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크리켓 환호 뒤 냉정한 계산…중동 화약고 앞 인도의 선택

2026-03-13 13:00:03 게재

3월 8일, 인도는 다시 한번 들썩였다. 인도 대표팀이 국제크리켓평의회(ICC) 남자 T20 월드컵 2026 결승전에서 뉴질랜드를 꺾고 사상 첫 대회 2연패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경기가 벌어진 나렌드라 모디 스타디움은 물론 전국이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크리켓은 인도에서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국민 감정의 출구이자 집단적 자부심의 상징이다.

그러나 환호가 절정에 이른 바로 그 순간에도 뉴델리 외교가는 전혀 다른 화면을 보고 있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로 중동정세가 급속히 흔들리는 가운데 인도는 흥분보다 절제를 택하고 있다.

사실 이번 사태는 인도 외교에 묘한 장면을 남겼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전쟁이 본격화되기 불과 며칠 전인 2월 25~26일 이스라엘을 국빈 방문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를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정상외교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쟁의 먹구름이 몰려든 셈이다. 그만큼 인도의 계산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인도에 중동은 에너지안보가 걸린 공간이고 수많은 자국민의 삶이 이어진 생활권이며 대외전략의 성패를 가늠할 시험대다. 그래서 인도정부의 반응도 놀랄 만큼 차분하다. 인도 외교부는 최근 공식입장을 통해 깊은 우려를 표하면서도 어느 한편을 정면으로 겨누기보다 자제와 긴장 완화, 민간인 안전, 외교적 해결을 촉구했다. 감정적 언어 대신 상황관리와 질서회복을 앞세운 것이다.

걸프국 주재 1000만명 인도주민과 석유

이는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 인도 외교의 핵심 문법은 ‘전략적 자율성’에 있다. 냉전기의 비동맹이 줄타기였다면 지금의 인도 외교는 여러 축과 동시에 관계를 관리하는 균형의 기술에 가깝다. 인도는 이제 선택을 강요받는 나라가 아니라 선택의 폭을 스스로 넓혀가는 나라가 되고 있다.

인도가 중동 문제에서 쉽게 편을 정할 수 없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사람과 석유다. 인도 외교부 통계에 따르면 걸프협력회의 6개국에 거주하는 인도계는 약 887만명에 이른다. 인도정부가 이를 ‘약 1000만명’ 수준으로 표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들은 인도 경제를 떠받치는 송금의 원천이자 인도와 중동을 잇는 가장 두터운 인적 네트워크다. 여기에 원유와 가스 문제가 더해진다. 중동의 불안이 길어질수록 유가와 물류, 송금과 고용이 함께 흔들릴 수 있다. 뉴델리 외교당국이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도는 어느 한쪽에 자신을 쉽게 묶어둘 수도 없다. 인도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최근 더욱 뚜렷한 전략성을 띠고 있다. 양국은 인공지능 사이버안보 반도체 농업 물관리 방산 등 협력의 폭을 넓혀왔다. 그러나 반대편에서 이란 역시 인도에 포기하기 어려운 지정학적 의미를 지닌다. 차바하르 항은 파키스탄을 우회해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으로 이어지는 인도의 전략 통로다. 이스라엘은 떼어놓을 수 없는 안보·기술 파트너이고 이란은 쉽게 외면할 수 없는 지정학적 연결축인 셈이다.

여기에 더 큰 구상도 있다. 인도는 중동을 단지 에너지 공급처로만 보지 않는다. 2023년 G20 뉴델리 정상회의에서 출범한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은 중동이 인도에 곧 유럽으로 가는 전략적 관문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지금의 전쟁은 단순한 유가 문제를 넘어 인도가 구상해온 연결성의 미래를 흔드는 변수다. 뉴델리가 전쟁의 승패보다 항로의 안전과 질서의 복원을 더 중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도 외교는 지금 중동에서 원칙과 실리를 동시에 붙들어야 하는 고난도의 시험을 치르고 있다.

이스라엘·이란 관리, 전략적 자율성의 시험대

앞으로 인도의 대중동 외교는 세 갈래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겉으로는 긴장완화와 외교적 해결을 촉구하고 물밑에서는 교민보호와 에너지 수급 해상 안전 확보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동시에 이스라엘 아랍권 이란과의 대화 채널을 모두 열어둔 채 어느 한 진영에 완전히 묶이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오늘 인도 외교의 힘이자 한계다. 세계 최대 인구국이자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를 자임하는 인도는 이제 환호의 경기장보다 훨씬 더 복잡한 외교의 무대에서 자기 실력을 증명해야 한다.

이 대목은 한국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한국은 인도를 단지 거대한 시장이나 생산기지로만 볼 것이 아니라 중동과 인도양, 공급망과 에너지, 기술과 안보를 함께 읽어내는 전략 파트너로 보아야 한다.

중동이 흔들릴수록 인도의 전략적 가치도 커진다. 크리켓의 열광 속에서도 외교의 냉정을 잃지 않는 오늘의 인도는 한국 외교가 더 깊이 주목해야 할 나라다.

장재복 전 주인도대사 씨티넷(CityNet) 사무국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