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K-다이너미즘’은 자멸하는가

2025-01-17 13:00:11 게재

정부와 여당이 설연휴 전날인 1월 2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 연휴기간을 엿새로 늘리기로 한 데 대한 경제계 반응이 엇갈린다. 공무원과 대기업 직장인 등 봉급생활자들은 “하루 더 놀게 됐다”며 반기는 반면 한숨을 쉬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많다. 자영업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빨간날 매출이 늘어난다는 것은 착각” “임시공휴일 지정은 오히려 자영업자를 죽이는 정책”이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있다. 장기간 연휴는 국내 소비 대신 해외여행 수요만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다.

제조업 등 산업계는 걱정이 더 크다. 엿새로 늘어난 연휴로 인해 제품 생산과 출하가 타격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임시공휴일 하루 당 생산감소와 인건비 추가 부담 등으로 산업계에 발생하는 비용이 8조원에 이른다(한국경영자총협회)는 주장까지 나온다. 정부와 여당, 국책연구원들은 어느 곳도 대체휴일 지정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제대로 짚지 않은 채 “내수경기 진작과 관광 활성화 등 긍정효과가 클 것”이라는 막연한 추정만 내놓았다.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이 이런 식이어선 곤란하다.

온나라가 집단무기력상태인데도 정치권 위기의식 없어

정부여당만 그런 게 아니다. 수렁에 빠진 대한민국 대표 수출품목, 반도체 경쟁력을 되살리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놓고는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발목을 잡고 있다. 대만 TSMC 등 해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연구개발(R&D) 인력의 주52시간 근무 제한에 예외조항을 두는 데 대해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요지부동 반대를 고수하고 있다. 어렵게 도입한 노동자 보호장치를 고수해야 한다는 취지이지만 특정기간 집중근무가 필요한 전문직종의 탄력 적용까지 발목을 잡아선 곤란하다. 한국보다 인권의식이 앞선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이렇게 획일적으로 개인의 사적 노동시간을 통제하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의 비밀병기였던 부지런함이 사라지고 있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연휴기간 연장과 근로시간 제한 등을 둘러싼 논란만이 아니다. 사회와 경제 전반에서 뭔가를 새롭게 해보려는 활력이 안 보인다. 반도체·자동차·조선 이후 한국의 경제를 세계무대로 도약케 할 산업이 몇 십 년째 나오지 않고 있다. 저출생·고령화의 급속한 진행으로 인해 노동투입 증가세가 꺾인 지 꽤 된 터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와 같은 혁신은 찾아볼 수 없다.

온 나라가 집단무기력상태로 빠져들고 있지만 정부와 정치권에서 이에 대한 위기의식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 상황이 특히 심각하다. 12·3 계엄사태 이후 두 진영으로 갈라져 극한 정쟁에 골몰할 뿐 비상이 걸린 경제문제는 뒷전에 밀어 넣고 있다. 반도체특별법 외에도 전력망확충특별법 도입, 신재생에너지법 개정안, 외국인고용법 개정안 등 여야가 합의한 법안들조차 처리를 않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를 내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으로 각국 간 생존을 건 경제전쟁이 한층 더 각박하고 치열해진 상황이 정치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정국불안이 계속되면서 국내외 경제기관들이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속속 낮추고 있는 터다. 골드만삭스 JP모건 씨티 등 주요 투자은행들이 1.7% 안팎으로 전망치를 하향조정했고, UBS는 1.3%로까지 확 낮췄다.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과 함께 공통적으로 꼽은 근거가 수출 내수 두 분야 모두에서의 활력 저하다.

한은 “구조개혁 않으면 잠재성장률 0%로 떨어질 것”

한국은행은 얼마 전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과 향후 전망’ 보고서를 내놓았다. 한은은 이 보고서에서 “대한민국이 구조개혁을 하지 않으면 잠재성장률이 머지않아 0%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는 비상벨을 울렸다. 거스르기 힘든 생산인구 감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산업 및 기술혁신과 자본투입 확대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려면 기업가들의 창의와 활력을 꺾는 규제를 서둘러 철폐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무엇보다도 여야 정치권의 포퓰리즘 경쟁으로 인해 쌓여온 사회·경제적 비효율장치를 제거하는 일이 시급하다. 명백한 부적격 근로자도 퇴출시키기 어려운 경직적인 노동시장, 시간만 지나면 저절로 급여가 올라가는 연공제 등 기업 내 활력을 가로막는 제도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 겹겹의 규제에 등 떠밀려 해외로 사업장을 옮기는 중소기업들이 해마다 늘어나는 상황도 직시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기업하기가 너무 힘들다. 해외로 떠나온 게 아니라 쫓겨난 것”(중소기업중앙회 온라인게시판)이라는 하소연을 이제라도 새겨들어야 한다.

이학영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