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매력 담은 정원 품은 생태공원
금천구 호암산자락에 축구장 2.7배 크기
‘녹색도시’ 목표로 주민·기업·전문가 협업
“주민들이 직접 생태공원을 조성한다니 색달랐어요. 전문가나 공무원이 꾸민 정원을 주민들은 감상만 하잖아요. 사실 작업은 업체에서 하는 거죠.”
서울 금천구 시흥2동 주민 마은준(65)씨. 동네 지인들과 4명이 공원을 조성하겠노라 신청했는데 실제로는 10명 가량이 참여했다. 10㎡ 규모로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고민과 회의를 거듭해가며 그들만의 정원을 만들어냈다. ‘금천의 오미마실’이다. 마씨는 “올해 서른살이 되는 젊은 도시가 야생화처럼 아름답고 굳건하게 발전하길 기원하는 의미에서 다양한 꽃을 심고 흙은 채운 항아리를 의자 대신 놓아 쉬어가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오미는 주민들이 조성한 작은 정원이 자리한 ‘오미생태공원’에서 따왔고 마실은 동네 주민들이 마실가듯 들르라는 의미다.
15일 금천구에 따르면 구는 시흥5동 호암산 자락 시흥계곡에 축구장 2.7배 크기인 1만8500㎡ 규모 ‘오미생태공원’을 주민과 함께 조성하고 일반에 공개했다. 앞서 인근 빗물저류시설 지붕에 녹색광장을 조성했는데 주민들 호응이 커 광장 남쪽 부지에 생태공원을 조성하기로 했다. 지난 2020년부터 관련 절차를 밟은 끝에 5년만에 결실을 맺었다.
당초 개인 소유라 시설물 하나도 배치하기 어려웠다. 초입부에는 판잣집 형태 불법 건축물에 낡은 농막, 무연고 묘지가 난립하는 상황이었다. 총 15필지 땅에 토지주만 12명이고 그 중 7필지는 공동 소유주만 7명이라 매입도 어려웠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토지주를 수소문해 국제전화로 가격협상을 하는 등 노력 끝에 상대적으로 싼값에 소유권을 이전할 수 있었고 이후 설계와 1년여간 조성공사를 거쳤다.
‘오미(五美)’는 시흥계곡에서 느낄 수 있는 숲 꽃 흙 사람 물 5가지 향기다. 유성훈 구청장은 “현재 금천구 시흥4동인 옛 경기도 금양현에서 말년을 보낸 조선 성종시절 문신 강희맹의 핵심 사상인 ‘오상(인의예지신)’에서 착안했다”며 “오미를 통해 정원의 매력을 높인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강희맹은 금천에서 농업서로 잘 알려진 ‘금양잡록’을 저술했다.
너른 공간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건 주민들 정성이 깃든 ‘백인백향기원’이다. 주민 기업 작가가 3개 형태로 ‘100명의 사람과 100가지 향기가 있는 정원’을 꾸몄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일반주민 학생 직장인 등 총 14모둠은 기획부터 시공까지 직접 참여해 다양한 정원을 선보였다. 금양잡록과 정조대왕 능행차에서 영감을 받은 ‘금천의 꽃과 녹음(衿川花錄)’과 ‘왕의 길, 소통의 향기’를 비롯해 시흥행궁을 형상화한 ‘왕의 귀환’, 무장애도시 금천을 소망하는 ‘함께 걷는 미래, 무장애 금천’ 등이다. 마은준씨는 “각자 개성이 뚜렷하고 이야기가 있는 정원이라 감동적”이라며 “주민들이 직접 꾸민 정원이라 세심하게 살펴보고 머무는 시간도 많다”고 전했다. 그만큼 금세 입소문이 나 오미생태공원은 지난해 말 주민들이 뽑은 금천9경 중 3경에 선정됐다.
백인백향기원과 함께 100m 길이 ‘황토 맨발 걷기길’, 물길 두개가 합쳐지는 ‘물어귀 쉼터’, 사랑을 상징하는 장미정원과 정원치유센터 체력단련장까지 매서운 추위에도 주민들 발길을 끌고 있다. 공원 내 정원길 4㎞는 서울둘레길과도 연결된다.
금천구는 오미생태공원을 필두로 자연과 공존하며 발전하는 ‘녹색도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지난 9일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와 협약식을 갖고 시흥3동 산지 약 25만㎡를 무상 사용하기로 했다. 2028년이면 야영장 산림욕장 등을 갖춘 ‘희망의 숲’으로 탈바꿈한다.
유성훈 금천구청장은 “주민 누구나 가까운 곳에서 공원을 즐길 수 있도록 도시 내 녹지와 공원을 확대하고 녹색 기반시설을 늘려 ‘녹색 도시’ 금천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