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단타’ 부작용 막는다…기관 의무보유 확약 확대

2025-01-21 13:00:02 게재

수요예측 참여 자격·주관사 역할 책임 강화

합리적 공모가 산정 … 중·장기 투자자 확보

금융당국이 기업공개(IPO) 시장 선진화를 위해 기관투자자의 의무보유 확약을 확대하고 수요예측 참여 기관의 자격과 주관사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코로나 이후 2배 이상 커진 IPO 시장은 개인뿐만 아니라 기관투자자들도 합세한 단기차익 목적투자의 부작용으로 공모가 적정성 문제, 공모주 주가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논란도 커졌다. 금융당국은 지속적인 자본시장 밸류업을 위해 IPO 시장이 ‘기업가치 기반 투자’ 중심으로 합리화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 합리적 공모가를 산정하고 안정적인 중장기 투자자를 확보할 계획이다.

◆투기성 단기 자금 놀이터로 전락 = 21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협회, 자본시장연구원은 ‘지속적인 자본시장 밸류업을 위한 IPO 및 상장폐지 제도개선 공동세미나’를 열고 주식시장 질적 수준 제고를 위한 ‘IPO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공모주 시장이 투기성 단기 자금 놀이터로 전락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IPO 제도개선 방안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나온 바 있지만 아직 우리 시장은 단기차익 목적투자가 주를 이루며 시장 왜곡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몇 년 사이 IPO 시장이 단기차익 투자 위주로 운영됨에 따라 공모가와 상장일 이후 주가 흐름에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중·장기 투자자 역할이 기대되는 기관투자자도 배정받은 공모주를 상장 직후에 매도해 차익을 실현하는 경우가 많이 나왔다. 특히 2024년 IPO 77개 종목 중 74개(약 96%)에서 상장일 기관투자자는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위 ‘치고 빠지기식’의 투자가 급증한 것이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IPO 시장에서는 기관투자자와 개인투자자 모두 그 이전보다 약 2배 증가한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투자자의 증가는 IPO의 흥행과 성공에 긍정적인 요인이지만, 상장 초 IPO 공모주 주가의 변동성을 확대하고 공모가 적정성에 관한 논란을 키우는 등 문제점 또한 가져왔다. 특히 개인뿐 아니라 기관투자자들도 장기적인 투자 가치보다 상장 초 공모주의 단기 수익률에 초점을 두고 IPO 시장에 들어오는 경향이 커졌다.

그동안 우리 주식시장은 상장기업수, 시가총액 등 양적인 규모는 계속 확대되었으나, 개별 상장기업의 기업가치, 성장성 등 질적인 측면의 발전은 상대적으로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최근 5년간 해외 주요국 증시는 시가총액 상승률 대비 주가지수 상승률이 더 높거나 비슷한 수준이지만 우리나라는 반대로 시가총액 상승률이 더 높다.

◆기업가치 기반 투자로 유도 = 이에 정부와 유관기관은 근본적으로 IPO시장이 ‘단기차익 목적 투자’에서 ‘기업가치 기반 투자’ 중심으로 합리화될 수 있도록 △기관투자자 의무보유 확약 확대 △수요예측 참여 자격 강화 및 방법 합리화 △주관사 역할·책임 강화 등 세 가지 방향에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했다.

먼저 기관투자자 의무보유 확약 확대는 기관들이 배정받은 주식을 상장 후 일정기간 동안 팔지 않기로 하는 약속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기관투자자가 단기매도를 지양하고 기업 가치평가를 기반으로 신중하게 수요예측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금융당국은 의무보유 확약 우선배정제도를 새로 도입하고 가점을 확대할 방침이다. 기관투자자 배정물량 중 40% 이상을 확약 기관투자자에게 우선배정한다. 확약 물량이 40%에 미달하는 경우 주관사가 공모물량의 1%를 취득(상한금액 30억원)해 6개월간 보유하도록 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의무보유 확약 최대 가점 기간도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한다. 증시 변동성에 대한 리스크를 감수하고 물량을 더 받는 곳에 더 높은 점수를 매기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의무보유 확약 위반, 미청약·미납입 등에 대한 협회차원의 제재도 강화한다.

두 번째로 금융당국은 수요예측 참여 자격을 강화하고 방법을 합리화할 방침이다. 지난해 평균 기관투자자 수요예측 참여 건수는 약 1900건에 달하는 등 과열됐다. 이에 기업가치 평가 역량이 부족한 소규모 기관투자자들의 참여를 제한하기 위해 사모운용사·투자일임회사의 참여 자격을 강화할 방침이다.

합리적 공모가 산정, 중·장기 투자자 확보를 위해 IPO 주관사의 역할과 책임도 강화할 방침이다. 코너스톤 투자자와 사전수요예측제도 도입을 지속 추진한다. 이는 지난 21대 국회에 관련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발의되었으나 국회 회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코너스톤투자자 제도는 일정기간 보호예수를 조건으로 증권신고서 제출전 기관투자자에 대한 사전 배정을 허용하므로 중·장기 투자자 확대에 긍정적이다. 사전수요예측은 공모가 밴드 설정 단계부터 시장의 평가를 고려할 수 있어 합리적 공모가 산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주관사의 공모주 내부배정기준도 구체화할 방침이다. 의무보유 확약 우선배정 방법, 그룹(Tier)설정 및 그룹별 할당 기준, 가중치 부여 기준 등 필수적인 요소들을 포함시킬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주관사 사전취득분 의무보유를 강화한다. 현재 코스닥 시장의 경우 완화된 상장요건 등을 고려하여 주관사가 상장예비심사 신청 6개월 이내에 취득한 주식에 대해서는 가격괴리율(공모가~사전취득가)에 따라 의무보유를 적용하고 있다. 책임성 강화 차원에서 기준이 되는 가격괴리율은 축소(50% → 30%)하고 최소 의무보유 기간도 확대(1개월 → 3개월)한다.

◆증권가 ‘환영’ … 일각에선 투자위축 우려도 = 금융투자업계는 수요예측 참여 자격 강화 등에 대한 제도개선 방안을 반겼다. 수년 동안 증권사 IPO 담당자들은 단기차익만 노리는 기관투자자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시장이 왜곡됐다는 점을 금융당국에 건의해 왔다. 실제 지난해 IPO 기업 대다수는 기업가치 산정 역량은 없이 외형만 기관투자자인 곳들이 단타 이익을 노리고 수요예측에 대거 참여하면서 공모가를 희망가격 상단보다 20~30%씩 높여 증시에 입성했다. 증시에 상장한 후 이들 기업의 주가는 급락하며 증시 변동성을 키웠다.

IPO 전문가들은 “수년간 IPO 제도 개편이 반복되었지만 매번 땜질식 처방에 그쳤다”며 “이번엔 IPO 제도 전반을 점검하고 전체적인 개선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IPO투자 위축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의무보유 기간을 확대할 경우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 투자가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고, 상장을 추진 중인 예비 상장사는 기대보다 낮은 공모가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IPO 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국내 증시보다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뉴욕 증시로 향하는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도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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