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미국 현지투자·생산 확대 가능성
트럼프, 전기차 의무화정책 폐기선언
IRA 완전 철회보다 수정안 마련할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취임과 동시에 전임 바이든정부의 ‘전기차 의무화’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밝히면서 한국 자동차·배터리 업계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다만 전기차 의무화 정책 철회가 전기차 구매 보조금(세액공제) 등을 규정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폐기로 이어질지는 명확하지 않다.

◆미국, 친환경차 판매목표 철회 전망 =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그린 뉴딜(친환경 산업정책)을 종식하고, 전기차 의무화를 철회한다”며 “자동차산업을 구하고, 위대한 미국 자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의무화로 내연기관 차량 판매가 금지될 경우 그의 지지기반인 자동차 제조업 분야에서 2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철회를 공언한 전기차 의무화 정책은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폐기 내용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업계에서는 “전임 바이든정부가 2030년까지 전체 신차판매 대수의 50%를 친환경차(CV)로 채우겠다고 밝힌 내용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CV는 전기차,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 연료전지차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여기에 온실가스(GHG) 배출과 기업별 평균연비(CAFE) 규제도 포함될 수 있다. 이를 고려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CV 판매 목표치 철회와 더불어 환경규제 축소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IRA 수정 또는 일부조항 철회할 수도 = 트럼프 대통령의 전기차 의무화 철회 언급에 따라 IRA의 폐지 여부에 관련 업체들이 촉각을 세우고 있다.
IRA는 완성차와 배터리를 대상으로 △구매자 대상 전기차 세액공제 △투자 세액공제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등 크게 3가지 혜택이 있다. 이중 전기차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받는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와 배터리업체에게 주는 AMPC 존속 여부가 가장 큰 관심사다.
AMPC는 투자기업에 대해 배터리셀의 경우 킬로와트시(㎾h)당 35달러, 모듈의 경우 ㎾h당 10달러를 환급하는 제도다.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이 제도에 따라 분기마다 최대 수천억원의 혜택을 받았다.
이와 관련, IRA 폐지는 일사천리 진행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을 대통령의 행정명령만으로 철회하거나 취소하는 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공화당이 강세인 지역에서도 IRA로 인한 경제적 혜택을 누리는 경우가 있어 공화당 소속 의원들조차 폐지에 반대할 가능성도 크다. 또 현재 상원은 60표가 필요한 필리버스터 규정이 있어 단순 다수결로 법안을 통과시키기 어렵다. 공화당이 다수당이어도 상원에서 민주당의 협조가 없으면 법안 통과에 어려움이 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이같은 이유로 IRA의 완전 폐기보다 수정안 또는 일부 조항 철회로 타협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전기차 인센티브 수정이나 배터리 제조사 지원요건 강화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IRA 규정에 직접 손을 대지 않고 중국 등 해외우려기업(FEOC) 규제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보조금을 줄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대차그룹 정치적리스크 최소화해야” = 국내 자동차업계는 전기차 의무화 폐지는 예상했던 바라며 향후 IRA 축소나 폐기까지 여파 최소화에 주력한다는 분위기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의 전기차 공장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지난해 말부터 가동하고 있어 IRA 축소나 폐지시 파급이 크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HMGMA 설립을 위해 126억달러를 투자한 만큼 해당 공장에서 하이브리드차 생산을 병행하고, 올해 안으로 생산량을 연간 50만대까지 늘릴 계획이다.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 ‘TMED-II’가 적용된 신차도 현지에서 다수 출시한다.
현대차그룹은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품에 대해 10~20% 수준의 관세부과를 예고한 만큼 추가 투자 등 현지 생산 확대도 생각해볼 수 있는 대안이다. 현재 국내 자동차산업의 미국 수출 비중은 49.9%다.
현대차그룹의 2022년 이후 대미 총투자액은 178억5000만달러(26조원)에 이른다.
장상식 원장은 “국내기업은 미국내 생산 및 공급망을 확장하거나 조정하는 등 정치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IRA 보조금 요건이 강화될 경우 그에 맞게 미국내 생산을 조절한다면 내연차 하이브리드 전기차 모두 점유율 확대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