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트럼프 관세 위협에 적전분열

2025-01-06 13:00:02 게재

‘미국 51번째 주로 편입하라’는 조롱에도 손익 계산만 … 집권 자유당은 내홍 중

1980년대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 요식업으로 성공한 토론토의 한인 사업가는 최근 연말 행사에서 “캐나다가 미국에 편입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많은 캐나다인들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한 데 대한 농반진반의 이야기였다.

트럼프는 소셜미디어(SNS)에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연방총리를 “주지사”라고 낮춰 부르며 몇차례 조롱 섞인 글을 올렸다.

트럼프의 이런 도발(?)은 국경안보 문제를 빌미로 한 관세부과 위협에서 시작됐다. 캐나다와 멕시코의 부실한 국경 단속 때문에 불법 이민자와 마약이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온다는 불평이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캐나다에서 오는 수출품에 25%의 관세를 물리겠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실제로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면 캐나다경제는 연간 GDP의 2.6%가 줄어드는 타격을 입고, 국민 1인당 2000달러의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1월20일 트럼프 대통령이 새 임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캐나다 정부의 대응은 부실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트럼프 2기 국경차르 호먼의 인식

트럼프 당선자의 ‘관세 위협’이 시작됐을 때 캐나다 정치권은 “농담(joke)”이라고 애써 외면하고 의미를 축소했다. 트럼프에 대해 “원래 재미 있는 사람(funny guy)”이라고 치부하는 정치인도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2기 정부에서 국경안보 최고책임자(border czar)로 내정된 톰 호먼의 인터뷰를 보면 농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호먼은 캐나다방송 CTV와 최근 인터뷰에서 “캐나다는 입국이 너무 쉽다. 미국과 비교하면 검문, 보안검색이나 단속이 부실하다”면서 “이 때문에 인도 파키스탄 튀르키예 출신자들이 캐나다와의 국경을 넘어 불법으로 미국으로 들어오는 것에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호먼은 지난달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도 캐나다와의 국경 문제를 “국가안보와 관련된 거대한 이슈 가운데 하나”라고 발언했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에 따르면 2023년 10월부터 2024년 9월까지 캐나다와 미국 간 국경을 통해 밀입국을 시도한 사례는 약 2만4000건에 달한다. 이는 2년 전 같은 기간 916건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다. CBP는 또 캐나다-미국 국경에서 펜타닐 마약 43파운드도 압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통계는 멕시코-미국 국경의 단속 실적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3년 10월부터 2024년 9월 사이에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들어온 밀입국자는 150만명으로 추산되며 압수된 펜타닐 마약도 2만1148파운드에 이른다.

그럼에도 호먼은 “9.11 테러 이후, 테러리스트가 남쪽국경보다 북쪽을 통해 들어올 확률이 10배나 더 높다는 연방정부의 연구가 있었다”며 캐나다와 미국 국경에 대한 안보 우려를 거듭 강조했다.

“정치권 뭐하냐” 각계 비판 봇물

캐나다의 브리티시콜롬비아대(UBC) 정치학과 스튜어트 프레스트 교수는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 관리들의 발언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캐나다 주권에 대한 모욕”이라며 “왜 연방정부와 정치 지도자들이 국경 안보문제에 대해 트럼프에 굴복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는 “연방정부가 전면적인 리더십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만약 국경관리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캐나다만의 책임이 아니라 양국이 함께 협력하면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간신문 ‘글로브앤메일’의 게리 메이슨 칼럼니스트는 “(트럼프의 계속되는 조롱은) 캐나다 지도자들의 침묵 때문이며, 이 나라의 리더십 레벨에 있는 많은 지도자들은 마치 트럼프가 화를 낼까 봐 두려워 입을 다물고 있는 것 같다”고 썼다. 또 “트뤼도 총리는 자신이 트럼프 당선인에게 얼마나 무시와 모욕을 당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고 오로지 자기 일자리를 지키는 데만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고 비꼬았다.

그는 ‘미국이 캐나다에 연간 1억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최신 무역데이터에 따르면 캐나다가 미국과의 무역에서 얻는 흑자는 400억달러 정도”라고 밝혔다.

캐나다 최대 일간지 ‘토론토스타’의 앤드류 필립스 칼럼니스트도 12월 20일자 신문에서 “’51번째 주’에 대한 농담이 한두 번일 때는 재미있을지 몰라도 네 번, 다섯 번이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면서 “그것은 깡패 같은 전술을 통해 캐나다를 얕잡아 보려는 술수”라고 적었다.

다만 ‘토론토스타’는 이번 사태의 원인을 캐나다 국내 상황에서 찾았다. 캐나다의 1인당 GDP는 2012년 미국의 80.2%에서 2022년 72.3%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2014년 이후 캐나다의 경제성장 동력이 크게 추락하면서 세계 주요 30국 가운데 성장률이 20위권 밖으로 밀렸다는 지적이다. 미국과의 경제력 격차가 최근 100년 사이에 가장 크게 벌어지면서 트럼프가 캐나다를 얕잡아 보도록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토론토스타’는 “이번 사태를 캐나다의 경쟁력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캐나다가 갖고 있는 천연자원 인적자원 기술력 등에 걸맞은 경제발전 계획을 세워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12월 16일 토론토에서 열린 캐나다 주정부 대표단 회의 후 덕 포드 온타리오 주총리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관세 위협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출처 CBC

연방정부와 정치권은 자중지란

미국은 캐나다의 최대 무역파트너다. 전체 교역량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수출은 캐나다 일자리 330만개를 창출하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단순히 계산해도 미국과의 무역에 일자리 200만개가량이 연관돼 있는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의 ‘관세 위협’에 가장 강하게 대응하는 캐나다 정치인은 덕 포드 온타리오 주총리다. 그는 “만약 이런 위협이 현실화하면 미국에 공급하는 전기에너지를 차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포드 주총리는 “가장 마지막에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겠지만 분명히 우리가 생산한 에너지는 미시간을 포함해 뉴욕, 위스콘신주로 내려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온타리오주는 2023년 기준 미국 15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했다.

미국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며 20년 넘게 살았고, 한때 ‘트럼프의 팬’이며 ‘명예 공화당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포드 주총리는 CNBC 등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도 “미국에 위협이 되는 것은 캐나다가 아니라 중국이며, 중국의 관문 역할을 하는 멕시코”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캐나다 정치권 안에서 미국의 관세 부과 위협에 대한 목소리는 제각각이다.

앨버타주의 다니엘 스미스 주총리는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든 앨버타는 미국으로 향하는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을 중단하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외교적 접근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퀘벡주 관계자도 “매사추세츠주나 뉴욕주에 대한 전기 수출 중단을 검토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현재 단계에서 언급하기는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뉴펀들랜드주 관계자는 “미국으로의 에너지 수출을 중단하는 데 관심이 없으며 무역전쟁은 양국 모두에 피해를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심지어 자유당 소속 아딜 샴지 하원의원은 “덕 포드 온타리오 주총리는 주택공급 부족을 포함한 국내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온타리오가 직면한 문제는 외면한 채 미국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만 넓히려 한다는 공격이다.

캐나다 연방정부는 지난달 17일 미국과의 국경보안을 강화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앞으로 6년간 13억캐나다달러(약 1조3000억원)를 투입해 헬리콥터와 드론 등 감시장비를 확충하고, 순찰인력도 늘리겠다는 뜻이다. 또한 국경서비스국(CBSA)과 연방경찰(RCMP)의 정보 공유도 확대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캐나다 연방정부와 정치권은 여전히 자중지란에 휩싸여 있다. 소수 여당을 이끌고 있는 저스틴 트뤼도 총리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최근 최측근으로 분류되던 부총리 겸 재무장관이 갑자기 사퇴하는 등 내각의 내홍이 깊어졌다. 게다가 야당인 보수당과 신민당은 아예 조기총선을 요구하고 나서 자유당정권의 앞날은 더 불투명해졌다. 적전분열만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김용호 언론인 캐나다 토론토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