대 급여관리업체 ADP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에서 22~25세 고용은 2022년 이후 최대 16% 감소했다.
유럽도 다르지 않다. 영국 채용정보업체 애드주나(Adzuna)에 따르면 챗GPT가 출시된 2022년 11월 이후 영국의 신입 채용공고는 32% 급감했는데, 기술 등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의 감소폭(38%)이 낮은 업종(21%)의 두 배 가까이 됐다. AI의 영향이 큰 곳일수록 신입 일자리가 더 빨리 사라진다는 것이다.
영국상공회의소는 AI 자동화가 신입의 정형화된 업무부터 대체하면서 이 흐름을 심화시킬 수 있다며 올해 자국 청년실업률이 17%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고, 경제협력개발회의(OECD) 역시 신입 일자리가 자동화에 가장 취약하며 청년 대졸자의 실업 위험이 다른 집단보다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반도체 붐을 누리는 대만조차 전체 실업률이 3.35%로 25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하는 동안 20~24세 실업률은 11%를 넘었다.
주목할 것은 이 충격이 진행되는 방식이다. 미국 댈러스 연준의 올해 분석에 따르면 청년 고용 감소는 해고가 아니라 노동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취업 자체가 줄어드는 데서 비롯된다. 총고용 통계는 멀쩡한데 진입로만 조용히 무너지는, 통계에 잘 잡히지 않아 더 위험한 충격이다.
한국은 이 역설의 최전선에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AI 전문 인력은 2024년 약 5만7000명으로 2010년 대비 2배 넘게 늘었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주요국과 비교할 때 가장 가파른 증가폭이다(BOK 이슈노트 제2025-36호). AI 전환의 인적 기반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확충해 온 나라라는 뜻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또다른 보고서는 동전의 뒷면을 보여준다. 최근 3년간 사라진 청년 일자리 21만1000개 가운데 20만8000개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발생했다. 정보서비스업에서 23.8%, 출판업에서 20.4%, 컴퓨터 프로그래밍·시스템통합 분야에서 11.2%의 청년 일자리가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는 오히려 20만9000개 늘었다. AI가 신입의 정형화된 업무부터 대체하는 사이 기업들은 기존 인력을 유지한 채 신규 채용만 조인 것이다.
한국은행은 이를 ‘연공편향 기술변화’라 이름 붙였다(BOK 이슈노트 제2025-30호). 파이낸셜타임스가 지난 7일 칼럼에서 ‘한국은 AI 경쟁의 승자처럼 보이지만 청년 일자리 감소가 가장 뚜렷한 나라’라며 ‘미국의 추세보다 훨씬 냉혹하다’고 꼬집은 이유다.
불길한 신호는 또 있다. 어렵게 키운 AI 인재가 밖으로 새고 있다. 한국의 AI 기술 임금 프리미엄은 6%로 미국(25%)의 1/4에 불과하고, 미국에서 일하는 한국 AI 인력은 2010년 2100명에서 2024년 6300여명으로 3배가 됐다. 안에서는 첫 일자리가 사라지고 밖으로는 숙련 인재가 빠져나가는 이중의 누수다.
한국은행도 지적하듯이 신입 고용 축소는 기업의 인재 파이프라인을 악화시킨다. 지금 국가적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지 않으면 10년 뒤 한국 노동시장의 인력 파이프라인, 곧 중간 숙련층의 재생산에는 심각한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미래인력 육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필요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대응은 대체로 세 영역으로 나뉜다. 첫째, AI 시대형 교육·재교육이다. 우리나라의 ‘일자리 첫걸음 보장제’와 유사한 정책을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다. 둘째, 첫 일자리 진입의 보장이다. 민간과 공공에서 직접 일자리를 창출해 청년의 일경험과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다.
셋째, 구직·훈련 기간 소득지원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구직 청년에게 월 50만원 지원되던 구직촉진수당을 6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그러나 AI발 산업전환 속도에 비출 때 정책의 속도는 더디고, 효과는 느리다.
정부는 미래대응기금의 일부를 청년 일자리·주거·창업에 쓰겠다고 발표했고, 세부 내용은 8월 말 예산안과 함께 나온다. 그 안에 반드시 담겨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직업훈련 단계에 있거나 일경험 사업에 참여하는 청년들에게 지원되는 소득을 현재보다 상향할 필요가 있다. 학교와 새로운 직업 환경 사이의 미스매치는 개인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 기술 전환이 만든 구조적 문제다. 그렇다면 그 간극을 건너는 동안의 소득을 보장하는 일은 시혜가 아니라 국가의 책무다.
훈련기간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소득을 지급해 청년이 아르바이트와 훈련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가칭 ‘청년 배움 소득제’ 등으로 지원 대상의 폭을 넓히고 지원액을 올려야 첫 일자리 진입 전 청년들이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민간이 창출하는 직업 훈련 및 일경험 사업에 대한 기업들의 폭넓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정부는 지난달 삼성·SK·포스코 등 53개 기업이 직접 교육과정을 설계·운영해 청년을 훈련하는 ‘K-뉴딜 아카데미’를 출범시켰다. 이 사업의 다음 단계는 예산의 확대 이전에 합의의 확대여야 한다.
일부 대기업의 참여로 시작했지만 결국 중견·중소기업까지 지금 청년의 교육훈련에 직접 투자하지 않으면 10년 후 자신들의 인력 파이프라인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는 인식을 산업계 전체가 공유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신입을 뽑아 가르치는 일은 개별 기업에게는 당장의 비용이지만 산업 전체로 보면 미래 숙련인력의 공급망이다. 이런 합의가 서야 정부 지원이 줄어도 기업의 관심과 투자가 끊기지 않고 이어질 수 있다.
셋째, 주거에도 전향적 접근이 필요하다. 청년 주거 지원을 별개 사업으로 흩어놓을 것이 아니라 직업훈련과 일자리, 그리고 일자리 인근의 주거를 하나의 패키지로 연결하는 설계가 요구된다.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 등 메가프로젝트 입지가 대부분 비수도권임을 감안하면, 일자리 곁의 주거를 보장하는 연계는 균형발전이라는 기금의 또 다른 목적과도 맞닿는다.
예산안에 청년 일자리 대책 정교하게 담길
한국은행은 AI발 청년고용 위축이 과도기적 현상일 수 있으며, 기업들도 결국 인재 파이프라인 복원을 위해 채용을 재개할 가능성이 있다는 낙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시장이 스스로 균형을 되찾기를 기다리는 사이 한 세대의 경력 사다리는 통째로 사라질 수 있다.
과도기야말로 국가가 개입해야 할 시간이다. 8월 말 예산안에 담길 미래대응기금의 청년 대책이 그 첫 시험대다. 청년의 첫 일자리라는 가장 시급한 곳에 정교하게 쓰일 수 있는 계획이 담겨야 한다.
더가능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