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사태 길어지면 국민경제에 직격탄 ②
환율 방어에 국민노후자금까지 동원…경제성장률에도 악영향
12.3 비상계엄 이후 국민연금 해외자산 480억대 풀어
한국 돈 가치 100원 떨어지면 대외채무 18조원 늘어
한국 성장률 전망치 하향조정 … 내년엔 1%대 성장
50일을 넘긴 내란사태는 정치 불안만 키운 게 아니다. 내수부진에 시달리던 한국 경제엔 업친데 덥친 격이 됐다. 경제불확실성의 정점에 정치불확실성이 자리한 셈이다.
내란사태와 강달러가 불러온 환율 폭등은 한국경제에 큰 상처를 남길 것으로 보인다. 환율 방어를 위해 국민연금까지 동원해야 했다. 국민연금의 수익이 떨어지면 결국 장래에 국민들이 받을 연금에 영향을 준다. 국민노후자금까지 손댄 셈이다.
경제성장률 전반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하향조정 추세다. 올해도 우리 경제는 내수부진에 비상계엄 이후 정치 불안까지 겹쳐 2% 성장에 그쳤다. 당초 작년 11월 한국은행이 예상한 2.2%보다 0.2%p 낮다. 내란사태 등에 따른 소비·건설 경기 위축 탓이 크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국민노후자금도 위험할 판 = 작년 10월말까지 1300원대에서 움직이던 원달러 환율은 11월에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을 뚫었다. 12.3 비상계엄 이후에는 1470원대로 급등했다. 새해 들어 1400원 중후반대에 머무르고 있지만 조만간 1500원대에 육박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환율은 한국 돈의 국제적 가치를 말한다. 나라의 경제적 부와 정치적 안정을 종합 반영하는 지표인 셈이다. 경제가 어렵고 정치가 불안하면 자본이 대규모로 빠져나간다. 결국 그 나라 화폐를 달러로 바꾸는 수요가 증가해 환율이 상승한다. 한국경제가 12.3 비상계엄 뒤 바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됐다.
정부는 환율을 1450선에 유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노력이 성공하더라도 후유증은 상당할 전망이다. 이미 국민연금은 해외자산의 10% 수준인 480억달러를 외환시장에 풀었다. 금리인하로 기울었던 한국은행도 다시 기준금리를 3%로 동결했다.
정부의 외환보유고도 여유가 없다. 최근 3년간 미국과의 금리 역전에 따른 환율상승을 막느라 외환보유액은 바닥 수준이다. 작년 12월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156억달러다. 최근 4년간 최저 규모다.
◆고환율, 서민·기업 살림 옥죈다 = 고환율 흐름이 길어지면 우리 경제 전반에 나쁜 영향을 준다. 특히 중소기업과 서민들의 살림살이엔 직격탄이다. 우리나라 비금융기업의 대외채무액은 작년 3분기 말 기준 1761억5060만달러 수준이다. 이를 토대로 단순계산하면 한국 돈의 가치가 100원 떨어지면 대외채무는 18조원 늘어나는 셈이다.
환율상승은 내수기업과 서민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준다. 원자재 수입가격이 상승하고 물가가 인상되면 내수기업은 원가상승과 수요감소의 이중고를 겪게 된다. 부진한 내수판매로 고전하던 중소기업들은 적자확대로 생존의 기로에 설 수도 있다. 서민들은 고물가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실질소득 감소로 ‘환율상승→내수부진→경기침체’의 악순환의 고리에 진입하게 된다.
단기간 환차익을 보게 되는 수출기업도 고환율이 장기화하면 결국 손해다. 환율상승이 수입 원자재 비용을 올려 수출기업의 환차익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특히 생산공장을 해외로 이전한 수출기업은 오히려 현지 생산비용이 늘어 원가부담이 가중된다.
더 심각한 것은 환율상승이 화폐가치 하락과 국부 유출을 불러온다는 점이다. 환율이 10% 상승하면 국민소득도 10% 감소한다. 해외에서 살 수 있는 구매력도 동반 하락한다.
◆성장률 떨어지고 국가신용도 위태 = 경기부진에 정치불안이 겹치며 올해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는 줄하향이 예고됐다.
내란사태가 길어지고,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수출이 악화하면 연간 성장률이 1%대 중반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성장이다.
2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발표한 ‘1월 세계경제전망’에서 올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2%에서 2.0%로 0.2%p 하향했다.
앞서 정부는 새해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2%에서 1.8%로 낮춘 바 있다. 한국은행도 지난해 11월 경제전망을 통해 2.1%에서 1.9%로 수정한 바 있다.
한은은 “지난해 12월 발생한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정치 불확실성과 이에 따른 경제 심리 위축의 영향으로 올해 성장률이 소비 등 내수를 중심으로 약 0.2%p 낮아졌다”며 전망치 추가 하향을 시사했다. 다음 달 25일로 예정된 정기 경제전망 발표에서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을 1.6~1.7% 수준까지 내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 경기전망도 내리막길이다. 기재부는 지난 17일 내놓은 ‘2025년 1월 최근경제동향’(그린북)에서 “최근 우리 경제가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경제심리 위축 등으로 고용이 둔화하고 경기 하방 압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해외 시장의 관측은 더 냉혹하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주요 투자은행(IB) 8곳의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1.7%를 기록했다. 탄핵 정국 전인 지난해 11월 평균(1.8%)과 비교해 0.1%p 낮다.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정치적 혼란이 길어지면 국제 신인도가 하락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국가신용등급이 낮아지면 외자 유치가 어려워지고 자본유출이 확대되면서 한국 경제가 걷잡을 수 없는 혼돈상태로 빠질 수 있다는 경고로 풀이된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