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무력사용 발언에 미국사회 격론
그린란드·파나마운하 눈독 노골화 … 정치권은 양분, 언론은 대부분 비판
트럼프 발언은 공화당 내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으면서도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신중론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발언이 공개된 다음날인 8일, 공화당 하원 외교위원회는 소셜미디어에 “미국은 전사와 탐험가로 건국된 국가”라며 트럼프 당선인의 구상을 지지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 문제를 언급하며 이를 ‘돈로 독트린’, ‘트럼프 독트린’으로 칭하며 대담한 국가 비전으로 평가했다.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같은 날 인터뷰에서 “그린란드는 방어와 북극해 무역 루트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라며 “북극해가 열리면서 아시아로 가는 최단 루트가 아프리카가 아닌 북극을 통과하게 된다”며 지지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8일 언론 브리핑에서 트럼프 발언이 국제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동맹국들과의 관계 악화와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신뢰도 하락을 우려하며, 섣부른 발언이 미국 외교 정책의 일관성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즉각 강하게 반발하며 국민 생활과 무관한 논란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8일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대선이 그린란드나 파나마 운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이러한 발언이 국민의 실질적인 문제와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 국민은 중산층 축소와 생활비 상승으로 고통받고 있다”면서 “그린란드나 파나마 운하를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을 위한 아메리칸 드림을 되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 역시 트럼프의 발언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그린란드와 관련된 아이디어는 좋은 것도 아니고, 실현 가능하지도 않다”며 논의 자체가 시간 낭비라고 밝혔다. 그는 또 “우리는 더 중요한 문제들에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내 주요 언론들의 반응과 평가 역시 냉담하다. 뉴욕타임스는 8일 트럼프의 그린란드 발언이 미국의 역사적 팽창주의와 식민주의를 연상시킨다고 지적하며, 이는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도덕적 지위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도 같은 날 트럼프의 무력 사용 가능성 언급이 국제법을 무시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이는 동맹국과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보도했다.
CNN은 트럼프의 파나마 운하 환수 발언에 대해 파나마 정부가 강하게 반발한 점을 강조하며, 역사적 맥락과 지역 민감성을 고려하지 않은 “외교적 실책”이라고 평가했다.
악시오스는 트럼프의 발언이 그의 ‘미국 우선주의’와 일맥상통하지만, 국내외적으로 광범위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국제적으로도 논란이 되고 있으며, 일부 미국내 인사들은 이를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논리와 비교하며 비판했다.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 8일 CNN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그린란드 발언은 시진핑의 대만 정책과 정확히 동일한 논리”라며, 중국과 러시아가 이를 근거로 자국의 군사 행동을 정당화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는 “시진핑이나 푸틴이 ‘미국이 그린란드에서 무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듯이, 우리도 대만이나 우크라이나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해당국은 물론이고 유럽의 주요 국가들도 부정적 견해를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당선인의 이번 발언은 우발적이거나 충동적인 것이 아니라 취임 후 실제로 추진 가능성이 있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린란드나 파나마를 진짜로 편입하거나 환수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를 명분 삼아 충분히 다른 거래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2기 행정부가 출범도 하기 전부터 이런 문제들로 논란이 커지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면 집권 초기에 추진해야 할 중요한 정책과제와 공약 실현의 동력만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