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두 얼굴의 파괴와 기회의 창
경제학자 슘페터는 1942년 출판된 저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에서 혁신이란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창조적 파괴인 혁신에는 크게 세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기술혁신인데 경제적 가치 창출·제고를 위해 신기술을 개발·적용하거나 기존기술을 개선·적용한다. 둘째, 사회혁신이다. 사회혁신은 경제적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 창출·제고와 환경 교육 불평등 인구문제 등 사회적 문제 해결을 주목적으로 한다. 셋째 제도혁신인데, 이는 조직·기관이나 국가의 지배구조나 운영 방식을 변화시켜 운영 효율성과 효과성을 제고한다. 여기에는 조직·기관의 구조·운영방식 개선과 법률 제정·개정, 정책·규제 개선 등이 포함된다.
그동안 ‘창조적 파괴’ 못하고 ‘무모한 파괴’만
창조적 파괴도 있지만 무모한 파괴도 있다. 무모한 파괴(reckless destruction)는 체계적·창의적 대안없이 기존 질서를 무리하게 파괴해 혼란과 후퇴를 초래하는 행위다.
첫째, 빈약하고 왜곡된 근거에 기반해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의 권력 유지나 이익을 위해 기존 질서를 강압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한다. 둘째, 비전과 대의명분 전략이 매우 부실하거나 부재하다. 셋째, 국가적·경제적·사회적 큰 손실과 혼란, 높은 불확실성을 초래한다. 넷째, 불필요한 갈등과 저항을 촉발·심화시킨다. 다섯째, 대외적으로 국가신인도를 추락시키고 외교에 큰 어려움을 발생시키며 국격을 훼손시킨다. 여섯째, 환율 급등, 주식 폭락, 내수경기 침체 등을 유발시켜 국민 개개인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 일곱째, 앞서 언급한 것들 모두로 인해 국민들의 피로감을 급증시키고 국가발전을 저해한다.
무모한 파괴가 발생하면 우리는 영어로 '크라이시스(CRISIS)'가 발생했다고 말한다. 크라이시스를 일반적으로 '위기'라고 번역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위기가 아니라 ‘최악의 고비’를 뜻한다. 왜냐하면 위기라는 단어는 위험과 기회라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모한 파괴는 앞서 설명한 부정적 특징들을 가지고 있지만 창조적 파괴와 공통점이 있다면 큰 기회도 함께 내포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비록 작금의 무모한 파괴로부터 위기가 발생해 혼란스럽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국가발전의 세번째 퀀텀 점프를 이룰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번 12.3 비상계엄사태와 뒤이은 탄핵정국을 통해 그동안 제도혁신과 사회혁신에 소홀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1987년 단기간 급조된 대통령 단임 직선제 헌법으로 대표되는 정치체제와 경제적으로는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소위 'IMF 경제체제' 속에서 우리는 그동안 창조적 파괴를 하지 못하고 무모한 파괴를 맞게 되었다.
87체제와 IMF경제체제 혁신의 기회
따라서 정치적으로 대통령 권력분산과 지방자치권 강화 방향으로 헌법 선거법 정부조직법 계엄법 지방자치관련법 등의 개정을 비롯해 1987년의 정치체제를 제도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경제적으로는 1990년대 말 형성된 IMF경제체제를 혁신하기 위해 경제적 투명성과 대외신인도 제고, 자본가와 일반국민·개인투자자들이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상법 자본시장법 등 관련 법령들을 개정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제도적 혁신을 하는데 있어 우리의 인구문제와 경제사회적 격차문제 등 한국형 함정 탈출에 필요한 사회적 혁신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들이 마련돼야 한다.
만약 탄핵국면 끝에 조기 대선을 치르게 된다면 정치권과 사회지도자 층은 힘을 모아 대선 과정과 다음 정부에서 이러한 두가지 구체제들을 혁파하는 제도혁신과 사회혁신을 이루어야 한다. 이제 우리 모두는 산업화와 민주화 다음 단계인 제도적 고도화 단계로 가야하며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기회의 창으로 들어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